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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진실‘, 소매치기 무서워요? 빈부격차보단 덜해요

[기타] | 발행시간: 2014.06.14일 09:45
[한겨레] [토요판] 커버스토리

브라질 시민들의 냉소

가난하지만 천진한 어린이들이 길거리와 해변가에서 해지도록 축구를 하고, 늘씬한 미녀들이 삼바 리듬에 몸을 흔들며, 축구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언제 어느 곳에서나 축구 선수에 대해 열띠게 논쟁을 벌인다.

브라질에 가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 월드컵 열기를 흠뻑 느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이런 기대는 브라질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산산이 조각났다.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월드컵 반대 시위 때문이 아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때도 그랬고 몇달 전 열린 2014 소치올림픽 때도 마찬가지였듯이 대형 국제 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하면 어느 나라나 반대 여론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브라질은 다르다. 그런 반대 여론과는 질적으로 다른, 월드컵에 대한 열기와 기대감을 압도하는 절망과 냉소가 브라질을 뒤덮고 있다.

6일(한국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산투스 두몽 공항에 내렸다. 야자수가 줄줄이 심어진 이국적인 풍경의 작고 아담한 공항 주변은 노란 브라질 국기와 월드컵을 상징하는 깃발로 수놓아져 있었다. 딱 거기까지였다.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탄 지하철에서 만난 직장인 마르쿠스는 낯선 외지인에게 주의사항부터 전달해줬다.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는 항상 뒤를 조심하세요. 뒤에 메고 있는 가방을 소매치기가 털어갈 수 있어요. 핸드폰을 들고 걸어다니거나,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지도 마요. 길거리에 날치기들이 많거든요.” 지하철을 내리면서 마르쿠스는 이렇게 덧붙였다. “절대 위험하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냥 도둑이 많을 뿐이지. 그런데 파벨라(빈민촌)는 절대 가지 마세요. 외국인 관광객은 1순위 습격 대상이에요. 거긴 진짜로 위험해요.”

“운동선수나 모델이 되는 것 말고는…”

시다지 노바 지역에 있는 리우데자네이루 시청 앞에서 만난 시청 안전요원 아우바루(28)는 “월드컵은 우리 같은 안전요원들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다. 월드컵을 개최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꼬집었다. 그는 “브라질 치안 상황은 전혀 좋아지지 않고 있다. 방법이 잘못됐다. 세상에 어떤 나라도 전쟁이 아닌 안전을 위해 무기에 투자하지 않는다”며 “리우에는 5만2000명의 경찰이 있는데 이들에게 우지나 AK47 같은 무기들을 나눠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우바루는 깊은 한숨을 내쉰 뒤 “정부는 월드컵 기간에 찾아오는 외국인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시내 지역 치안을 강화하려고 하지만 솔직히 말해 도둑질하는 건 부끄럽지 않다. 그런 일은 어느 나라에나 있으니까. 브라질이 진짜 부끄러워해야 하는 건 빈부격차고,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질은 가난한 사람이 살기 정말 어려운 나라다. 소득은 적고 물가는 비싸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는 2013년 기준 브라질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957달러라고 기록했다. 브라질 통계연구소는 2012년 브라질의 월평균 소득이 1800헤알(약 85만원)을 넘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워낙 빈부격차가 심해 서민들의 실제 평균 소득은 이에 훨씬 못 미친다. 보통 800헤알 정도라고 한다.

코파카바나 해변에 있는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카리나(21)는 한달 내내 일하고 880헤알을 번다. 그는 “이 돈으로는 살기 너무 힘들다. 월드컵을 개최한다고 한 뒤 물가가 많이 올랐다. 특히 집값과 식료품 값이 많이 올랐다”고 했다. 카리나가 일하는 코파카바나 해변 근처 식당들은 하나에 50헤알을 훌쩍 넘는 음식을 먹는 부유한 사람들로 넘친다. 샐러드나 빵은 물론이고 물조차 돈을 내야 한다. 현지인들은 이 정도는 비싼 게 아니라고 한다. 조금만 깔끔해보이는 식당에 들어가면 음식값은 80~90헤알을 넘나든다. 슈퍼마켓에 가도 식료품 가격은 한국보다 1.5배 정도 비싸다.

