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앱 | | 모바일버전
뉴스 > 정치 > 정치일반
  • 작게
  • 원본
  • 크게

731부대 두목은 어떻게 심판을 면할 수 있었을가?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1.08.16일 11:25
  최신 증거 일본 미국 전범인도 배후의 죄악의 거래 폭로

  일본이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하여 무조건 항복을 선언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하여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고난을 겪을대로 겪은 중국인민에게 있어서 이날은 고무적인 날이며 더우기 영원히 기억해야 할 날이다. 이날을 위해 중화의 아들딸들은 공동의 적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며 피어린 전투를 치렀으며 목숨과 붉은 피로 새로운 장성을 쌓고 중화민족의 침략 저항의 장려한 서사시를 써내려온 것이다.

  력사를 돌이켜보면서 우리는 중화의 영웅적인 아들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침략을 당했던 그 력사는 모든 중국인들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으며 불굴의 항쟁 력사는 모든 중국인들의 마음속에서 분발 매진하는 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본의 중국침략전쟁은 중국과 중국인민에게 막대한 상처를 가져다주었으며 그 력사가 부정 당하거나 잊혀지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1937년 12월 13일, 일본침략군은 중국 남경에서 40여일에 걸친 비인간적인 참혹한 대학살을 감행해 전 세계를 경악케 한 남경대학살의 참극을 빚어냈다. 30만 중국 동포들이 처참하게 학살당했으며 무수히 많은 여성들이 유린과 학살을 당했다.

  올 들어 또 7명의 남경대학살 생존자가 세상을 떠났다. 현재까지 등록돼 있는 남경대학살 생존자는 "65명"뿐이다. 그들은 침략자의 사과를 기다리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남경대학살 생존자들은 민족 고난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력사의 중요한 증인이다. 그들은 직접 겪은 체험과 느낌으로 사람들에게 "전쟁을 반성하고 평화를 사랑하라"고 일깨워주고 있다.

  기타노 마사지(北野政次): 인도 배후의 죄악적인 거래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은 수많은 죄행을 저질렀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지 76주년을 즈음하여 중국침략일본군 제731 부대 죄증진렬관은 기타노 마사지와 관련된 많은 문서와 기록 및 최신 연구성과를 공개했다. 그 문서와 기록 및 연구성과는 중국침략일본군 제731 부대의 죄증을 한층 더 립증해주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전쟁에서 패해 항복했다. 그 이전에 731부대는 이미 전원 철수명령을 받고 전부 일본으로 철수했다. 그러나 핵심 멤버 한명만은 중국에 남았다. 그는 바로 731부대의 2대 대장인 기타노 마사지였다.



  1942년 8월 3일부터 1945년 3월 1일까지 기타노 마사지는 이시이 시로(石井四郎)의 후임으로 중국침략일본군 제731부대 2대 대장직을 맡았다. 1945년 3월에 화중파견군 제13군 군의부장으로 전임됐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전쟁에서 패해 항복하자 기타노 마사지는 상해에서 포로가 되여 전쟁포로수감소에 수감되였다. 그 후 미군정보당국의 조정하에 1946년 1월 9일 기타노 마사지는 일본으로 인도됐다. 미국은 왜 백방으로 일본 전범 한명을 인도하려고 했을가?

  김성민 중국침략일본군 제731부대 죄증진렬관 관장: 기타노는 (과거의) 고위층 일원으로서 (일본이 항복한 후) 일본 밖에 있는 유일한 731부대 사람이였다. 그런 사람이 만약 중국에 남아 있으면 반드시 중국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미국은 731부대의 핵심 기밀을 장악하고 있고 부대장을 지내서 731부대의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런 고위층이 미국 이외의 다른 곳에 있게 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사람은 너무나도 중요한 인물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정보기관과 군의 조률하에 전용기와 전담요원을 동원해 상해로부터 인도했던 것이다. 이른바 인도란 바로 그를 보호하는 것이였다.

