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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사 이광욱…바다에서 자라 바다로 돌아가다

[기타] | 발행시간: 2014.12.27일 10:45
[한겨레] [토요판] 잊지 않겠습니다



숨진 이광욱씨가 스물세살이던 1984년 잠수복을 입고 포즈를 취한 사진. 이씨는 잠수사였던 아버지 이진호씨에게서 어려서부터 잠수를 배웠다. 이승철씨 제공

▶ 세월호 사건을 자기 일처럼 여기고 도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월호 구조 작업을 돕다 지난 5월 초 숨진 이광욱(당시 53) 잠수사도 그중 한명입니다. 보건복지부는 이씨가 숨진 뒤 7개월이 지난 이달 16일 이씨를 의사자로 지정했습니다. <한겨레>가 이씨의 동생을 만나 형에 대한 추억을 다시 청해 들었습니다. 목적은,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의로운 잠수부들이 세월호 구조 작업을 도왔다. 숨진 이광욱(53)씨도 그중 한명이다. 잠수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도 바다에서 산 남자였다. 하늘을 나는 것처럼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도 인간의 오랜 꿈이었다. 역사는 길지 않다. 1860년대 초 프랑스의 기술자가 처음으로 원시적인 산소통을 개발했다. 물이 넘친 탄광에서 사람들이 탈출하는 것을 도우려는 용도였다. 프랑스 해군이 1894년 이 기술을 군사장비로 채택해 세계 최초로 잠수장비를 개발했다.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기술 개발이 진행됐다. 1946년 프랑스의 과학자 자크 쿠스토와 에밀 가냥이 기술을 발전시켜 현대적 잠수장비를 개발해 특허를 냈다. ‘아쿠아렁’(애퀄렁. 물속의 폐)이라는 영어 이름을 붙였다. 1931년생인 광욱씨의 아버지 이진호씨는 군에서 이 기술을 접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1949년 3월 해군에 병사로 입대해 1960년 상사로 제대했다. 기관실, 소해정 근무 등을 두루 거쳤다. 소해정은 적이 설치한 기뢰를 제거하는 작업을 말한다. 이씨는 이 당시 잠수기술을 배운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가족사는 한국의 잠수사 역사

아들처럼 아버지도 자주 의로운 일에 나섰다. 1960년 제대한 뒤 수중공사 작업을 많이 수주했다. <경향신문> 1963년 12월16일치 6면에 이진호씨의 기사가 실려 있다.

“‘한강변의 독수리’로 통하는 ‘프로그·맨’ 이진호(서울 성수동 1가)씨는 금년에 천직처럼 여겨오던 익사자 구조작업을 마치고 노변에서 소일하고 있다. 금년 여름에는 10여구의 실종 익사체를 인양했고 40여명을 익사 직전에 구출해냈다. 이씨는 해군 ‘유디티(수중폭파부대)’에서 ‘스킨 다이버’(등에 산소통을 메고 발에는 오리발을 신은 잠수부)로 맹활약하다가 3년 전에 제대-그동안 한강변에서 80여구의 실종 익사체를 인양했고 2백여명을 수마로부터 구해냈다.”

기자가 오류를 저질렀다. 스킨 다이빙은 간단한 호흡장치인 스노클과 오리발(핀)만 착용하고 수면이나 얕은 수심에서 잠수하는 것을 가리킨다. 산소통을 메고 잠수하는 것을 스쿠버 다이빙이라 부른다. ‘스쿠버’(SCUBA)라는 용어 자체가 ‘자급식 수중호흡장비’(Self-Contained Underwater Breathing Apparatus)라는 영어 단어의 두문자이다. 아쿠아렁 개발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스쿠버 다이빙 기술이 민간에 보급되기 시작한다. 1959년 ‘잠수교관연합’(NAUI)이 만들어졌다. 미국인 다이버가 1966년 또 다른 단체인 ‘전문잠수교관연합’(PADI)을 만들었다. 패디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민간잠수단체다. 18m까지 잠수가 가능한 ‘오픈워터 다이버’ 등 잠수 가능 수심별로 자격증을 세분했다. 한국에도 여러개의 민간잠수단체가 있다.

