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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서울생활, 간첩질도 못 해먹겠네~

[기타] | 발행시간: 2012.09.27일 15:25
[리뷰] '간첩'이란 소재를 민생 문제로 조명한 영화 <간첩>명민, 변희봉, 유해진 등 신뢰감있는 배우들이 포진한 영화 <간첩>

ⓒ 롯데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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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에서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소재가 있다. 바로 '남북문제'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중 두 편이 분단국가가 가진 역사적 비극을 드라마로 풀어낸 영화라는 점은 분단이 영화의 소재로 충분히 매력적이고 대중 흡입력이 강함을 증명한다.

분단 상황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크게 두 가지 양상을 보인다. 하나는 <태극기 휘날리며>나 <고지전>과 같이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한 스펙터클 액션 드라마. 또 다른 하나는 <간첩 리철진> <의형제>와 같이 남파 공작원, 이른바 간첩들의 대한민국 침투기를 그린 게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간첩을 소재로 한 영화들 역시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간첩 리철진>과 같이 간첩의 희화화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고, 둘째는 <의형제>와 같이 국가 이데올로기의 산물로 그들을 조명하는 경우다. 그동안 한국 영화사에서 간첩은 구시대의 유물이자 역사적 비극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들이었다. 그렇다면 지난 20일 개봉한 영화 <간첩>은 어디에 속할까. 사실 이 영화는 조금 다른 지점에서 간첩을 다룬다.

영화 <간첩>의 내용을 한 줄로 정리하자면 '10년 이상 남파 생활을 해온 간첩들이 망명한 북한 고위 간부 리성용을 암살하기 위해 벌이는 소동극'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줄거리를 요약해버리면 영화 자체가 가진 매력을 다소 밋밋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다. 우리는 이 정도의 간첩들을 기간 영화 속에서 많이 봐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감독은 영화에 특정 상황을 첨가했다.

'남파 생활 22년 차, 생활고에 시달리는 간첩들은 먹고살기 바빠 죽을 지경, 이 상황에서 당의 명령이 떨어진다면?'

'생활고에 시달리는 간첩'이라는 글귀는 관객의 구미를 당기면서 동시에 뭔가 색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일반적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간첩의 모습은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단련된 인간병기가 아니던가). 이 정도의 시놉시스로 관객의 관심을 샀다면, 이제 영화는 내용으로 관객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내용은 무엇으로 채워졌을까.

아내의 잔소리에 시달리는 22년 차 간첩▲ 생활의 고단함이 김명민의 표정에서 드러난다. 영화 <간첩> 중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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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아웅산 폭탄테러' '부부 간첩 사기단' 등 간첩과 관련된 굵직한 사건들을 자료화면으로 보여주며 시작된다. 그런데 곧바로 비아그라 밀매 판매상인 간첩 김 과장(김명민 분)이 등장하면서 간첩들의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펼쳐진다.

김 과장은 "술 좀 작작 마시라"는 아내의 잔소리에 시달리고,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통보에 골치가 아프다. 거기다 야구 실력이 부족한 아들을 경기에 내보내기 위해 감독에게 로비까지 한다. 간첩치고는 체면이 말이 아니다. 남파 생활 22년 차인 김 과장에게는 가족이 생겨버렸고, 그는 4인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 됐다. 게다가 그는 북쪽의 가족까지 책임져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한편, 부동산 중개사 일을 하며 시각장애인 아들과 함께 사는 강 대리(염정아 분) 역시 삶과의 치열한 전투를 펼치고 있다. 중개 수수료 10만 원을 챙기기 위해 험한 소리를 해가며 악착같이 돈을 챙기는 모습에서 간첩을 찾아볼 수는 없다. 한미FTA에 반대하는 귀농 청년 우 대리(정겨운 분)와 소일거리를 찾아다니는 독거노인 윤 고문(변희봉 분)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먹고사니즘'의 쳇바퀴 속에서 민족해방의 혁명적 과업은 잊은 채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서민이 됐다. 영화는 이들의 삶을 스크린에 그대로 담는다.

영화 <간첩>은 간첩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이 설정은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간첩들의 좌충우돌을 그려낸 기존 영화들과 같은 맥락이다. 미 제국주의의 압제로부터 조국 해방을 꿈꿨던 두 손에는 스타벅스 커피가 들려있다. 어디 그뿐이랴. 인터넷을 통해 모든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지금, 간첩들은 1970년대를 그리워하기도 한다(영화 속 간첩들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포털에서 제공하는 지도 서비스를 통해 지리를 파악한다). 심지어 그들은 남파 당시 챙겨온 권총의 행방조차 모른다. 이런 설정은 간첩들을 웃음거리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간첩 없는 <간첩>, 2012년 한국의 현 주소를 담았다▲ 네 명의 간첩이 최부장(유해진) 몰래 계획을 세우고 단합하는 모습. 영화 <간첩> 중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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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 <간첩>은 간첩들의 모습을 통해 '전세금 폭등' '한미FTA' '재개발 문제' 등을 다루며 '간첩들도 먹고살기 힘들어진 한국사회'라는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이 현실은 영화 속 김 과장의 대사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남한이고 북한이고 다 죽여버리겠어. 조국이 내게 해준 게 뭐가 있어?"

그의 말은 삭막하다 못해 싸늘하다. 이 대사는 '분단'과 '간첩'이라는 코드에 덧칠된 국가 이데올로기적 색깔을 없앴다. 다시 말하자면, 영화가 국가의 존망을 음해하려는 세력으로 간첩을 조명한 게 아니라 국민의 경제·치안·교육 등 민생의 영역 속에 있는 서민을 그렸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국가 안보의 미명 하에 등한시되고 있는 민생을 다루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영화에는 간첩이 없다. 대신 날마다 먹고사는 문제로 힘겨워하고 투쟁하는 서민들이 있다. 옛말에 '국민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말이 있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민생이 결여된 국가는 국민에게 하늘이 될 수 없고, 국가의 존재 이유 역시 없는 것과 같다. 때문에 영화 속 간첩들에게 북한과 남한은 전혀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

영화 <간첩>은 역설적이다. 정신적으로 무장된 간첩들도 버티기 힘들어진 지금의 한국사회가 간첩을 통해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간첩>에는 한국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제시되고 있지 않지만, 2012년 한국사회의 현 주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런 '현실의 파악'은 문제의 해결로 가는 지름길이지 않을까.

영화라는 매체는 거대 담론에 의해 묵살된 문제들을 부각시키는 힘과 파급력을 지녔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영화 <간첩>은 '간첩'이라는 소재를 국가 안보에 입각해 풀어내지 않고, '민생'의 문제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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