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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돕고 베풀며 살아온 인생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2.06.29일 14:27
연변조선족자치주 민족단결 모범개인 김순자할머니에 대한 이야기

현재 연길시 신흥가에 살고있는 김순자할머니(83세)는 수십년 동안 한족들과 이웃으로 살아오면서 그네들의 애로를 풀어주고 그네들과 남다른 우정을 쌓아왔다. 특히 지난세기 80년대부터 할머니는 리문영을 비롯한 6명 한족고아들의 어머니로 되여 그들에게 온갖 정성을 다 쏟아오면서 민족단결의 꽃을 피워왔으며 그 우정은 세기를 뛰여넘어 오늘에까지 이어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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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3월 18일, 김순자는 룡정 대문동(지금의 길림성 룡정시 광신향 대성촌)에서 태여났다. 아버지 김민기어른과 어머니 윤명숙녀사의 4남 2녀중 차녀로 태여난 김순자는 어려서부터 독립투사후손인 부모로부터 량호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랐으며 어릴 때부터 남을 즐겨 돕고 자비를 베푸는것을 천성으로 삼고 살아왔다. 부모님의 보살핌으로 룡정에서도 이름있는 륙도소학교에 다닐 때에는 40대 걸인녀자의 신이 몹시 해진것을 보고는 헝겊천으로 감아주기도 했고 겨울날 옥단이라는 동창생이 입은 옷이 얇은것을 보고는 자기의 옷을 벗어 입게 하는 등 친구들을 관심하기에 항상 신경을 기울였으며 집에서도 이상 올케가 실수로 물동이를 깬것을 자기가 깼다고 대신하는것으로 이상 올케를 감싸주기도 했다.

고생도 엄청 많이 했다. 륙도소학교를 졸업할무렵 학교에 지참금을 내지 못하게 되자 대신 근로봉사대로 봉천(지금의 심양)에 있는 《도요다이야 고죠》라 불리는 일본인방직회사에 끌려가 온갖 천대를 받으며 지옥같은 생활을 하다가 당시 류행되는 상한병(伤寒兵)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뒤 해방과 더불어 입학한것이 룡정 명신녀자고등학교였다. 그 학교에서 3년간의 수업을 마친 뒤 김순자는 연길현교육국의 배치로 화룡현 서성구중학교의 교원으로 초빙받았으나 그것을 단연히 포기하고 당시 동북군정대학 룡정분교의 학생인 김룡환총각과의 결혼을 선택, 후날의 수십년간 무직업으로 살면서 남편의 뒤시중과 남을 돕는것을 락으로 삼으면서 살아왔다.

1950년 순자네 가정은 남편 김룡환이 새로 설립된 공립 연변위생학교의 교원으로 초빙받으면서 연길로 이주, 당시 주인민정부(지금의 연길시정부) 서쪽동네에서 살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한족들과 이웃으로 함께 살게 된 순자는 본격적으로 민족단결을 도모하는 사회의 공익사업에 투신하기 시작, 어느 한족가정에 환자가 생기거나 반찬거리가 떨어지면 그 가정에 나타나 도와주었고 어느 한족가정의 위생이 불결하면 주저없이 위생청결을 도와주어 동네 한족가정들의 한결같은 절찬을 받았다.

한편 그때로부터 순자는 《자기 민족한테 30%의 배려를 쏟았다면 한족한테는 70% 혹은 그 이상의 배려를 쏟아야 한족들의 긍정과 신뢰를 받을수 있다. 이렇게 되여야 연변의 민족단결사업은 새로운 차원으로 거듭 발전할수 있다》고 주장, 부분적 조선족사람들의 반감을 샀으나 결국 조선족과 한족 사이의 두터운 우정과 신뢰를 쌓게 되면서 나중에는 반감을 보이던 부분적 조선족들도 감탄해마지 않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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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김순자네 가정은 연길시 광명가(지금의 신흥가)로 재차 이주하게 되였다. 연길시 광명가로 이주한 뒤 순자는 광명가 9거의 적십자회 주임 겸 과외총보도원직을 맡게 되였다. 그러면서 순자는 더욱 헌신적으로 남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페결핵환자가 있는 한족가정에 경상적으로 드나들면서 시중을 드는 한편 반찬거리가 없자 김치와 장 같은것을 갖다준 일, 두부장사를 하는 한족부부를 도와 돈도 받아주면서 그들이 아무런 반찬도 없이 밥을 먹자 역시 집에 있는 김치와 감자 등을 갖다준 일, 한 한족남성이 임신한 자기의 안해를 때리는것을 보고 그것을 말리다가 허리까지 상한 일, 한족걸인이 쓰레기더미를 뒤지며 먹을것을 찾는것을 보고는 깨끗한 음식을 먹으라고 삶은 호박 등을 비닐주머니에 담아 쓰레기장의 담장우에 놓아준 일 등… 이같은 일들은 모두 대단한 일은 아니였지만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거나 꺼리는 일들이였다.

