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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성폭행 살인, 멈춰진 러브스토리

[기타] | 발행시간: 2013.02.01일 10:06
여자는 그를 “완벽한 남자”라고 불렀다. 남자의 휴대폰에는 여전히 그녀의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다. ‘쥬이’라는 애칭으로. 생명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 친구는 내 가슴에 가장 가까이 들어와있던 사람이었다”고 남자는 말한다. 그는 곧 법정에 출두해 그녀가 버스에서 성폭행 당했던 그날 밤에 대해서 진술할 예정이다. 애인을 죽음으로 몰고 가고, 온 세상을 충격의 도가니에 빠뜨렸던 바로 그 사건에 대해서 말이다.

28세 IT전문가인 그는 “밤만 되면 그날 밤 버스에서 있었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고 말한다. 지난해 12월16일에 있었던 그 일로 그 역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거침없이 바른말을 하고 양어깨가 쫙 벌어진 청년이 지금은 지팡이 신세를 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그는 그날의 사건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그녀와의 복잡미묘한 관계에 대해 털어놓았다.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자그마한 체구의 그녀는 결국 23세의 꽃다운 나이로 숨을 거뒀다. 성폭행 피해여성의 신원 공개를 금지하는 인도 법에 따라 그녀와 그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겠다.

이번 버스 성폭행 사건으로 인도 전역에는 항의 시위와 함께 정의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현재 다섯 명의 남성이 강간 ∙납치∙살인을 포함해 다섯 가지 혐의로 재판을 받고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 변호사를 통해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피의자인 여섯 번째 남성은 청소년인 관계로 소년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그의 변호인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어느 면에서 보나 남자와 여자는 신세대 커플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카스트제도와 전통에 묶여있었다. 둘 다 자취를 하고 있었으며 전문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었다. 물리치료사였던 여자는 첫 직장을 찾는 중이었고 남자는 인터넷 보이스 기술 팀을 이끌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고민도 함께 나누고 휴가도 같이 갈 정도로 가까웠다. 신발 한 켤레를 사도 서로에게 조언을 구했다. 한번은 그가 어떤 회사에 대한 투자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의 만류로 결국 포기했는데 알고보니 사기였다. 그는 여자에게 자신의 페이스북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까지 알려주었다.

두 사람이 가까운 관계였다는 걸 양가 가족들도 알고 있었지만 별다른 간섭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까지 하기엔 둘 앞에 놓인 장벽이 너무 컸다. 그는 상류 계급인 브라만 출신이었고 부친은 저명한 변호사였다. 3층짜리 저택에서 하인들을 거느리고 살고 있을 정도로 부유한 집안이었다.

반면 여자는 농민 계층인 쿠르미 출신이었다. 남자 집안보다 하위 계급이었다. 그녀의 가족들은 델리 공항 인근의 콘크리트와 벽돌로 지은 조그만 집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노동자였다.

배경이 너무 차이나다 보니 결혼은 무리였다. 남자는 브라만 계급의 여자와 결혼하길 바라는 부모의 뜻을 거스를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여자친구와 나는 혹여나 사이가 나빠질까봐 그런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친구로 지내는 한 우리는 동등한 위치에 있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여자의 어머니는 둘의 결혼 문제에 대해 묻자 “나중 일을 누가 알겠느냐”고 답했다.

남자의 아버지는 결혼 얘기는 나온 적이 없었다고 말하면서도, 집안에서 “결혼을 고려했을지도 모른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두 사람이 처음 연락을 주고받은 건 2010년 12월이었다. 그다지 매끄러운 시작은 아니었다. 두 사람을 모두 알고 지내던 한 친구가 어느 날 여자에게 남자의 번호를 주면서 공부를 도와줄 수 있을 거라며 연락을 한번 해보라고 했다.

“안녕하세요. 별 일 없으시죠?” 그녀가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남자는 그 친구가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했다.

“인마, 네 번혼지 모를까봐? 새 번호냐?” 그가 답장했다.

그러자 “인마라뇨, 저 여잔데요?”라고 여자의 답장이 왔다.

결국 둘을 소개해준 그 친구가 상황 정리에 나섰다. 그로부터 두 달 뒤, 데라둔에서 대학을 다니던 여자가 차로 다섯 시간 거리에 있는 뉴델리를 방문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그 때였다. 그가 버스 정류장에 그녀를 만나러 나온 것.

