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오늘의 “잊을 수 없는 역사”에서는 세계 최초 일본 군 위안소인 ‘다이살롱(大一沙龍)’에 대해 이야기해 드리고자 합니다.
‘다이살롱’은 상하이의 번화가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 당시 상하이는 일본 해군의 최대 해외 기지로 전락했을 뿐만 아니라 극악무도한 일본 위안부제도의 발원지이기도 합니다.
전쟁시기의 기록에서부터 전후 조사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증거 사슬을 이루었습니다.
이들 증거 중에는 일본이 작성한 상하이 지도 2장도 포함됐습니다.
일본 우노(宇野) 상점에서 팔던 상하이 훙커우 지도에도 쓰촨 북로에만 위안소 여러 개가 뚜렷하게 표기돼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둥바오싱로에 위치한 ‘다이살롱’의 옛 주소를 다시 찾았습니다.
‘다이살롱’은 일본 해군이 특별히 지정해 세운 위안소 중 하나입니다.
이 위안소는 1931년부터 1945년 일본이 투항하기까지 장장 14년간 운영됐습니다.
그때 '다이살롱'의 일부로 운영되던 이곳에는 노천 무도장이 개설돼 있었고 무도장 가운데는 원형 분수대까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일본 군이 매일 저녁 이곳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저녁 7시면 분위기가 절정에 이른다고 이곳 노인들은 전했습니다.
쑤즈량은 ‘다이살롱’의 주택 다섯 채가 현재까지 보존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방에는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온 후지산 목조 등 일본 문물이 소장돼 있습니다.
주택 다섯 채에는 수십 개의 방이 마련돼 있어 규모가 상당했습니다.
길 맞은 편에는 주차장이 마련돼 있고 무도장 바로 옆에는 커피숍까지 운영됐습니다.
이곳에 온 일본 군관은 주차한 후 커피를 마시고 춤을 추고나서 여성들을 강간했습니다.
일본, 조선, 중국에서 강제로 징집된 여성 피해자들은 이곳에서 일본 장병들의 성노예로 전락됐습니다.
피해자가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저녁만 되면 ‘다이살롱’의 문을 꽁꽁 닫곤 했습니다.
그때 많은 중국 여성들이 자주 구타를 당했다고 합니다.
쑤즈량의 고증 결과 ‘다이살롱’과 같은 위안소가 상하이에 총 166개, 난징에 최소 50개가 있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현재까지 보존된 유적지 가운데서 상하이 어메이로 400번지의 5층 짜리 아파트는 2차 세계대전 때 일본 해군이 직접 운영하는 위안소였습니다.
이 위안소는 일본 군 부대가 직접 관리하고 통제했습니다.
그 당시 위안소의 문어귀에 설치된 매표소가 지금도 그대로 보존돼 있습니다.
이는 현재까지 보존된 일본군 위안소의 유일한 매표소이기도 합니다.
매표소의 철제난간은 콘트리트를 틀에 부어 만들었고 벽에 사용된 벽돌은 일본에서 운송해온 것으로 모두 그때의 역사를 증명해주는 물품입니다.
일본인 아소 데츠오가 찍은 사진에서 위안소의 여러 가지 규정을 알 수 있습니다.
본 위안소는 육군 군인과 군부측에서 임용한 인원을 상대로 운영됩니다.
입장료는 일반 병사의 경우 2엔이고 군관의 경우 5엔을 지불해야 합니다.
규정의 낙관에는 동병역 사령부라 적혀 있습니다.
중국 침략 전쟁 범위가 꾸준히 확대되면서 일본군 위안소도 그림자처럼 점점 늘어만 갔습니다.
동북, 화북, 화동, 화중, 화남, 서남 일대에서 그 당시 일본군이 위안소를 개설했던 대량의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후 일본군 위안소가 홍콩, 타이완, 그리고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 태평양 동부에까지 범위가 확장됐으며 피해 여성은 아시아 전역과 유럽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