그외 한번은 집에 손님이 와서 랭면을 사러 가다가 길가에 한 젊은이가 쓰러져있는것을 보고는 행인들을 불러 연변병원으로 싣고가 치료받게 하였지만 그 젊은이의 계모로부터 랭대를 받기도 했고 겨울철 길가에 술취해 쓰러진 한 남성이 얼어죽을가봐 겨우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부근에 있는 보일러실까지 밀차로 실어다 눕히느라고 많은 시간을 지체한탓에 집에서는 석탄을 사러 간다던 순자가 돌아오지 않자 온가족이 동원되여 찾았던 일, 마라손경기중 쇼크로 쓰러진 한 녀학생을 업고 연길시 공원거리로부터 연변병원까지 달려간 일 등 헤아릴수 없이 많다.

두부방을 경영하는 한족부부네가 생활난으로 음력설이 다가옴에도 아무런 부식도 사지 못한것을 알고 시장에 가서 돼지고기, 소고기와 젖은 명태 등을 한꾸러미 사들고 찾아갔는데 얼마후 순자의 남편 역시 부식 한꾸러미나 사들고 이 한족부부네 두부방을 찾아간 재미있는 스토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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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의 초기였던 1983년 순자는 연변위생학교 남쪽거리옆에 《북해상점》이란 가게를 차리게 되였다.

그때 김순자할머니는 돈화의 사하연에서 연변위생학교에 붙은 리문영이라는 한족녀학생을 알게 되였다. 상점에 와서 맛있는걸 사는 여느 학생들과는 달리 우표나 치약따위만 사는 문영이는 어머니가 없는데다 70고령인 아버지마저 심한 장애인이였다. 그러자 불쌍한 문영이의 어머니로 되여주기고 작심한 김순자할머니는 그때로부터 여러모로 그 한족학생을 돕기 시작, 문영이한테 상점에 와 국밥을 먹게 하고도 모자라 밤에 복습할 때 요기하라고 사탕이나 빵같은것을 늘 질러주었으며 언젠가 문영이가 된감기에 걸렸다는것을 알게 되자 솜내의와 약을 사갖고 직접 문영이의 기숙사로 찾아가 문영이로 하여금 깊은 감동을 받게 한 동시에 정식으로 문영이를 딸로 받아들이기고 했다. 또한 《3.8》절이 돌아오자 문영이와 그의 친구들을 상점으로 오게 하여 함께 명절을 쇠기도 했고 그들이 일본어공부에 애로가 많다는것을 알자 손수 상점에 작은 흑판을 걸어놓고 일제시대때 배운 일본어지식을 바탕으로 일본어를 배워주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문영이한테 친딸이상의 사랑을 몰부었다.

평소에 도와주었던 연변위생학교 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

당시 순자할머니의 도움과 사랑을 받은 한족학생은 문영이뿐만 아니였다. 화전에서 온 정수금, 장춘에서 온 중경림과 훈춘에서 온 장려 등 6명에 달하는 한족고아들도 모두 정도부동하게 순자할머니의 《손등을 씻어먹은 자식》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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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돈화시화교풍습병전문병원에서 근무하는 리문영은 돈화시실험중학교의 심엽군이란 교원총각과 백년가약을 맺고 결혼하게 되였다. 당시 김순자할머니는 친딸들이 결혼할 때 넣은 정성보다 더 큰 모성애를 갖고 문영의 결혼에 신경을 썼다. 딸들인 영순이와 영애를 동원하여 연길시내를 돌며 제일 값지고도 보기가 좋은 천으로 이불등과 이불안 그리고 담요감을 샀으며 며칠동안 신경을 쓰며 이불안에 풀칠하고 볕에 바래워 새하얗게 하였으며 한뜸한뜸 정성들여 이불과 담요를 만들었을뿐만아니라 새살림에 쓸 그릇같은것을 몽땅 준비해갖고 남편 김룡환과 함께 돈화에 가 문영의 친정부모신분으로 결혼식에까지 참가하였다.