  기타노 마사지는 일본에 돌아간 후 2월 6일 미군으로부터 세균전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 1947년 4월 1일, 기타노 마사지는 미군에게 17페이지 분량의 자필 진술서를 제출했다.



▲ 기타노 마사지의 자필 진술서 원본은 미국 국가기록보관소 제2관에 소장되여 있다.

  그 진술서 첫머리에 기타노 마사지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이시이 시로 중장은 731부대 창시자이다. 부대의 임무는 관동군 근무령의 규정에 따라 전염병의 예방, 각종 백신의 제조와 보급, 급수 연구, 급수 기자재 제조와 보급, 전염병의 연구, 방역 급수 교육 등이다. 그 이외에도 이시이 시로는 731부대에 다른 방면의 연구들을 하도록 지시했다."

  김성민 중국침략 일본군 제731부대 죄증진렬관 관장: "그(기타노 마사지)는 '이시이 시로가 관동군의 근무에 요구하지 않은 사항들에 대해서도 연구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정상적인 업무직능을 벗어났다는 말이다. 그 부분의 일이 세균 무기의 연구개발이다. 여기에는 '그것은 인도주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명확히 씌여져 있다. 사실상 그도 731부대의 세균무기 연구개발을 시인한 셈이다."

  이밖에 기타노 마사지의 진술서에는 또 731부대의 인원 편제, 연구 성과, 세균무기에 대한 소개 등의 내용도 포함되였다. 한편 기타노 마사지는 또 세균전과 인체생체실험에 관한 정보를 비밀리에 미군측에 넘겨주고 이를 조건으로 미국과 비밀거래를 함으로써 미국의 비호하에 종전후 심판을 피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세균전 전범 한명과 거래를 했을가?

  김성민 중국침략 일본군 제731부대 죄증진렬관 관장: "그들(미국)은 731부대 관련 더 많은 기밀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미국은 그것을 미국 국가 안보 전략의 수요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것은 미국과 그때 당시의 대국 간의 한차례 겨룸이기도 했으며 그것은 포화속의 전쟁이 끝난 뒤의 랭전이였기 때문에, 미국은 그것을 전략이라고 여겼으며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타노 마사지는 순조롭게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그가 말하는 이른바 자유를 아주 빨리 실현할 수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1945년 9 월부터 1948년 11월까지 도쿄 재판이 끝난 뒤 미국은 드 트릭부르크기지에서 잇달아 4차례에 걸쳐 조사요원을 파견했으며 적어도 25명의 731부대 대원에 대한 심문을 진행했다. 그리고 전쟁 책임을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731부대 인체실험, 세균실험, 세균전, 독가스실험 등 방면의 데이터를 얻어갔다.

  언행이 불일치한 세균전범



  진술서 제일 마지막에 기타노 마사지는 세균무기는 "의학의 정도를 벗어난 역용이며 국제 인도주의에 위배되는 것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라고 진술했다. 그리고 또 "전염병의 예방과 치료에 대한 연구에 힘을 쏟아 인류를 복되게 해야 하며 그래야 의미가 크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실에서 기타노 마사지의 행동은 정반대였다.

  김성민 중국침략 일본군 제731 부대 죄증진렬관 관장: "기타노는 1942년 8월 3일부터 1945년 3월 1일까지 731부대 대장을 맡았는데 이 기간은 731부대의 이른바 과학연구와 세균무기 개발 시기였으며 이를 위한 인체실험이 가장 많고 '성과'가 가장 크며 규모가 가장 큰 기간였다."

  김성민 관장은 "최근 몇년간의 여러 나라를 돌며 증거를 수집하고 기록을 정리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기타노 마사지가 731부대 대장으로 재직하는 기간 의학방역연구라는 명목을 빌려 인체실험을 통해 비밀리에 세균전 관련 연구를 진행한 증거를 일부 확보했다"며 "1944년에 발간된 《일본전염병학회지》에 실린 기타노 마사지의 《류행성 출혈열에 관한 연구》라는 학술론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라고 말했다.



