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되살아난 사행성 게임 광풍
경찰 느슨한 단속 틈타 서울 도심 곳곳서 성업
적발돼도 경미한 처벌… 무분별한 허가도 문제
“언젠가는 터질 거야….”
지난 12일 오후 10시30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인근 한 성인 게임장. ‘사행을 조장하지 않습니다. 환전을 요구하면 퇴장조치합니다’라는 푯말이 붙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 40여명이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게임기는 무려 120여대에 달했다. 101번 게임기 앞에 앉은 40대 남성이 종업원에게 몇 마디 건네자 종업원은 “101번, 6만점”이라고 외쳤다. 게임을 끝내겠다는 뜻이다. ‘황금성포커’ 게임을 즐긴 이 남성이 올린 6만점은 현금으로 6만원을 의미하는 점수였다. 다른 종업원이 바로 다가와 이 남성에게 현금교환증을 건넸다. “어떻게 현금으로 바꾸느냐?”고 묻자 옆에 있던 남성은 “손님을 가장한 종업원이 수수료 20%를 떼고 나머지를 현금으로 준다”고 귀띔했다.
성인 게임장에서 아케이드 게임의 승률을 조작하거나 게임 머니를 현금으로 바꿔주는 불법 행위가 성행하고 있다. 2006년 온 나라를 들끓게 했던 ‘바다이야기게임 사태’ 이후 주춤했던 불법 사행성 게임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이날 찾은 성인 게임장에서도 게임산업진흥법 위반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베팅을 유도하는 확률조작, 배팅액을 높이는 자동베팅, 불법 환전 등이다.
1만원권을 500원짜리 동전으로 바꾼 손님들은 2만∼3만원 단위로 게임 머니를 채워놓고 게임을 즐겼다. 약속이라도 한 듯 1명당 3∼4대의 게임기에 게임 머니를 채워놓고 자동으로 ‘시작’ 버튼을 누르는 이른바 ‘딱따구리’를 이용했다. 현행법은 사행성 게임의 베팅금액을 1시간에 최고 1만원으로 제한하고 있어 자동베팅 역시 불법이다.
게임 머니가 바닥날 때마다 게임기 화면 속에서는 베팅금액의 7000배까지 오르는 ‘잭팟’ 가능성을 암시하는 화면이 등장했다. 이는 바다이야기에서 주로 사용된 ‘낚시’의 한 방법으로 게임기를 조작해야만 가능하다.
불법 게임은 당국의 허가를 받은 성인 게임장에서도 공공연히 이뤄진다. 청량리역과 강남역, 영등포역, 신림역 주변에 밀집한 게임장에서는 씨야포커(옛 바다이야기), 황금성포커, 킹포커 등 20여종의 게임물이 불법영업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불법 사행성 게임이 다시 판을 치게 된 배경에는 당국의 무분별한 게임장 허가가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한 해 게임물등급위원회가 내 준 일반 게임장 허가 건수는 856건에 달한다. 게임장 허가는 바다이야기게임 사태 직후인 2007년 4건에서 2008년 17건, 2009년 55건, 2010년 150건, 2011년 843건으로 급격히 늘었다. 현재 전국에서 운영되는 1290여곳의 게임장 중 절반가량은 불법행위를 하다 적발된 적이 있다. 지난해 불법 게임물 단속 건수는 631건에 달한다. 업주에 대한 처벌이 경미해 적발돼도 금세 게임장을 다시 연다. 불법 사행성 게임을 벌이다 적발되면 최고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하지만 불법 운영으로 인한 수익은 이보다 몇 배 많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김왕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정부가 도박장을 늘리는 정책을 펴면서 이를 악용한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라며 “법적 규제와 처벌을 강화하고, 경찰·지자체의 단속 역시 체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영탁 기자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