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리뷰스타DB
이종석이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막장 요소로 흔히 쓰이는 식상한 소재 기억상실증이라는 것이 SBS 수목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지난 9회분에 등장하며 우려를 낳았으나 11회분에서는 이러한 우려를 깨끗이 씻어내었다. 기억상실증을 주인공 두 사람에게 안기는 시련이 아닌 다리로 이용한 것이다.
박수하는 기억상실증이 걸린 탓에 고등학교 친구들인 고성빈(김가은 분), 충기(박두식 분)은 물론 10년을 기다린 장혜성(이보영 분)까지 기억을 못하는 등 거의 인생을 송두리째 잊어버렸지만 그것이 오히려 박수하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박수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 때문에 학창시절 친구도 잘 만들지 못했다. 친구들을 밀어내는 건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의 선을 긋고 대했다. 하지만 이순욱은 친구들에게 부탁하고, 만나자는 말도 하면서 선을 지우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장혜성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박수하였을 때에는 수족관에서 헤어지는 장면을 제외하면, 장혜성과 차관우(윤상현 분)을 지켜보면서 계속해서 자신의 마음을 꼭꼭 감추었다. 하지만 이순욱이 된 지금은 잠든 장혜성의 손에 입을 맞추고 장혜성에 집 앞에서 기다리는 등 감정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과 사랑없는 고모부의 손길에 일찍 철이 들어 자신을 감출 줄 알았던 박수하에게 기억상실은 박수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박수하를 드러나게 하고 있다. 지금 당장의 감정은 사랑이 아닌 단지 기대고 싶은 사람을 찾고 싶은 마음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모두 얘기한다는 것에서 박수하는 좀 더 사람들에게, 장혜성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날 방송에서는 솔직하게 다가오는 박수하를 보면서, 장혜성이 차관우에게 “내가 정말 말도 안 되게, 정말 어이없게도요. 그 애가 자꾸 신경쓰여요. 정말 말도 안 되게 내가 그 애를 좋아하나봐요”라고 고백했다. 이제는 일방적인 감정만이 아니다. 이제는 초능력이 없어져 확신없이, 게다가 피의자인 사람의 기억조차 없는 데에도 박수하를 믿고 변호한 장혜성이 있다. 서로 한 발자국씩 가까워지고 있는 두 사람에게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양주희 기자 idsoft3@reviewstar.net
서울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