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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생님13]결손가정 자녀들에게 따뜻한 사랑과 정성을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2.07.04일 17:27
연변대학사범분원 부속소학교 리홍화교원의 이야기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것 같아요. 저에게는 38명의 <자식>들이 있어요.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듯이 <자식>을 사랑하는 저의 마음은 똑같아요.》

연변대학사범분원부속소학교 리홍화교원이 학급의 38명 학생들을 친자식 못지 않게 가르쳐온 정성과 사랑은 이미 학교에서도 정평이 나있다.

그가 맡은 학급은 과반수인 3분의 2의 학생들이 출국 및 도시진출 가정과 리혼가정 및 편부모가정에서 생활하다보니 어려움이 적지 않다. 특수한 군체인 이 학생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것 같지만 실은 학습, 품행, 생활 및 심리 등 부동한 면에서 문제점들이 존재했다. 리홍화교원은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속에 비낀 우울한 그늘과 부모사랑에 대한 갈망으로 나타나는 반상적인 행동들을 바라보면서 늘 마음이 아팠다.

(교원이기에 앞서 어머니로 되여 애들에게 사랑을 듬뿍 안겨주리라!)

라홍화교원의 학급에는 한국에서 출생한후 돌이 되기전에 부모가 리혼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한 녀학생이 있었다. 엄마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부모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란 아이는 성격이 괴벽하고 자존심과 경계심이 강하고 례모가 없었다. 그 녀학생은 늘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밉고 증오스럽다는 거친 말을 자주 했다. 설상가상으로 어느날 갑자기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하게 된후부터 녀학생은 너무나 큰 충격에 며칠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퀭하니 앉아있는 아이의 어지러운 옷차림과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보는 리홍화교원의 마음은 찢어지는것 같았다.

(유일하게 의지하던 할머니마저 곁을 떠났으니 어린 마음에 얼마나 받아당하기 힘들가? )

아이를 치료할수 있는 방법은 오직 사랑과 관심뿐이라는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리홍화교원은 그 녀학생에게 다가가 손을 꼭 잡아주었다. 따뜻한 선생님의 위로에 녀학생은 그간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기 시작했다. 그는 서럽게 우는 학생의 눈물을 훔쳐주고나서 아이의 헝클어진 머리를 빗어주고 더러워진 옷도 깨끗이 빨아주었다. 그 녀학생에 대한 리홍화교원의 사랑은 특별했다. 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책값도 여러번이나 대주었으며 생일이면 작은 선물같은것을 사주어 아이를 기쁘게 해주었다. 어려움이 없을가 로심초사하면서 아이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고 자주 집으로 데려다 목욕도 시켜주었다. 어머니사랑을 처음 받아본 아이는 차츰 작은 일이 있어도 선생님을 찾아 이야기하면서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우울하고 례모없던 아이가 언제부터인가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아이들과 어울려 갔다.

3학년 상학기, 그의 학급에는 김정원이라는 녀학생이 전학해왔다. 부모가 리혼한후 아이는 외할머니와 함께 생활하고있었다. 외할머니댁에서도 별로 사랑을 받지 못한 정원이는 학습성적이 차했고 반항심리로 하여 늘 불만을 토로하면서 트집을 잡아 아이들과 다투군 하는 《문제아이》였다. 그러나 그는 정원이가 조직능력이 있고 달리기, 그림그리기, 널뛰기,등 여러면에서 특장이 많다는것을 발견했다.

(특장을 돌파구로 삼아 아이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자)

학급에 활동이 있을 때면 리홍화교원은 정원이더러 직접 조직하도록 기회를 주면서 자신감을 키워주었으며 널뛰기같은 특장에 관심을 갖고 적극 지지해주고 응원해주었다. 운동대회나 각종 경색에 적극 참가시켜 특장을 발휘하도록 하였고 반급을 위해 영예를 따낼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 짬짬이 시간을 내여 정원이가 바른 인성을 갖도록 인도해주는것도 잊지 않았다.

정원이의 학습성적을 제고시키기 위해 《이렇게 재간도 많고 학급을 위해 많은 영예도 떨칠수 있는데 학습도 노력하면 꼭 잘해낼수 있다》라고 부단히 자신심을 갖게 하고 학습방법지도도 곁들여 노력의 단맛을 느끼게 하였다. 선생님의 믿음과 관심은 부모와 가정의 사랑을 잃고 방황하던 《문제아이》를 차츰 전변시켰다. 정원이는 반급의 각항 활동에 적극 참가하고 학습성적도 제고를 가져왔으며 널뛰기대회에서도 여러차례 참가하여 상을 받기도 했다. 지난학기말 어머니를 따라 한국으로 떠나게 된 정원이는 선생님과 떨어지기 아쉬워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선생님과 갈라지기 싫습니다. 선생님은 제 엄마와 같습니다. 》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주고 관심해주는 리홍화교원은 아이들의 든든한 보호인이기도 했다.