  △번역문: 1942년 11월 6일 그 전염병이 류행한 부대가 소재한 손오(孙吴) 지역에서 쥐를 대량으로 잡아 이들 쥐의 몸에 기생하는 기생충 203마리를 모아 유제를 제조해 원숭이에게 투여했는데 원숭이가 발병했다. 11월 26일 발병한 원숭이의 혈액을 두번째 원숭이에게 투여했더니 전형적인 발병 증상을 보였다. 12월 14일 부검시 병리 조직학 관찰을 통해서도 마찬가지로 류행성 출혈열 병변이 확인됐으며 그후 지금까지 그 바이러스를 얻을 수 있었다.

   김성민 중국침략 일본군 제731부대 죄증진렬관 관장: "여기서 그 실험은 1942년 11월 6일 시작됐으며 그들은 현지에서 상당수의 쥐를 잡아 203마리의 기생충의 몸에서 일종의 주사액을 채취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원숭이 (몸)에게 주사했다고 썼는데 실제로는 사람에게 주사한 것이다."

  1947년 10월, 드트릭부르크기지가 에드윈 힐 등을 일본에 파견해 세균전에 대한 조사를 진행, 《힐 보고》를 썼으며 그중에 기타노 마사지가 이번 실험에 대해 미군에 진술한 내용이 기록되여 있다.





   번역문: 1942년 11월 인체실험을 시작한 후로 모든 조직을 이시카와 의사에게 보냈다. 일본군 가운데서 이 같은 자연질환을 처음 발견했을 때는 사망률이 30%였으나 맞춤형 치료를 통해 사망률을 15%로 낮추었다. 그러나 실험 중 사망률은 100%였다.

   진술서에서 기타노 마사지는 연구 과정에 인체실험을 했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그가 발표한 론문을 보면 실험 상대가 사람에서 원숭이로 바뀌였다. 김성민 관장은 "사실상, 당시 731부대 성원이 발표한 론문을 보면 이처럼 '원숭이' 등 단어로 인체실험을 은페하려는 론문이 절대 개별적인 사례가 아니였다. 의학전문가들은 이러한 은페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류형의 문장들이 일본 의학계 권위학회에서 강연으로 공개 발표되였을 뿐만 아니라 전문 의학잡지에 여러차례 실리기도 했다. 이로부터 731부대 인체실험이 당시에 이미 일본의학계의 '공개적인 비밀'로 되였고 학계에서도 의학륜리에 위배되는 이같은 '학술연구'를 묵인하였다는 점을 보아낼 수 있다. 전시 군국주의사상과 집체 폭행에 휩쓸려 일본의학계는 의학륜리와 도덕준칙을 온전히 저버렸다. 이러한 은페는 이른바 의학 전문가들이 실시한 인체실험이 한때의 무의식적인 행동이 아니라 왜곡된 의학륜리와 인성이 낳은 자발적 범죄라는 점을 더욱 립증해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성민 중국침략 일본군 제731부대 죄증진렬관 관장: "일본 의학계 엘리트들은 의학과 과학이 인류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 취지도, 도덕의 준칙과 궤도도 어긴 채 반인류적인 행동에 가담했다. 이로써 그들의 이른바 과학연구를 만족시켰을 뿐만 아니라 세균전의 연구개발에 조력자 역할을 함으로써 사실상 일본의 침략전쟁을 위해 봉사한 것이나 다름없다."

   군사계와 의학계 협력 배후의 국가범죄

   김성민은 "중국침략전쟁기간, 일본 의학계와 군사계는 세균전에 대한 연구를 위해 시종 밀접한 련계를 유지해왔다. 이는 기타노 마사지의 리력에서도 드러난다. 기타노 마사지는 731부대 부장에 취임하기 전인 1936년 8월, 당시의 만주의과대학 미생물학 교수로 부임되였다. 1911년 설립된 이 학교는 일본식민기구인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심양에 세운 사립학교로, 일본침략전쟁을 위해 봉사하는 의료일군을 대거 양성했다. 이번 전근과 관련한 보관서류도 최근 처음으로 공개됐다."고 말했다.