남자는 왠지 그녀일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에게 무작정 다가갔다. 푸른색 스커트에 붉은색 상의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있는 여자였다.

남자는 어떻게 말을 붙일까 하다가 여자에게 다가가 대뜸 이렇게 물었다. “데라둔으로 가는 버스 어디서 타면 되나요?”

여자가 고개도 안들고 손가락으로 저 멀리 가르키기에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자기소개를 했다.

맥도날드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오후에 델리의 유적지인 붉은요새를 둘러보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날을 회상하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때 나에 대해 많이 말해줬다. 고라크푸르(인도 북부지역의 도시)에 산다, 브라만 출신이다, 남자형제 둘에 여자형제 셋이 있다, 어머니랑 매우 가깝다, 아버지는 변호사다, 매일 예배를 드린다, 맛집 찾아다니기와 영화 감상이 취미다, 매일 우유를 마신다, 손목시계를 좋아해서 꽤 많이 모았다 등등.”

둘 사이에 우정이 본격적으로 싹트기 시작한 건 남자가 공과대학에서 엔지니어링 공부를 마친 2006년 뉴델리로 이사를 가면서부터였다. 그는 고향인 고라크푸르에 있을 때 여권 신장 및 아동 발달 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단체를 설립했다. 하지만 집안에서 “먼저 네 능력부터 검증하고나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게 어떠냐”며 만류했다.

2008년, 남자는 HCL인포시스템즈에 입사했다. 그의 회사 상사는 그에 대해 “일도 똑부러지게 잘하고 차분한 데다 책임감있고 성실한 친구였다”고 평했다.

우정이 더욱 돈독해지면서 두 사람은 전화 통화하는 일이 더 잦아졌다. 그에게 그녀는 “돈 문제부터 가족 문제까지 뭐든지 툭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친구였다.” 그녀는 가끔씩 그를 “완벽한 남자”라고 불렀다.

두 사람은 함께 성지 여행도 다니기 시작했다. 그녀의 생일인 2011년 5월10일에는 인도 강가에 있는 유명 순례지인 하르드와르에서 만났다. 그녀의 대학에서 차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산비탈에 위치한 사원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신자들이 강에서 저녁 의식을 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 무렵 여자의 집안에서도 남자를 알게 됐고 그를 좋아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친구 중에 그와 연락을 가장 많이 하고 지냈다면서 “신사같은 남자여서 안심이 됐다”고 말했다.

5개월 후, 두 사람은 히말라야 산맥의 유명한 순례지인 바슈누 데비를 방문했다. 남자는 “말도 못하게 추운 날이었다. 데라둔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출발했다”며 그날을 회상했다.

바슈누 데비까지 7마일 가량을 산을 타고 올라간 두 사람은 그날 저녁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다음날 아침 호텔로 다시 내려왔다.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그는 “다리가 어찌나 아픈지 약까지 사서 들어갔다”며 수줍은 듯 미소를 지었다. 이어 다리를 문지르는 시늉을 하면서 “여자친구가 내 다리에 물리치료도 해줬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에는 인도의 영적지도자 사이 바바를 기리는 신사를 찾아 마하라슈트라 주를 방문했다. 몇 달 뒤 리시케시로 여행을 갔을 때 그는 그녀에게 종교 서적 몇 권을 건네기도 했다. 리시케시는 1968년 비틀즈가 방문해 유명해진 힌두교 성지다.

그녀가 그에게 건넨 마지막 선물은 회색 넥타이였다. 그 넥타이는 여전히 포장백에 담긴 채로 그의 뉴델리 아파트에 보관돼 있다. 그는 “여자친구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했다. 그래야 나도 행복했으니까”고 말했다.

여행 중에는 호텔 방에 함께 묵곤 했다. 그는 손도 잡고 포옹도 했지만 선은 넘지 않았다면서 “남녀관계에 있어서는 보수적인 편”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노래도 부르고 농담도 주고받는가 하면 카드나 체스 게임도 했다. 그러다 떨어져 지낼 때면 그는 늘 그녀 생각을 했다.

