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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속의 60년》-가짜 진단서/리태근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2.04.14일 16:24
《기억속의 60년》-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주년 특별기획(9)

병원의 진단서만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상해지식청년으로 농촌에 내려왔던 쑈꼬라는 청년이다. 한장의 평범한 진단서가 한 사람이 운명을 결정해준 그 시절, 그세월의 아라비안나이트같은 이야기를 되돌아본다.

문화혁명의 동풍을 타고 지식청년들이 농촌으로 내려오는 거센 혁명의 봄바람이 불어쳤다. 앞뒤에 산이 꽉 막힌 두메산골 와룡에도 상해집체호가 나타났다. 한평생 기차도 한번 타보지 못한 농민들이 뭘 안다고 재교육을 받으려 왔을가?

상해라는 그 대도시 먼먼 곳에서 재교육을 받겠다고 찾아온 비둘기같은 지식청년들이 귀엽다고 할가? 한심하다고 할가? 벼가 나무에서 달린단다. 눈송이를 편지봉투에 넣어서 상해에 보낸단다.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들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따뜻한 온돌을 놔두고도 헛간의 다락같은 침대에서 오돌오돌 떠는 그들을 처음부터 이상한 눈길로 지켜보았다. 아니나 다를가, 밤이 무서워서 도무지 밥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집안에다 화장실을 만들어 달란다. 상해에서는 똥통을 집안에 놓고 사용한단다. 기가 막혔다. 집체호 정치호장으로서 그들에게 재교육을 시켜야 할 필요성을 더욱 가슴깊이 느끼게 되였다.

모주석이 왜서 너희들을 이런 두메산골에 내려 보냈는가? 어려운 환경속에서 극복하면서 간고분투하는 혁명적 분투정신을 배우라고 보낸것이 아닌가?... 위대한 도리를 령혼심처에 아로 새기게끔 교양하였다. 그런데 연필만 쥐던 고운 손에 호미자루를 쥔 상해지식청년들의 모습이 보기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알아 듣지도 못하는 상해말을 옹알옹알 지껄이며 날마다 부모형제들을 그리면서 울고부는 애들을 사람 만든다는게 골치아픈 일이였다. 모두들 억지로라도 잘 보이려고 무진 애를 쓰는데 그중 쑈꼬라고 부르는 녀석은 마약쟁이처럼 새하얀 얼굴에 웃음기라고는 찾아볼수 없었다. 늘 오리무리의 게사니처럼 따돌림을 당했다.

날마다 아프다는 핑게를 대고 일은 안하는데 식탐은 또 어찌나 많은지 자류지밭 남새를 도둑질 하다못해 생산대의 콩밭에 달려들어 새파란 콩꼬투리까지 뜯어다 기름에 볶아 먹었다. 일하기 싫어해서 방목을 시켰더니 온종일 산꼭대기에 서서 머나먼 남쪽하늘을 바라보며 피리만 불었다.

저녁이면 실성한 사람처럼 벽에 걸린 상해지도만 애타게 바라보는 그가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못된 송아지 엉뎅이에 뿔난다》더니 그 주제에 련애에는 이골이 터서 퍼런 대낮에도 이름모를 처녀들을 불러들여 한이불쓰고 뒹굴어서 집체호에서는 완전히 《문제아》였다.

재교육받으러 온 애들이 하나, 둘 추천받아 잘들 올라가는데 자기는 표현이 나빠 죽어도 올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하자 성깔이 났는지 닭, 개, 오리, 동네 짐승들을 닥치는대로 마구 잡아 먹으면서 아무짓이나 해댔다.

먹지 못해서 피골이 상접한 그를 보다못해 어머니가 미음도 써주고 호박이며 옥수수, 감자를 삶아서 날라다 주었다. 정치호장인 나에게 애를 먹이지 말라고 먹을것으로 인성교육을 시킨것이였다. 얼핏보면 멀쩡한데 자다가도 헛소리를 지르고 대낮에도 벌거벗고 달아 다닌다. 툭하면 집체호에다 불을 지른다고 헛소리를 지르군 했는데 정말 불이라도 지르면 후과는 상상하기조차 두려웠다.

도대체 무슨 병일가? 병을 확실히 진단해 려고 연변정신병원으로 데리고 떠났다. 정신병환자로 취급하면 하늘땅이 뒤바뀔정도로 난리법석을 칠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정신병원 간판을 보고서도 그냥 헛소리를 한다. 정말 정신이 나갔는가? 의사는 여기 저기 검사해보고는 별탈이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때로는 환각이 생길수도 있겠지만 고의적으로 그렇게 꾸밀수도 있는 일이란다. 아니 그럼 쇼꼬는 가짜로 정신병환자인척 쇼를 했단 말인가?

내가 《네 병은 아무 이상없으니 그냥 되돌아가자》고 하자 쑈꼬가 갑자기 내 다리를 붙들고 늘어졌다. 정말 실성한 사람처럼 더부룩한 머리를 잡아 뜯으며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한다. 기어이 정신병환자로 진단서를 떼달란다. 자기한테는 정신병환자 진단서만이 마지막 살길이란다. 결국 모든것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정신병진단서를 떼기 위하여 손포수네 세빠드 다리를 물어 놓았고 통닭을 끓인다고 설쳐대기도했다. 대낮에 바지까지 벗고 뒤산에 올라서 노래를 부르며 쇼를 놀기도 했는데 그 모든 것이 죄다 꾸민 연극이였다.