  김성민 중국침략 일본군 제731부대 죄증진렬관 관장: "당시 마츠오카 남만철도주식회사 사장은 일본 륙군성에 기타노의 만주의과대학 전직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러한 청원서가 일본 육군대신의 승인을 받아 일본 내각에 보고되였고 또 총리와 육군대신이 련명으로 천황에게 올려 천황의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여기에 '허락(可)'이란 글자가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기타노 마사지는 만주의과대학에서 교편을 받는 동안 줄곧 군적을 유지했는데 당시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였다. 기타노 마시지는 현역 군인과 의학교수의 이중 신분으로 군부세력을 통해 만주의학대학에서 인체실험을 진행하는데 여러모로 편리를 도모해주었다. 아울러 군에서도 대학으로부터 세균전 연구 및 기술차원에서의 협조를 받았다. 국가의 통일적인 조율과 동원 하에 학교, 과학연구단위와 군 체계는 당시 이른바 군학협동체계를 구축하였으며 이를 전쟁에 응용하기도 했다. 이 또한 일본 세균전의 실시는 아래로부터 우로 이르는 국가행위로, 의심할 바가 없는 국가범죄라는 점을 진일보 립증해주고 있다.

  /흑룡강라디오텔레비전방송국 국제부

뉴스조회 이용자 (연령)비율 표시 값 회원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 주시면 통계에 도움이 됩니다.

남성 75%
10대 0%
20대 0%
30대 50%
40대 0%
50대 25%
60대 0%
70대 0%
여성 25%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25%
50대 0%
60대 0%
70대 0%

네티즌 의견

첫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 관련 태그 기사

관심 많은 뉴스

관심 필요 뉴스

'하이브-민희진 내분'에 외신도 관심…"K팝 산업 권력투쟁 강타"[연합뉴스] 하이브와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극한 대립을 이어가는 가운데 외신들도 이번 사태를 상세히 보도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K팝으로 세계 무대를 휩쓴 방탄소년단(BTS)과 최근 인기몰이 중
1/3
모이자114

추천 많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1/3
'범죄도시 4' 개봉 4일째 200만 관객…올 개봉작 최단 기간

'범죄도시 4' 개봉 4일째 200만 관객…올 개봉작 최단 기간

'범죄도시 4' 개봉 4일째 200만 관객…올 개봉작 최단 기간[연합뉴스] 마동석 주연의 액션 영화 '범죄도시 4'가 개봉 4일째인 27일 누적 관객 수 200만명을 돌파했다고 배급사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가 27일 밝혔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올해 개봉한 전체 영화 가운

"계단오르기 수명연장 효과?" 심혈관질환 사망 위험 39% 낮춰

"계단오르기 수명연장 효과?" 심혈관질환 사망 위험 39% 낮춰

"계단 오르기, 수명연장 효과…심혈관질환 사망 위험 39% 낮춰"[연합뉴스] 신체 활동은 심혈관 질환, 암, 당뇨병 같은 비전염성 질환 예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누구나 짧은 시간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계단 오르기가 수명 연장 효과가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

류소명 해남성 성장, 한국 21세기한중교류협회일행 회견

류소명 해남성 성장, 한국 21세기한중교류협회일행 회견

4월 25일, 해남성 성장 류소명은 해구에서 한국 21세기한중교류협회 회장 김한규 일행을 회견했다. 류소명은 김한규가 장기간 중한우호 촉진과 해남의 발전에 관심을 가져준데 대해 감사를 표하고나서 해남자유무역항 건설 진전을 소개했다. 그는 해남성과 한국 여러 지

모이자 소개|모이자 모바일|운영원칙|개인정보 보호정책|모이자 연혁|광고안내|제휴안내|제휴사 소개
기사송고: news@moyiza.kr
Copyright © Moyiza.kr 2000~2024 All Rights Reserved.
모이자 모바일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