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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험 유무는 왜…? 굳이 그것까지” 굴욕의 진료, 산부인과

[기타] | 발행시간: 2012.07.02일 19:13

여성이 불편한 산부인과

“검사할때 번거롭다, 솔직히 말해라” 굴욕주는 의료진

접수대부터 진료·시술까지

의료진 노골적 발언에 민망

사전피임약 처방전 필요한데…

여성들 심리적 부담 커 고민

환자 배려 의료지침 등 필요

지난 6월 정부는 사전피임약을 전문약으로 분류하는 약사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여성들이 산부인과를 찾을 일이 더 많아질 수 있다. 이를 두고 여성들은 산부인과에 가는 것 자체가 눈치 보이는 사회 분위기를 지적한 바 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산부인과 진료 경험이 있는 여성 21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는 산부인과 진료에 대한 여성들의 두려움이 실제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준다. 설문 특성상 응답자의 신상과 구체적인 피해 일시·장소 등을 밝히진 않았지만, 여성들은 산부인과에서 겪은 수치와 불편을 설문지에 빼곡히 적었다.

 신지은(가명·36)씨는 얼마 전 산부인과에서 느낀 굴욕감이 생생하다. 아이를 낳고 정기검진차 방문한 신씨에게 의사는 은근히 ‘수술’을 권했다. “출산을 한 뒤니 부부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싶으면 이참에 수술을 하라”고 말했다. 그가 권한 것은 부부관계를 위해 여성 성기를 성형하는 수술이었다. “배려인지 희롱인지 알 수 없는 제안”이었다고 신씨는 말했다.

실제로 설문조사에 응한 여성들은 진료가 시작되는 접수대에서부터 낙태경험 또는 성경험을 묻는 수치스런 질문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어느 여성은 “진료 접수 때 ‘냉이 많아져서 병원에 왔다’고 했더니, 접수대 간호사가 큰 소리로 ‘성병이네요’라고 말해 매우 불쾌했다”고 적었다.

 진료 시작 뒤에도 수치심을 주는 의료진의 발언이 이어졌다고 응답자들은 적었다. 특히 “성경험이 있느냐”고 묻는 의료진의 태도가 당혹스러웠다고 여성들은 밝혔다. 어느 여성은 “성경험이 없다”고 답했다가 “검사할 때 번거롭다. 솔직히 말하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그 뒤로 가급적 산부인과에 가지 않는다”고 이 여성은 밝혔다.

 의료진이 성경험 여부를 묻는 것은 관련 진료에 필수적인 정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험이 있든 없든 “왜 그런 정보가 필요한지 사전 설명 없이 다짜고짜 물어 불쾌했다”는 게 처음 산부인과를 방문한 여성들의 이구동성이다. 여성민우회 조사를 보면, 산부인과 방문 당시 성경험이 있었던 경우는 69.5%, 없었던 경우는 29.5%였다.

 자궁경부암 검사를 받으러 갔던 어느 여성은 “결혼 안 했으면 처녀막이 상할 수 있으니 검사하지 말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자신을 배려하는 듯하면서도 ‘처녀성’ 운운하는 발언에 수치심을 느꼈다고 응답자는 적었다. “몇번 해봤나”, “최근엔 언제 했나”, “첫 경험이 언제인가”, “남자친구 말고 섹스 파트너가 있나” 등을 아무렇지 않게 묻는 일은 점잖은 축에 속했다. 이들이 기록한 의료진의 어떤 발언은 그대로 옮기기에 민망할 정도다.

 “성기 모양이 참 예쁘다. 남편이 함부로 하지 않는가 보다.” “가슴이 작아서 사진이 찍히려나 모르겠네.” “어린데 왜 산부인과에 왔을까?” 심지어 체모가 많은 것을 보고 “남편이 좋아했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경우도 있었다.

환자보다 의사 중심으로 꾸며진 진료 환경에 대한 여성들의 성토도 이어졌다. 다리를 위로 향한 채 눕게 되어 있는 산부인과의 ‘진료의자’를 응답자들은 ‘굴욕의자’, ‘쩍벌의자’로 부르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한 여성은 “진찰대에 다리를 벌리고 올라가는 것 자체가 매우 불쾌해 다시 가고 싶지 않다”고 적었다. 자궁암 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았던 여성은 “의사가 들어오기 전 속옷을 벗고 다리를 벌린 채 준비했고 뒤이어 들어온 의사는 아무 설명 없이 진료도구를 질 내부에 집어넣어 검사했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의 최안나 대변인은 “산부인과 진료는 특히 예민한 분야이므로 성경험 여부 등 구체 정보가 왜 필요한지, 진료 과정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상세히 설명하고 의견을 구하는 건 당연한 절차”라며 “산부인과의 진료 서비스가 많이 나아지고 있다 해도 여전히 일부 환자 눈높이에 부족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여성민우회는 이달 중 1000여명에 대한 실태조사 최종결과 분석이 끝나면 전문의·보건전문가 등과 간담회를 열어 환자를 배려하는 산부인과 의료 지침을 만들어 배포하는 등 ‘산부인과 바꾸기 프로젝트’를 이어갈 계획이다. 김인숙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는 “왜 여성들이 산부인과에 가는 데 부담감을 느끼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하여 앞으로 더 나은 산부인과 진료 문화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겨레>는 ‘여성이 불편한 산부인과’를 ‘여성이 행복한 산부인과’로 바꾸기 위한 제보와 의견을 받아 관련 보도를 이어갈 예정이다.

한겨레뉴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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