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형사법관 38명 모여 성범죄·경제범죄 양형 토론
지난달 31일 부산지방법원(박흥대 법원장)에서 전국에서 모인 형사재판 담당판사 38명이 '형사재판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과제'를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처음 개최된 전국형사법관포럼에 참석한 법관들은 특히 성폭력범죄와 경제범죄의 양형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주고받았다.
이날 법관들은 성폭력범죄의 양형에서 '합의'를 집행유예 판단의 주요 사유로 삼았던 것에 대해 아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포럼 사회를 맡은 이원범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47·연수원 20기)는 "친고죄에서 피해자가 피고인의 처벌을 원치 않으면(처벌불원) 처벌하지 않는 것을 고려해왔지만, 이제는 처벌불원을 결정적 사유로 보지 않겠다는 것에 모두들 공감했다"며 "물론 그 부분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합의됐다고 해서 약화된 양형으로 나가는 것에 반대한다는 의견으로 모아졌다"고 전했다.
이날 발표된 통계자료에 따르면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 집행유예 선고 비율은 3.3%(13세 이상 강간)~46.4%(강제추행)였지만, 피해자와 합의된 경우에는 63.7%(13세 이상 강간)∼89.6%(강제추행 상해)로 비율이 훨씬 높아졌다.
이는 피해자와 합의가 되지 않았을 때는 실형을 원칙으로 삼지만 합의가 이뤄지면 집행유예를 원칙으로 삼고 예외적으로 실형을 선고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날 토론에서 법관들은 △성폭력범죄가 피해자에게 주는 고통의 정도 △금전으로 피해가 완전히 회복되기 곤란한 범죄의 속성 △친고죄 규정의 전면 폐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 등을 고려해 '피해자와의 합의'나 '상당 금액 공탁'을 성범죄의 양형이나 집행유예의 결정적 사유로 고려하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주고받았다.
화이트컬라 범죄에서 '경제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형을 감경해주는 관행에 대해서도 법관들 사이에 다양한 논의가 진행됐다.
이 부장판사는 "'과거 경제 근대화를 겪는 과정에서 경제적 측면을 고려했던 양형이 국민들의 비판대상이 됐지만, 그 당시 사회경제적 상황에서는 설명될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을 비롯해 '현재 사회는 그런 단계는 넘어섰고, 법원은 법적인 판단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말했다.
간접적·잠재적 피해자가 많은 경제·금융범죄 등의 양형에 대해서는 좀 더 엄격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으로 중지를 모았다.
주가 조작이나 시세 조정으로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만 재판에서는 피해자들이 잘 드러나지 않아, 오히려 피고인에게 유리한 측면만 고려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지적에 공감했다.
포럼 관계자는 "이번 행사를 통해 법관들이 판결문에 일반 국민의 시각에서 공감하기 어려운 양형이유가 기재되는 일이 없도록 유의하고 판결의 결론을 더욱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도록 당사자들에 대한 양형이유의 설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