월드컵을 반대하는 배경에는 교육과 의료, 교통, 주거 등 다양한 이슈가 있지만 평범한 브라질 시민들 대다수의 요구는 교육으로 모아진다. 이들은 하나같이 “월드컵 경기장을 짓는 것보다는 학교를 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11살짜리 딸 아드리아나를 키우는 택시기사 고메스(45)는 “나는 개인택시여서 소득이 나은 편이지만 브라질에서 아이를 잘 교육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고메스는 매일 17시간을 일하고 한달에 2000헤알을 번다. 고메스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은 딸을 사립학교에 보내지 못한 것이다. 그는 “코파카바나에 있는 사립학교는 한달에 1000헤알 정도 하고 조금 더 좋은 이파네마 지역 사립학교는 한달에 2000헤알이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꿈도 못 꾼다”고 했다. 그는 “공립학교는 무료지만 질이 아주 나쁘다. 고등학교까지 다녀도 어차피 대학교에 들어갈 수 없다. 교사들 수도 부족하고 질도 떨어져서 거의 가르치는 게 없다”며 “심각한 것은 그런 공립학교마저 부족하다는 거다. 브라질의 공교육은 완전히 붕괴됐다”고 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다. 남자들은 운동선수가 되거나 여자는 모델이 되는 것 말고는….”

이들의 절망 섞인 목소리를 뒤로하고 브라질의 축구 성지인 마라카낭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라면 월드컵에 찬성하는 반대쪽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경기장 근처에서 만난 호텔 안내 데스크 직원 다니엘라(28)는 두살짜리 어린 아들을 안고 있었다. 그는 “시위하는 사람들 하는 행동이 마음에 안 든다. 너무 과격하고 다 파괴하려고 한다. 월드컵 기간에 브라질에 온 외국인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부끄럽다”고 했다. 그러면 정부가 월드컵을 개최한 것이 좋은지 묻자 이번엔 단칼에 “좋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는 “월드컵에 투자하는 절반만큼만 학교와 병원에 투자했어도 우리들 사는 게 훨씬 좋아졌을 것”이라며 “월드컵에 우승을 해도 기쁠 것 같지가 않다. 축구 선수들은 다 부자 아니냐. 의사를 만드는 건 생명을 구하는 일이고 교사를 만드는 건 미래를 위한 일인데 돈을 많이 들이지 않는다. 그런데 부유한 축구 선수들을 위해서 이렇게 많은 돈을 써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백화점보다 학교 수가 더 적다?

경기장 가는 길에 만난 주제 아우비누(41)는 “월드컵에 반대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북동부 가난한 지역에서 왔다는 주제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만 다녔다. 그는 더 교육을 받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그는 “룰라 정부 때 교육에 투자를 많이 했다고는 하는데 내 주변의 가난한 사람 중에는 제대로 교육받을 기회를 얻은 사람이 거의 없다. 지금 브라질에는 백화점보다 학교 수가 더 적다”고 비판했다. 그가 축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축구를 사랑한다. 그러나 축구와 월드컵은 다른 문제”라고 했다.

정작 브라질 시민들을 좌절시키는 것은 월드컵이 아니라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정치다. 젊은 시절 엔지니어였던 세르지우(70) 할아버지는 “지금 브라질에 필요한 것은 정직한 정부다. 선거철이면 학교와 병원을 짓겠다는 정치인들이 많지만 선거가 끝나면 보이지 않는다. 모두 제 잇속을 차리는 데 바쁘다”고 비판했다. 시청 근처에서 만난 카를루스(43) 역시 “지금 정권을 잡은 정당은 노동자당(PT)인데 노동자를 위한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정치인들을 위한 정치를 한다. 처음에는 룰라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아니다”고 했다. 그는 “만약 교육에 투자를 한다면 브라질에도 희망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걸 이룰 정당도 정치인도 없다”고 말했다.

리우데자네이루/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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