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6돌 ‘한글날’을 맞아 한글 창제에 얽힌 비사를 다룬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지난 6일부터 오는 31일까지 서울 용산구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내 극장 용에서 공연하는 ‘뿌리 깊은 나무’(사진)다.
이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면에 숨어 있는 명나라와 조정 내 대신들의 반대 음모, 극비리에 진행되는 창제 과정 등을 보여준다. 특히 궁궐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을 주인공이 추적하는 과정에서 하나하나 진실이 드러나는 추리극의 형식을 띠고 있어 극의 몰입도를 한층 높이고 있다.
막이 오르면, 한양 의금부 옆의 감옥 전옥서의 한밤중이다. 궁궐 내 연쇄살인의 수사를 해온 겸사복 말단 강채윤이 끌려와 감금된다. 채윤은 내일 아침이면 주상 침소에 난입한 죄로 금부의 추국을 당하고 죽게 될 운명. 그는 환청으로 들리는 귀신소리에 공포와 절망에 사로잡힌다. 그때 건너 감방에서 광대 희광이가 깨어나 참견한다. 한양에서 알아주는 재담광대인 희광이는 술김에 궁녀들 처소에 들어가 희희낙락하다가 잡혀온 신세다. 희광이가 몰래 건네주는 막걸리에 기운을 차린 채윤은 그동안 궁궐 안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사건과 범인 추적 과정을 하나씩 털어놓는다. 첫 번째로 희생된 학사에서 네 번째 학사까지의 죽음과 진상을 추적했던 과정이 채윤의 이야기와 희광이의 재현으로 펼쳐진다. 채윤은 희광이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쳤던 사건의 실체에 점점 다가간다.
연극이 원작 소설과 크게 다른 점은 두 가지다. 소설에선 미관말직의 주인공이 궁중에서 다섯 번에 걸쳐 일어나는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연극에서는 주인공이 사건을 실제 시간으로 만나지 않고 회상과 재현을 통해 만난다. 또 연극에서는 주인공의 극적 행동을 돕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광대 희광이의 존재다.
무대 공간은 주인공이 감금된 감옥이 한편에 자리잡고 있다. 광대 희광이가 내일이면 누명을 쓰고 처형당할 채윤의 사정을 듣고 그와 함께 사건을 되짚어보는 마당으로 꾸며져 있다. 즉 연쇄 살인사건과 추적 과정이 감옥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재현되는 것이다. 물론 회상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건은 무대 중앙에서 벌어진다.
원작을 각색한 홍원기 작가는 “연극 ‘뿌리 깊은 나무’는 원작 소설의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며 “그러나 정해진 시간과 한정된 무대공간에서 원작의 재미와 의미를 전달해야 하기에 연극만의 짜임(구성)과 벌림(공연)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한글에 담긴 애민정신과 창제 과정을 ‘무대 공연’으로 풀어내는 데 주력했다는 것이다.
연출을 맡은 이기도 씨는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가 원작 소설을 확장했다면 연극은 원작을 보다 압축했다”면서 “소통과 열린 세상에 대한 세종의 뜻과 의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성덕·원영애·김경익·손경원·리민·김신용·김병철·이창희·류대식·장윤성·최희진·김진욱·김대현 등 출연. 02-3676-3676
문화일보,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