2학년때 진흠이라 부르는 한족녀자애가 전학을 왔다. 며칠이 지나 상학도중 갑자기 아이가 입에 허연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손발이 오그라들면서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고있는 아이의 모습에 그는 무서워 깜짝 놀랐다. 바삐 응급조치를 취하면서 애 어머니한테 련계하였다. 그제야 어머니는 딸애가 심한 간질병을 앓고있다며 일찍 알려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진흠이는 간질병약을 늘 복용하다보니 반응이 무디고 학습성적도 차했으며 거기에 게으르다보니 몸에서 냄새까지 났다. 일부 반급아이들은 그와 멀리하면서 말조차 걸려 하지 않았다.

간질병은 무엇보다 안정이 필요하다는것을 안 리홍화교원은 학급회를 조직하고 학생마다 진흠이를 친형제자매처럼 관심하고 조를 짜서 번갈아가면서 곁에서 돌보는 활동을 벌렸다. 체조를 하다가도, 체육시간을 보다가도 운동장에서 놀다가도 발작하는 아이때문에 그는 한시도 아이한테 눈을 뗄수가 없었다. 병이 발작했다는 아이들의 보고를 받으면 그는 한달음에 달려가 기진맥진해 축 처져 몇갑절 무거워진 아이를 업고 의무실로 달려가 팔다리를 주물러주고 꼭 안아주군했다. 아이가 커갈수록 더 자주 발작하다보니 힘들고 지칠법도 했지만 아이를 돌보는 그의 한결같은 행동에 학부모들마저 학교를 찾아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다.

리홍화교원은 교원이기에 앞서 여러 자식을 돌보며 키우는 보육원이기도 했다.

그의 학급에는 입학해서 2년간 오줌을 가리지 못한 김영화라는 애가 있었다. 량부모가 일본에 있다보니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아이는 담이 작고 무서움증을 많이 탔는데 병적으로 오줌을 참지 못했다. 걸상에 앉은채로, 중간체조시간에는 서서, 하루에도 몇번씩 실수를 저지르군 했다. 그때마다 그는 욕 한번 하지 않고 아이의 옷을 갈아 입히고 몸을 씻어주고 더러워진 빨래감을 씻어 말리우군 했다. 그는 평소 시간이 나면 아이 손을 잡고 함께 화장실을 다녀오기도 하고 아이에게 심부름도 자주 시키면서 담도 키워주군 했다. 결국 2년만에 아이는 스스로 병을 극복할수가 있었다.

그가 부모사랑이 부족한 결손가정 자녀들에게 기울인 노력은 이루다 말할수 없다. 그래서 학급애들은 그를 항상 어머니처럼 믿고 따랐다.

어릴적 아버지를 잃고 할머니와 생활하면서 어딘가 자신감을 잃고 눈치만 보던 지건화학생은 선생님의 사랑속에서 자신감을 되찾고 학교대대위원으로 활약하였는데 매일 저녁 선생님께 전화를 드리군 했다. 때론 인터넷으로 고민상담도 해오는 아이들, 방학이면 선생님이 보고 싶다면서 집으로 찾아오는 아이들, 맛나는 반찬이라도 있으면 몰래 밥곽에 넣어오는 아이들, 몸이 아프면 서로 앞다투어 약봉지를 들고 오는 사랑스런 제자들의 모습을 볼때면 리홍화교원은 힘들고 고달팠던 일들을 모두 잊어버리고 새힘이 솟군 했다.

때론 학생들에게 많은 정력을 몰붓다보니 가정이나 어린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못할 때가 많았다. 아이가 아파도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퇴근후에야 링게르주사를 맞힐 때나 늦게 퇴근하는 어머니를 기다리다 지쳐 유치원에서 홀로 자고있는 아이를 바라볼 때면 가슴이 미여질듯 아플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리홍화교원이 결손학생들에게 기울인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반급의 과반수가 결손가정 자녀들이지만 그의 반급에는 《문제아이》가 한명도 나타나지않았다. 그는 선후하여 연길시우수교원, 연길시 우수중대보도원, 등 많은 영예를 안아왔으며 그가 맡은 반급은 학교의 각종 활동에서 항상 많은 영예를 따내는 선진반급으로 되였다.

《저는 앞으로도 제 <자식>들에게 남은 사랑을 유감없이 줄것입니다. 황차 애들을 사랑하고 키우는것은 인민교원으로서 응당해야 할 일이 책임이고 의무가 아니겠습니까? 》

리홍화교원은 오늘도 밝고 건강한 학생들의 해맑은 모습을 바라는 어머니마음으로 학생들에게 온갖 정성을 몰붓고 있다.

/강순선 안상근기자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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