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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소설] 얼굴 없는 녀인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4.10.09일 09:54
K현 대학입시현장.

오늘은 조선어문시험을 치는 마지막 날이다. 아침 일곱시가 넘으니 대문밖엔 학부모들과 수험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큰대문에는 어제 그제를 이어 오늘도 누군가 찰떡처럼 대학에 잘 붙으라고 햇솜처럼 흰 찰떡을 세덩이나 더덕더덕 붙여놓았다.

춘님이는 시험장소와 좀 떨어진 곳에 있다. 아름드리 백양나무뒤에 몸을 숨기고 애처로운 눈길로 누군가를 찾고있었다.

아들 동길이다.

이틀째 동길이는 이맘때면 아버지, 계모 그리고 소학교에 다니는 녀동생과 함께 이곳에서 웃으며 이야기했는데 오늘은 웬 일인지 동길이도 그리고 동길이네 식구들도 전혀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동길이 왜서 안 올가?…)

시간이 흐를수록 춘님이는 초조해서 안절부절을 못했다. 이때 멀리서 동길이가 나타났다. 동길이는 채양이 긴 모자를 벗어 얼굴의 땀을 닦으며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대문쪽으로 들어가고있었다.

백양나무에 등을 기댄채 두손을 꼭 잡고있는 춘님이는 그제야 호―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우리 동길이, 제발 오늘도 덤비지 말고 시험을 잘 치게 해주소서!)

수험생들이 무리 지어 시험장으로 들어가자 춘님이는 념불을 외우듯 두눈을 꼭 감고 합장한 두손을 살살 비벼댄다.

백옥같은 얼굴에 몸매 또한 쭉 빠진데다 춤 잘 추고 노래 잘 불러 춘님이는 마을에서 일등처녀로 소문났었다. 그래서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마을소학교에 배치를 받아온 월급쟁이― 지금의 동길이 아버지와 결혼했다.

그러던 춘님이는 동길이가 소학교에 금방 입학하던 그해 가을에 한국으로 나갔다. 한국에 가서 그만 남편을 배신하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다. 돈을 벌어 남들 못지 않게 잘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한국으로 나갈 때만 해도 불륜을 저지를 생각 같은건 전혀 하지 않았었는데 정작 한국에 나가 홀몸으로 세월을 보내려니 밤이면 남편이 사무치게 그리운데다 성문화 또한 눈 띄게 개방된 환경이니 그런 유혹을 도저히 물리칠수 없었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물에 밀리는 모래성처럼 무너지고말았다.

처음에는 일하는 음식점 사장하고 눈이 맞았고 두번째는 이를 치료하러 치과의원 출입을 자주하다가 나이 지긋한 치과의사하고도 좋아했으며 나중에는 중국에서 건너간 한 외토리 남성하고 동거했다.

춘님이가 서울에서 바람을 피운다는 소문은 종이에 불이 붙듯 고향마을에 쫙 퍼졌다. 그러니 부옇게 배신을 당한 남편이 가만 있을리 없었다. 남편은 리혼하자고 전화를 걸어왔다. 춘님이는 창피스러운 나머지 남편과 대화를 나눌 용기조차 없어 휴대폰번호마저 바꿔버렸다. 하는수없이 남편은 현법원에 단독 리혼신청을 했다(춘님의 불출석으로 반년후 두 사람은 자동리혼이 되였음).

불륜녀로 사람들의 눈총을 받게 된 춘님이지만 한 아이 어머니로서의 절절한 모성애만은 유별나게 끔찍했다. 춘님이는 서울에서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다. 자기 배속에서 나온 아들 동길이가 너무 보고싶어 울고 또 울었다.

동길이가 소학교 5학년인가 다닐 때 춘님이는 한국에서 중국으로 들어오는 친정오빠에게(춘님의 친정집은 시집마을에서 60리 상거해있었음) 책가방이며 겨울 외투며 그밖에 용돈도 푼푼히 봉투에 넣어보냈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마을 소학교에서 교장으로 승급한 동길의 아버지가 한사코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젠 동길이한테 새어머니에 녀동생까지 생겼는데 왜 사춘기에 들어서는 아이한테 마음의 혼란을 주려고 하느냐며 펄펄 뛰더라는것이다.

그럴수록 춘님이는 가뭄에 단비를 기다리듯 하냥 아들 생각뿐이였다. 서울거리에서 동길이만한 사내애들이 옆으로 지나가는것만 봐도 춘님이는 동길이가 떠올라 가던 걸음까지 멈추군 했다.

《우리 동길이를 한번 품에 껴안고 자봤으라면… 내 손으로 동길이한테 따뜻한 밥 한끼 지어 먹여봤으면…》

이런 말이 그녀한텐 입버릇이 되였다.

그렇게 벼르고 벼르다가 마침내 춘님이는 마음먹고 한국에서 아들을 만나보러 왔었다.