그때 워낙 순자한테 딸이 없어 문영이를 양딸로 삼았으리라 여겼던 돈화시실험중학교의 교원은 문영이가 순자의 딸로 되게 된 전후사연을 듣고 또 순자한테 아들 삼형제와 딸 삼형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전국에 내놓고 자랑할만한 위대한 조선족어머니》라고 높이 평가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뒤 문영이가 임신해 출산날자가 가까와오자 김순자할머니는 또 아기포대기, 기저귀와 기타 아기옷같은것을 장만해가지고 문영이를 찾아갔다. 그때 임신으로 문영이의 발이 몹시 부은것을 본 할머니는 문영이가 순산하도록 매일 아침마다 문영이를 데리고 밖에서 운동삼아 산책, 돈화역부근에서 짠지장사를 하는 조선족아줌마들이 《저 할머니가 데리고다니는 딸이 한족인걸 보니 저 할머니가 한족령감을 해서 사는 모양》이라고 오해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문영이의 아들 심붕곤도 김순자할머니를 친할머니처럼 따르고있다

순자할머니가 문영이한테 쏟은 정성은 이뿐이 아니다. 결혼생활중 문영이네 가정에 그 어떤 곤난이나 모순이 생겨도 늘 찾아가 해결해준것은 물론 어떤 경우에 문영이가 혹시 잘못 처사한 가정문제가 있어도 무턱대고 감싸준것이 아니라 비판도 하고 타일러주기도 하면서 문영이가 옳바른 결혼생활을 할수 있도록 적극 인도해주었다.

× × ×

현재 문영이와 김순자할머니사이는 그 어느 친모녀 관계에 못지 않게 화목하고도 정이 깊다. 문영이는 매번 순자할머니한테로 올적마다 항상 할머니의 건강을 걱정하고있으며 저녁에 잘 때면 늘 순자할머니의 목을 끌어안고 자군 한다. 뿐만 아리라 길림성작가협회 회원이기도 한 문영이는 《나의 조선족어머니》 등 산문과 시를 여러 간행물에 발표하는것으로 순자할머니에 대한 정을 표달하기도 한다. 그리고 문영이외 정수금, 중경림, 장려 등 기타 《한족자식》들도 이젠 모두 의료위생분야의 중견으로 자라났다. 그들은 늘 당년에 순자할머니의 사랑을 받던 때의 이왕지사를 입에 올리면서 《8.15》로인절, 설명절과 순자할머니의 생신때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김순자할머니는 더없는 행복감에 취해 그들한테 맛있는 음식 한끼라도 더 해먹이려고 친딸들을 들볶기가 일쑤이다.

한편 로년에 들어 김순자할머니는 몸이 몹시 불편한 상황이다. 바깥에서는 물론 집안에서도 지팽이를 짚어야 겨우 출입을 할수 있고 심지어 식사시에도 쏘파에 앉아야만 편히 식사할수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마음만은 전혀 늙지 않은 김순자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이미 지난해에 연변어머니학교를 수료했고 지금도 여전히 연변애심어머니협회 활동과 연길시 북산가두 뢰봉반활동 및 연변방송애청자협회의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있으며 이제 북산가두 단산로년대학에 다닐 계획도 잡고있다. 그리고 만년에 퇴직금 한푼도 없는 상황임에도 2008년 사천강진과 2010년 옥수강진시 각각 200원과 100원을 성금하였으며 지금까지도 여전히 연변대학에 다니고있는 한족학생 후조림과 왕비를 손자로 삼고 그들의 성장을 늘 관심하고있다.

/김철균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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