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서률 (산동 청도)
지난밤 나는 어떤 글귀가 떠올라 그것을 확인하려고 서재에서 책을 찾다가 못 찾고 지치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책들을 순서에 따라 정리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꽂아둔 게으른 자신에 대해 슬퍼하면서, 무질서하게 꽂아놓은 책들을 서가에서 서재바닥으로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밤늦도록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책을 정리하다가 낡은 《로조사전》속에서 색바랜 할머니의 사진을 발견했다. 이 사진은 할머니가 남긴 유일한 사진이다.
나는 사진을 들고 들여다보면서 칠십년전의 할머니를 눈앞에 그려보았다.
나는 6형제중 맏이로 자라면서 소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할머니와 같이 한이불속에서 자면서 할머니가 하는 옛이야기를 듣곤 하였다.
나의 할머니는 키가 훤칠 크고 살결이 흰분이셨는데 노래부르기를 즐겨하셨다.
할머니의 노래는 언제나 흐르는 강물 같았다. 그 노래들은 서럽도록 잔잔하게 흐르는가 하면 물이 줄기를 따라 흐르듯 세월의 줄기를 따라 흘러왔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신지도 벌써 60여년이 되였건만 지금도 내 귀전에는 할머니의 노래소리가 쟁쟁히 울려오는것만 같다.
할머니의 고향은 강원도 회양이였다. 할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강원도아리랑으로 유명했던 그곳 마을사람들은 옛날부터 춤과 노래를 매우 즐겼다고 한다. 밝은 달밤에 모여앉아 밤이 이슥하도록 노래를 먹이고 받아가며 흥속에 살아왔다고 할머니는 이야기하셨다.
할머니는 10살 나던 해에 부모를 여의고 외삼촌댁에서 시집올 때까지 얹혀지냈다고 한다. 할머니는 어린시절 부모님이 보고싶을 때는 끝없이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나는 어려서 할머니의 노래속에서 자랐다. 할머니는 어린 나를 칭찬해줄 때도 노래말로 칭찬해주었고 꾸짖을 때도 노래가락처럼 휘고 늘어뜨리면서 꾸중을 했다.
1940년대초였다. 우리는 집에서 5리 떨어진 작은 시장거리 한쪽 귀퉁이에다 참외를 가져다 팔던 시절이 있었다. 향기가 물큰 풍기는 참외를 할머니는 걸레로 닦으시며 팔다가 만약 남는것이 있다면 우리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그곳을 수없이 서성거리며 참외가 팔리지 않기를 얼마나 고대했는지 모른다. 그날 저녁 다행히 참외는 다 팔리지 않았다. 할머니는 우리 형제들을 부른후 여태까지 심란해하던 얼굴 표정을 바꾸고 노래말로 우리 형제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참외를 안겨주었다. 정신없이 먹어대는 우리를 바라보면서 노래가락이 무르익어갔던 그때의 야릇한 감정은 몇십년이 흘러지난 지금도 뇌리에 선하다.
할머니는 팔에 새겨진 친구들의 퍼런 정표를 보면서 그리움에 겨워서 노래 부르기도 했고 등에 업은 작은 손자가 너무 귀여워서 길에서도 노래를 터뜨리기도 하였다.
내가 어렸을 때는 할머니의 남다른 면을 리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칠십을 넘긴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할머니의 노래는 삶을 통째로 가락에 묻혀 토해내는 한 녀인의 삶의 표백이였다.
나는 할머니의 낡은 흑백사진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면서 어쩐지 알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히군 한다. 그럴 때면 저승에서 부르실 할머니의 노래가 종종 강물이 되여 내 마음을 적시곤 한다. 때론 잔잔하게 때론 경쾌하게.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