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우리 노래 100년 이야기(9)
예술작품의 창작은 예술가의 머리속에서 섬광처럼 반짝 빛나며 순간 스쳐지나가는 령감을 잡아 창조적인 정열을 작동시켜 이뤄내는 작업이다.한수의 가요가 창작되는 경우도 이와 같은데 어떤 노래는 수개월,수년간 심지어 수십년의 시간을 경과하며 보충되고 수정되여 완성되지만 그와 달리 상상밖으로 매우 짧은 시간에 완성되는 경우도 있다.
가요 《동동타령》의 탄생도 이와 같아 작사, 작곡 과정이 모두 합하여 불과 한시간도 채 안 걸려 이루어진 경우이다. 이 전설같은 창작담을 이 노래의 작곡자인 안계린선생 본인의 입으로 들어보자.
《1987년도 6월달이라고 생각됩니다.그해에 <연변의 여름>예술제를 가지게 되여 작사하는 동무들과 작곡하는 동무들이 함께 연길시 민주촌에 가서 창작활동을 하였습니다.프로그람을 짜던중에 남녀2인창곡이 수요되여 석화선생에게 가사를 부탁하였습니다. 우리 민요에 <무엇이 동동> 이런것이 있는데 이걸 쓰면 어떨가? 이 말 한마디에 석화선생이 무릎을 탁 치며 <됐습니다> 하고 밖으로 나가던것이 반시간도 채 안되여 가사를 써왔습니다. 보니깐 내 마음에 딱 들어서 나도 또 제꺽 곡을 지어왔습니다. 창작과정에서 이렇게 곡이 빨리된것도 내 창작생애에서는 드문 일입니다…》
석화시인이 《반시간도 안되여 가사를 써가지고》온것이 바로 《동동타령》가사이다. 가사를 한참 들여다보던 작곡가가 《이번은 내 차례요》하며 석화시인이 나갔다 들어온 문을 다시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그도 역시 30분이 채 안되여 시물시물 웃으며 방으로 들어왔다. 작사와 작곡 창작이 합하여 한시간내에 모두 완료된 이 가요는 예술제에서 주요종목으로 무대에 올랐다. 석광선,남정희 두 가수가 남녀2인창으로 부른 이 노래는 우렁찬 박수갈채를 받았으며 예술제 최우수상을 받고 수년후에는 또 연변조선족자치주인민정부의 최고예술상인 《진달래》문예상을 받았는데 노래는 현재까지 창작당시 원 모습 그대로 한글자 수정 한번 거치지 않고 불려지고있다.
앞강물 뒤강물에 물오리 동동 뜨고
네 가슴 내 가슴에 기쁨이 동동 뜨네.
흐르는 물결우에 버들잎 동동 뜨고
가는 정 오는 정에 사랑이 동동 뜨네.
해밝은 하늘가에 아침해 동동 뜨고
뜨락의 낟가리에 밝은 달 동동 뜨네.
새파란 련못우에 꽃잎이 동동 뜨고
우리네 새살림에 기름이 동동 뜨네.
에루화 동동 데루화 동동
동동타령을 부르며 잘살아보세.
가사는 전렴 4행,후렴 2행의 2절 가사 전문에 모두 조선어고유어를 살려쓰고 입말체 통속적인 어휘를 썼으며 한자어휘가 한글자도 들어가지 않았다. 또한 조선말가사의 운률토대에 따라 완벽한 《3․4조》운률을 지키고 유향자음과 모음을 골라 음색, 음가를 따지면서 매개 단어의 어휘기능이 충분히 발휘되게 하였다.
《동동》이란 어휘는 유향자음으로 맑고 순탄한 감을 주면서 음조미를 돋우는데 전체작품에서 16번이나 되풀이되여 그 음가가 충분하고 효과적으로 발휘되였다. 작품은 이렇게 우리 문학 고전인《고려가요》의 《동동》에서 운을 따다가 오늘의 시대적 맥박, 민족적 정취가 넘치는 새로운 형태의 노래에 훌륭히 담아내였다.
기고인 석화(시인)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