그때 동길이는 벌써 초중 2학년이라 현성에 올라와 기숙사생활을 하고있었다. 그런데 동길이를 직접 만나는 순간, 그녀의 달콤한 꿈은 그대로 산산쪼각이 나고말았다. 어느 사이 아버지 키보다도 더 자랐고 코밑에도 수염을 깎은 자리가 시꺼멓게 난 동길이는 춘님이를 마주보는 그 눈길부터 쌀쌀하기 그지없었다.

《동길아 내가 누군지 알아볼만 하니?》

《?…》

《엄마다! 너의 엄마!》

《누구신지 사람 잘못 찾으신것 같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지금 집에서 녀동생을 돌보고계십니다.》

동길이는 말을 마치기 바쁘게 등을 홱 돌린다. 그리고는 씨엉씨엉 몇걸음 걷더니 등을 돌리지도 않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다시는 저를 찾지 마십시오.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동길이한테 랭대를 받고 다시 한국으로 나간 춘님이는 손맥이 풀려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을 하다가도 반시간이고 한시간이고 혼이 나간 사람처럼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기가 일쑤였고 밤이면 수면제를 한줌씩 먹어도 도무지 잠을 이룰수 없었다. 병원에서는 심한 우울증이 생겼다고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니 백 하고도 열몇근 되던 몸무게가 거퍼 팔십근도 채 되지 않았다. 역시 한국에 나가있는 친정오빠가 이 일을 알고 《가만히 놔뒀다가는 사람 잡겠다》며 무작정 춘님이를 끌고 중국으로 돌아와 친정집 부모들과 함께 있게 했다. 그런데 마음 편한 친정집에 와있으면서 좋다는 보약은 다 써도 춘님이의 몸은 전혀 호전될줄 몰랐다.

《휴― 저의 병은 제가 알아요. 매일 동길이 얼굴만 볼수 있다면 병이 뚝 떨어질것 같아요.》

춘님이가 하는 말에 친정집 식구들은 큰 계발을 받았다. 그래서 동길이가 공부하고있는 현성에 춘님이한테 자그마한 음식점을 차려주었다.

그때부터 춘님이는 거의 매일 한번씩 동길이 몰래 공부하는 학교주위를 돌군 했다. 시간이 흐르자 춘님이는 오전 사이체조시간이면 천여명 학생들중에서도 동길이가 몇번째 줄 몇번째에 선다는것까지 알수 있었고 매주 화요일 오전 제4교시와 목요일 오후 제6교시는 체육시간이여서 동길이가 뽈을 차고 배구를 치는걸 실컷 볼수 있었다. 미상불 겨릅대같이 바싹 말랐던 춘님이의 몸에는 어느새 다시 살이 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침내 동길이가 대학시험을 치는 날까지 오게 되였다. 시험장 큰대문에다 햇솜같은 찰떡을 세덩이나 붙여놓은것도 춘님이가 련속 사흘째 이른새벽에 남몰래 나와서 한 일이였다.

그랬다. 이제 동길이가 대학에 붙으면 그 대학이 어느 도시에 있든 춘님이는 바로 그 도시로 쫓아가서 음식점을 차리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멀리서 사람들이 왁작 떠드는 소리가 났다. 백양나무뒤에 몸을 숨긴 춘님이가 고개를 쳐들고 보니 시험을 다 친 수험생들이 밀물처럼 밖으로 쏟아져나오고있었다. 춘님이는 그속에서 동길이를 찾으려고 고개를 점점 높이 쳐들었다.

바로 그때다.

《어머니!》 등뒤에서 누군가 조용히 부르는 소리가 났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춘님이는 그만 심장이 멎는듯한 충격에 돌부처처럼 그 자리에 굳어져버렸다.

글쎄 아들 동길이가 지금 지척에 와 서있었다.

《너… 동… 동길이…》동길이는 후들후들 떨고있는 춘님이의 팔을 두손으로 꼭 잡는다.

《어머니!》

《어허헉… 어허헉…》

춘님이는 소리내여 울었다.

《이 엄만 너를 볼 얼굴이… 얼굴이 없어 허헉… 이 엄마 밉지?…》

눈물범벅이 된 춘님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아들의 얼굴을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친어머니의 정겨운 눈길이 아들 동길이의 얼굴에 오랜만에 와닿는 순간이였다.

《아닙니다 어머니, 저는 지금 배가 고픕니다. 빨리 어머니의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고싶습니다.》

《내가 꾸리는 음식점 너도 알아?》

순간 춘님이의 두눈은 휘둥그래졌다.

《전 정말 어머니가 보고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녁자습시간만 끝나면 음식점문앞으로 달려가서 어머니를 보군 했습니다.》

《그래?…》

춘님이의 두눈은 당금 튀여나올것 같았다.

《너의 아버지가 알면 큰일 날텐데…》

《아닙니다. 실은 아버지께서 그러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전부터 저더러 어머니를 만나라고 하셨거든요. 그런걸 제가 이제 대학입학시험이 끝나면 만나겠다고 했지요.》

동길이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춘님이는 사랑하는 아들을 두손으로 와락 끌어당겨 자기의 따뜻한 품속에 꼭 껴안았다.

/박 일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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