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렬 부장판사(43·연수원 23기·사진)가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이 판사는 지난달 영화 < 부러진 화살 > 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을 당시 법원 규정을 어긴 채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 사건에 관한 재판부 내부의 합의 내용을 공개했다.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는 13일 이 부장판사의 징계회의를 열고 정직 6개월을 결정했다.
징계위는 "이 판사가 심판의 합의를 법원 내부게시판에 공개해 직무상 의무를 위반했다"고 밝혔다.이날 징계는 금품 비리에 연루된 경우를 제외하면 법관의 징계 중 이례적인 중징계로 볼 수 있다.
법관징계법에는 정직·감봉·견책 3가지의 징계가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무거운 정직의 경우 1개월 이상~1년 이하로 돼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합의 내용을 공개한 전례가 없어 징계 수위를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정직 6개월은 중징계에 속한다"며 "판사 업무 자체에 부과된 의무를, 불법성을 알고도 고의로 파기한 것이 문제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판사는 "징계 수위가 예상했던 것보다 무겁다고 생각된다"며 "약하게도 할 수 있었던 사안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최근 선재성 전 광주지법 부장판사가 정직 5개월을 받은 적이 있다. 선 판사는 법정관리 기업의 변호사로 친구를 소개·알선한 혐의로 기소돼 최근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선 판사의 경우 1심 무죄가 나온 상황에서 정직 5개월을 받은 것이어서 단순 비교는 어렵다.
이 판사는 2007년 당시 김 전 교수가 제기한 교수 지위 확인 항소심 사건의 주심 판사였다. 재판장은 석궁 테러의 피해자인 박홍우 현 의정부 지법원장이다.
이 판사는 지난달 25일 법원 내부게시판에 "영화에 분통이 터진다"며 "박홍우 원장이 자해하고 증거를 조작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얘기"라는 글을 올렸다.
이 판사는 "재판부는 애초에 만장일치로 김 전 교수 승소 판결을 내리는 쪽으로 합의했지만 이후 김 전 교수 주장에 모순점이 발견돼 패소로 판결했다"고 적었다. 그는 "이렇게 원고 승소를 생각했던 박 원장께서 무슨 이유로 어떤 이득을 얻으려고, 자해하고 증거를 조작하겠느냐"고 했다.
이 판사는 "판결에는 일언반구 반박도 못한 채 선정적인 용어로 언론플레이를 하는 사람들의 말보다 원고 승소를 다지기 위해 변론을 열었다가 결론이 바뀌자 안타까워하셨던 박 원장의 말에 믿음이 간다"고 했다.
그리고 "제게 불이익이 가해진다면 이는 달게 받겠다"고 했다.
이날 이 부장판사는 징계위에는 출석하지 않았다. 서면을 통해 충분히 소명한 데다 이미 스스로 법 위반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법원장은 이날 결정에 따라 징계처분을 내린 뒤 결과를 관보에 공개한다.
이 판사가 징계처분에 불복할 경우 대법원에서 단심으로 재판을 받을 수 있다.
법관징계위원회는 법관징계법에 따라 선임 대법관이 위원장이며 징계위원은 6명이다. 이 가운데 3명은 법관으로 이뤄진 내부위원, 나머지 3명은 변호사, 법학교수, 기타로 구성된 외부위원이다.
이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 '나가사끼 짬뽕'을 패러디한 '가카새끼 짬뽕'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 소속 법원장에게 서면경고를 받았다. 2004년 서울남부지법 형사단독 판사 당시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