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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재칼럼] 추석에 생각하는 가족

[온바오] | 발행시간: 2016.09.14일 21:24
[정규재 칼럼] 가정을 파괴하는 복지국가

육아도 양로도 사회화, 복지화

가족의 책임이 국가 업무로 전환

1인 가구도 걱정할 일 아니라지만…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어리석은 부모로부터 그들의 자녀를 분리시키기를 원했던, 아마도 최초의 진지한 철학자는 플라톤이었을 것이다. 부모들의 무지와 경제적 능력에 따라 불평등이 대물림되는 것이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미래의 국가 구성원을 국가가 직접 책임지고 평등한 교육 아래 길러 낸다는 면에서도 이는 바람직한 것이었다.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신생아는 모두 걸러내고(죽이고) 심신이 건강한 아이들만 골라 국가의 탁아 및 교육기관에서 키워 낸다는 생각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대부분 사이비 진보론자나 설계론자 즉, 좌와 우의 국가주의자들은 플라톤이나 헉슬리에 의존해 그들의 국가와 가정을 설계해 왔다. 이 국가탁아소 이미지는 수많은 동화 및 공상과학소설과 영화에서 되풀이됐다. 국가는 개별적 가정의 한계를 부정하는 기초 위에 설계된 ‘큰 가정’이기도 했다(스웨덴은 국가를 그렇게 부른다).

아이는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가 잘만 하면 완전히 새로운 인간으로 키워 낼 수 있다는 생각은 현대 전체주의 국가의 슬로건이기도 했다. 오늘날 자녀 교육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부모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된 사고패턴이기도 하다. 잘 설계된 조건 속에서라면 어떤 품성의 인간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스키너의 블랙박스 이론에까지 교육이론은 인간을 지배하고자 노력해 왔다. 유치원이든 보육원이든 사회와 국가가 가정을 대체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수용된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부모의 손이 아니라 적절하게 교육받은 전문가들의 손에 맡겨져 자라난다. 아니 그것이 하나의 권리처럼 부모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그래서 지자체와 중앙정부는 보육예산 문제를 놓고 이렇듯 치열하게 머리를 치받으며 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국가가 가정을 대체하는 것은 모든 설계적 사고의 공통된 결론이다. 복지국가 이론도 어느 정도는 비슷한 결론으로 우리를 몰아간다. “백지에는 어떤 얼룩도 없기에, 그 위에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은 마오쩌둥이었다. 혁명적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갓난아이만이 순결하다”는 것은 크메르루주의 슬로건이었다. 무서운 인용구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숨겨진 경향성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아이들은 협소한 가정이 아닌 국가의 큰 유치원에서 자라나야 한다는 것이다. 보육예산을 두고 이렇게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는 것, 그리고 일터로 나간 부모를 대신해 내 자녀의 보육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는 것을 보면서 히틀러, 마오쩌둥과 크메르루주로 이어지는 플라톤의 계보를 얼핏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노인들도 가정에서 분리 혹은 격리되고 있다. 노인들은 ‘죽음의 의료화’ 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요즘 집에서 최후를 맞는 노인은 거의 없다. 죽음은 자연의 과정이 아니라 병원 업무일 뿐이다. 노후의 삶 역시 요양시설의 업무로 바뀐 지 오래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완결되던 유년과 노후생활의 대부분이 사회화되고 있다. 놀랍게도 복지국가는 이런 변화를 가속화한다. 1인 가구가 크게 늘어 520만명(가구)에 이르렀다고 하지만 촘촘한 복지제도는 1인 가구를 비교적 견딜 만한 둥지로 만들고 있다. 노인 중에는 복지수당을 받기 위해 가구를 분할하는 사례도 많을 것이다. 복지국가의 원조 스웨덴은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47%다. 국가의 촘촘한 보살핌은 1인 가구를 불편이 없도록 만들어 준다. 1인 가구에 각종 결손 가정까지 감안하면 전통의 가족제도는 이미 무너졌다는 게 진면목이다.

1인 가구 증가를 가정의 파괴요, 따라서 불행의 조건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정이야말로 인습의 장소요, 억압의 굴레이며, 견디기 어려운 악연의 지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쪽 발을 구시대에 딛고 있는 우리로서는 무너지는 가정과 해체되는 가족에 대해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가정의 사회화가 초래할 미래의 모습 말이다. 추석이 코앞이기에 ….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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