사건 당일인 2012년 12월16일, 두 사람은 몇 주 만에 얼굴을 봤다. 그는 “이상하고 지루한 날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날 저녁 한 대형 몰에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고 나온 두 사람은 몰 앞에 있는 분수대 옆에서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는 좀 더 있고 싶었으나 그녀가 집에 가고 싶어했다.

그녀의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인력거를 잡아타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누군가가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누나, 어느 쪽으로 가세요?” 그 때 이 말을 한 사람이 바로 이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범인들 중 청소년 피의자다.

두 사람은 버스의 두 번째 줄에 앉았다. 앞쪽 줄에는 승객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앉아 있었고 통로 반대편에도 두 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버스에 타고 5분 동안 별일이 없자 남자는 경계를 풀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에게 “오늘은 괜찮지만 앞으로는 이런 버스 절대 타지마”라고 말했다.

바로 그때 남자 세 명이 난데없이 두 사람에게 이런 야심한 밤에 둘이 무슨 짓을 했냐고 물었다. 그제서야 남자는 자신들이 곤경에 빠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두 사람은 소리를 질러댔다. 여자가 경찰에 신고하려고 하자 일당 중 한 명이 휴대폰을 휙 낚아챘다. 남자는 일당 한 명과 몸싸움을 벌였다. 어디선가 “쇠막대 가져와, 쇠막대!”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후 남자는 뒤통수와 다리 부분에 쇠막대로 무차별적으로 얻어맞았다. 결국 정신을 잃고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경찰에 따르면 범인들은 버스 선반에서 쇠막대를 뽑아 폭행에 사용했다고 한다.

여자는 버스 뒷쪽으로 질질 끌려갔다. 조명은 모두 꺼져있었다. 그의 귀에 그녀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일당들에게 제압돼 바닥에 눌려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경찰은 그녀가 집단강간을 당했을 뿐 아니라 성폭행에 쇠막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자꾸만 그때 일이 떠오른다. 한 시간 전만해도 아무 문제 없었는데 난데없이 모든 게 끔찍하게 변해 버렸다”고 말한다.

한참 뒤 어디선가 이런 소리가 들렸다. “이 애 죽었어. 죽었다고.”

경찰에 따르면 두 사람은 버스 밖으로 던져져 고속도로에 버려졌다. 둘 다 알몸이었다. 여자는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이후 두 사람은 병원에 후송됐다.

버스운전사측 변호인은 자신의 의뢰인이 버스에서 강간이 일어났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고인 두 명의 변호인 역시 사건 발생 당시 자신의 의뢰인들은 현장에 있지도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피고인의 변호인은 자신의 의뢰인이 고문을 받아 거짓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인은 이곳에선 의뢰인이 공정한 심리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해당 소송을 뉴델리 외부 법원으로 이송해줄 것을 요청했다. 29일(화요일) 인도 대법원은 이 요청을 기각했다. 다섯 번째 피고인의 변호인 역시 의뢰인의 무죄를 주장했다.

그녀는 결국 목숨을 잃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사건 당시 자신의 딸을 위해 힘써준 남자에 대해 “그 고마움은 죽어서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 그가 없었다면 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지 모른다는 것.

사건 발생 후 5일 뒤 남자는 델리의 삽다르정병원 집중치료실에 입원해 있는 여자를 찾았다. 여자는 무차별적으로 성폭행 당한 데다 심하게 맞아 수술로 내장을 거의 드러낸 상태였다.

남자가 여자에게 말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그러자 여자가 답했다. “만약 너 말대로 분수대에서 조금 더 있었더라면 그 버스를 타는 일은 없었을텐데.”

여자는 남자에게 그들이 첫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은 지 정확히 2년 되는 날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나서 남자를 안아주려고 했지만 여자 몸에 붙어있는 의료장비 때문에 일어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포옹하는 시늉만 하더라”고 남자는 말했다.

이후 여자는 치료를 받기 위해 싱가포르로 후송됐다. 남자는 TV 뉴스에서 그녀의 사망 소식을 처음 접했다고 한다.

지금 그는 만약 그날 일이 없었더라면 둘의 미래는 과연 어땠을까하고 생각해 본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마 난 평생 여자친구 옆에 머물렀을 것이다. 집안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되더라도.”

월스트리트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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