때자국으로 꺼칠해진 쑈꼬의 얼굴을 바라보던 나는 할말을 잃었다. 나는 비장한 결심을 내리고 문진의사를 음식점으로 잡아 끌었다. 내가 쑈꼬의 안타까운 사정을 그대로 이실직고하자 자기도 집체호출신이라고 하면서 문진의사도 눈물이 글썽해서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였다.

정신병환자 진단서를 떼려면 입원해서 회진을 받아야 한단다. 형식이라도 갖춰야 진짜 진단서를 뗄수 있단다. 환자가 잘 배합해야지 만약에 진단서가 가짜라는것이 발각되면 본인의 철밥통이 깨지는것은 물론 엄한 처벌까지 받게 된다는것이다.

죽어도 비밀을 지키겠다는 각서를 쓰란다. 나는 처음으로 본보기극 《백모녀》에 나오는 양백로처럼 각서에 손도장을 찍었다. 나는 쑈꼬을 《입원》시키고 현 5.7지식청년 사무실에 회보하였다.

《발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상해집체호 지식청년 아무개가 정신병에 걸렸다고 쫘 하고 소문났다. 그런데 3일도 안돼 쑈꼬가 정신병원에서 도망쳐 나올줄이야.

들어보니 기막힐 일이다. 심전도《심페진단》을 하느라고 손과 발에 전기 개페기를 걸어 놓았는데 정말 자기를 정신병환자로 취급하고 전기치료하는줄 알고 두려움에 광기를 부리며 병원을 왈칵 뒤집어 놓았단다. 울지도 웃지도 못할 일이였다.

나는 다시 쑈꼬를 억지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가짜 진단서까지 떼냈다. 그런데 가짜진단서는 뗐는데 진단서를 확인하는 《관》을 넘기는 일이 도 쉬운 일이 아니였다.

현 5.7사무실에서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내려올때면 펀펀한 쑈꼬에게 머리를 풀어헤치고 헛소릴 쳐대는 정신병환자 연출을 하게해야 했기때문이다. 벽에다 잡동사니를 가득 그려놓고 침대밑에는 닭털과 개털이 가득 널려있다. 한쪽 다리를 들었다 놨다하면서 다리 불러진 노루처럼 절뚝절뚝 충성무를 추는 쑈꼬의 기괴한 짓거리를 보고 간부들은 정신병 환자라고 혀를 끌끌 찬다. 근 반년 넘게 걸려서야 수많은 문건들이 연변과 상해로 부지런히 오가더니 끝내 맨 마지막 사람으로 쑈꼬도 상해로 돌아가게 되였다.

쑈꼬가 상해로 돌아가던 날 아침, 어머님은 씨암탉을 잡아놓고 쑈꼬를 초대하였다. 마치도 항미원조를 나가는 아들을 보내는 듯 옆채기에 시루떡 보자기까지 달아주며 꼭 잘 살라고 열당부한다.

쑈꼬는 눈물코물 범벅이 되여서 어머니의 갈라터진 손을 꼭잡고 어깨를 들먹인다. 쑈꼬는 10여년이나 가짜정신병환자 생활하던 집체호와 연변의 고향산천 그리고 자기를 정말 정신병환자로 취급하면서 진심으로 달래주던 사원들을 끌어안고 석별의 눈물을 흘렸다. 사원들의 뜨거운 축복을 받으며 뻐스는 불쌍하고 가여운 상해《정신병환자》를 싣고 서서히 떠났다

그런데 산머리를 돌아서 사라졌던 뻐스가 갑자기 되돌아오는것이 아닌가? 웬 일일가? 그동안 가짜로 정신병환자노릇하더니 이젠 정말 정신이 나들어서 돌아오는 게 아니냐?

모두들 의아해서 뻐스를 지켜 보는데 쑈꼬가 정말 정신이 잘못됐는지 시퍼런 대낮에 바지를 훌훌 벗어들고 나보고도 바지를 벗으란다. 어쩡쩡해서 나는 평소에 아끼던 색낡은 골덴바지를 벗었다. 그러자 쑈꼬가 다짜고짜로 내 바지를 바꿔입으면서 자기는 뭘 줄게 없다면서 자기의 유일한 《데트론》바지를 나에게 기념으로 남긴단다. 뻐스에 앉았던 사람들이나 뻐스를 바래던 사원들이나 모두 《정신병환자도 인정을 아네》 하고 뜨거운 눈물을 금치 못했다.

그후 쑈꼬가 주고간 《데트론》바지는 내가 공농병대학에 추천받아간후에도 유일한 나의 나들이 바지로 되였다. 오랜세월 나는 두고두고 《데트론》바지를 아껴 입었다. 그날 상해로 떠나간후로 나는 다시는 쑈꼬를 보지 못했다. 지금 쑈꼬는 상해에서 잘 살고 있는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시절 그 세월이 만들어낸 웃지도 울지도 못할 가짜 정신병환자들이 쑈꼬 한사람만은 아니였을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아! 영원히 잊지 못할 가짜 진단서여!

/리태근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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