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외로운 명절을 맞는 로인이 갈수록 늘어나고있다.
추석은 환한 보름달 아래 온 가족이 고향집에 모여 그동안 못다한 정을 나누는 한국의 최고 명절이지만 찾는이 없이 쓸쓸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로인들에게는 차라리 고통이다.
제천시 신백동에 사는 유모(74세)와 김모(72세) 부부는 올 추석도 단둘이 지내야 했다. 40년전 교회앞에 버려진 갓난아기를 데려와 친자식보다 더 끔찍이 금지옥엽 키웠지만 아들은 5년전 련락을 끊었다.
유씨 부부는 행여나 주워다 키운 자식이라는 상처를 받지 않을가 로심초사하며 온갖 정성을 아들에게 쏟아부었다. 결코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였지만 극진한 보살핌의 대가 치고는 너무나 가혹했다.
아들은 부모 명의로 은행 대출과 사채를 마구 얻어쓰고는 큰 빚만 떠안긴채 발길을 끊었다. 가까스로 소재를 알아내 우편물을 보내면 어김없이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됐다.
계속되는 빚 독촉에 시달리고 기본적인 생활마저 불가능해진 부부는 결국 국민기초생활 수급자가 됐다.
단양에 사는 동갑내기 부부 박모(78세)와 김모는 8년 동안 유지해 온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자격이 최근 박탈됐다. 국세청과 건강보험공단 조회에서 자녀가 부양능력이 있는것으로 확인됐지만 5남매중 이들 부부를 보살피는 자녀는 없다.
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1급 장애인인데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박씨마저 페암 판정을 받았다. 긴급 생계비와 의료비 지원을 받지만 생활은 쉽지 않다. 2주에 한번씩 자원봉사자들이 가져다주는 밑반찬마저 없다면 끼니해결조차 못할 형편이다.
단양군 관계자는 “두 분 다 건강이 많이 안 좋아 수시로 잘 계신지 확인한다”며 “본인들은 정부에서 계속 도움받기를 바라지만 누가 가족을 대체할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슬하에 4남매를 둔 김모(82세) 할머니 역시 찾아오는 자녀가 없다.
철석같이 믿었던 아들은 사업밑천이 필요하다며 이따금 들러 야금야금 땅을 처분해간 뒤 발길을 끊었다. 유일한 벗이 돼 준 남편은 “자식을 잘못 키운 죄값을 치르겠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이렇게 외로운 명절을 맞는 로인이 갈수록 늘어난다. 자녀수 감소와 경기침체 등 외적요인 탓이 크다.
형제가 여럿인 시절에는 한두명 못 가도 다른 형제가 부모를 찾았지만 한둘만 낳는 요즘은 예전과 같을수 없다.
경기가 워낙 안 좋다보니 용돈봉투와 변변한 선물 하나 준비 못하고 빈손으로 고향집에 가는걸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도 있다.
가치관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명절에 부모를 찾아가야 한다는 의식 자체가 옅어진것이다.
부모와 자식 관계가 남남처럼 완전히 단절된 경우도 적지 않다.
가정폭력, 리혼 등으로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경우 부모에 대한 자녀의 부양 의무감이 희박하기도 하고 금전문제 등으로 부모 기대를 저버린 죄책감에 차마 찾아가지 못하는 자녀도 많다.
어렸을적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자녀들이 마치 앙갚음이라도 하듯 늙고 병든 부모를 나 몰라라 방치하는 일도 허다하다.
제천시 관계자는 “수급자 지정을 위해 련락하면 ‘다시는 련락하지 마라. 부모로 인정하고싶지도 않다’는 자녀들도 있다”며 “홀몸로인중에는 자녀와 10∼20년 관계가 단절된 경우가 생각보다 훨씬 많다”고 전했다.
건국대 사회복지학과 리미진 교수는 “급증하는 로인 인구를 위한 기본소득 보장과 함께 사회관계망 확충 지원 등 가족의 빈자리를 채워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그러나 가족문제에서 국가의 역할은 한계가 있을뿐더러 일일이 개입할수도 없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 홀몸로인 인구는 144만여명으로 2010년보다 36.6%나 늘어난것으로 한국보건복지부는 집계했다. 전체 인구중 13.5%, 로인 인구중 21%를 차지한다. 홀몸로인가운데 자녀 왕래도, 돌봄써비스 혜택도 없이 외딴섬처럼 홀로 지내는 로인이 지난해 이미 74만명을 넘어섰다.
편집/기자: [ 리미연 ] 원고래원: [ 본지종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