세월호 구조 작업에 참여

5월6일 작업 도중 숨져

장례식장에 총리도 왔지만

숨지고 7개월 지난 뒤인

지난 16일 의사자 인정

해군부대에서 잠수기술 배운

잠수 1세대 이진호씨의 아들

아버지 손잡고 배운 잠수

바다에서 자랐고 일했다

민간잠수사 지원 필요 목소리

현대적 잠수기술이 최근에야 안착된 점에 견줘 보면, 이씨는 매우 일찍 선진 잠수기술을 습득했다고 볼 수 있다. 보도를 보면, 이씨는 겨울에도 산소통 등 잠수장비를 활용해 얼음 밑에서 잉어들을 수십마리씩 잡았다. 잠깐씩 제주도 바다에서도 잠수했다. “이씨는 작년 겨울에 시험삼아 잉어잡이를 해보았는데 하루 평균 20마리씩은 잡았는데 장비만 좋으면 하루에 50마리 정도는 거뜬히 잡을 수 있다고 장담한다.”(같은 보도) 이씨는 군에서 훈련받은 200여명의 잠수부들이 있는데 국가가 이들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 1963년 8월10일치 7면을 보면, 이씨는 광나루유원지 강물 바닥에 포탄 100여개가 있는 것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다. 이씨는 ‘한국잠수협회’(KUDA) 창설 회원 가운데 한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광욱씨 동생 이승철씨.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그러므로 광욱씨에게는 바다와 물이 흙밭이었다. 지난 23일 광욱씨의 동생 이승철(49)씨가 <한겨레>에 한 설명을 종합하면, 광욱씨는 1961년 남양주시 조안면에서 태어났다. 이진호씨는 바다를 좇아 살았다. 자연스레 두 아들 광욱, 승철씨도 전국을 모험했다. 조안면에서 태어난 광욱씨는 아버지를 따라 ‘제주도→남양주→서울’ 등으로 이사 다녔다.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다. 군 복무를 육군 수도방위사령부에서 한 것을 빼면, 광욱씨는 내내 물에서 자라고 살았다. 승철씨와 광욱씨 둘 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3~4학년 무렵 처음 잠수를 배웠다. 자연스럽게 자격증을 따고 천직처럼 아버지의 수중 공사 작업을 도왔다. 이진호씨가 2001년 세상을 떠난 뒤에도 광욱씨와 승철씨는 계속 잠수했다. 사진 속 검은 잠수복을 입은 20대의 광욱씨는 눈코입매가 뚜렷한 미남자다. 승철씨는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2000년대 초반 잠수일을 떠났다. 서울 노원구에서 횟집을 운영해왔다. 형도 잠수 작업을 하면서 작은 횟집을 운영했다. 형은 자주 동생의 횟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였다.

“세월호 사건 뒤 제 식당에서 소주 한잔하면서 세월호 관련 티브이 뉴스를 볼 때면 우셨어요. 너무 마음 아프다고. 형이 ‘저렇게 구조하면 안 되는데’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한겨레>가 지난 23일 오후 남양주시청에서 동생 승철씨를 만났다. “저는 형이 진도에 내려간 줄도 몰랐습니다. 5월4일에 제 횟집에서 본 게 마지막이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께만 ‘진도 내려간다’고 말씀하셨더군요. 저는 해경에서 6일 아침 8시께 형이 숨졌다는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몰랐어요. 둘째 조카 친구가 세월호에 타고 있었다 그러더라고요.”



미루고 미뤄진 끝에 받은 ‘의사자 판정’

광욱씨는 민간 잠수 관련 단체의 요청으로 5월5일 진도 팽목항으로 내려갔다. 5일 오전 바지선에 올랐다. 안전교육을 받고 이튿날 아침 6시께 잠수했다. 바지선에서 세월호 5층 로비까지 줄(가이드라인)을 연결하는 임무를 맡았다. 11분 뒤인 6시17분 교신이 끊겼다. 바지선 위에선 이씨의 호흡이 정상이 아님을 알아채고 다른 잠수사를 내려보냈다. 이씨의 잠수 마스크에 연결된 공기 호스가 가이드라인에 엉켜 있었다. 급히 인근 목포한국병원에 옮겨졌으나 숨졌다. 광욱씨의 사체검안서를 보면 사인은 ‘기뇌증’이었다. ‘외상, 감염, 압력 차 등으로 인해 뇌 안에 공기가 들어간 증상’을 말한다. 잠수부들이 흔히 걸리는 질병이 아니므로 진짜 사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승철씨는 부인, 어머니 장춘자(73), 23살인 첫째 조카와 함께 6일 오후 3시께 목포한국병원에 도착했다. 형의 주검을 확인했다. 어머니와 논의해 부검은 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기자들만 많이 있었다. 오도카니 기다렸다. 저녁 8시께 안전행정부와 보건복지부 직원이 찾아와 ‘의사자’ 제도 등 법적·제도적 절차를 안내했다. 6~10일 남양주 진건읍 장례식장에서 장례식을 치렀다. 정홍원 국무총리 등 고위 관료와 정치인들이 많이 다녀갔다. 약속했던 의사상자 지정은 많이 늦어졌다. 남양주시(시장 이석우)가 5월 말 보건복지부에 의사자 신청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5월19일 세월호 참사 대국민담화에서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한 명의 생명이라도 구하기 위해 생업을 제쳐놓고 달려오신 어업인들과 민간 잠수사들, 각계의 자발적인 기부와 현장을 찾아주신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계셨습니다… 민간 잠수사 고 이광욱님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심사는 계속 미뤄졌다. 정부의 태도에 실망한 승철씨는 10월 초 청와대 누리집에 민원을 넣었다. 보건복지부는 광욱씨가 숨진 뒤 7개월 만인 이달 16일 광욱씨를 의사자로 인정했다. 5월30일 세월호 선박 절단작업 중 숨진 이민섭 잠수사는 절단작업이 위탁계약에 따른 ‘직무’로 판단돼 의사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직무 외의 행위로 위해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을 구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사람과 그 유족 또는 가족’으로 지원 대상을 규정하고 있다. 국회 세월호국정조사특위의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은 지난 7월, 군·경·민간 잠수사 등 세월호 잠수사 434명 가운데 45명(10%)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우울감, 스트레스, 자살사고 등을 겪는 ‘위험군’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에 대한 지원과 보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23살과 17살인 남은 두 아들은 법이 지원하는 일부 지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가장 큰 지원군인 아버지는 숨지고 없다. 오래전에 이혼해 따로 사는 어머니가 있지만,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는 의로운 일을 하다 숨진 남자라는 기억이 오래갈 것이다. 동생 승철씨가 형이 운영하던 횟집도 같이 운영해야 한다. 승철씨는 “앞으로 유사한 의사상자가 나올 경우, 정부가 알아서 먼저 움직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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