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량(呂梁) 산간지대에 위치한 산시(山西)성 커란(岢嵐)현 헤이위(黑峪)촌의 거아이핑(葛愛萍, 왼쪽에서 세번째) ‘제1서기’가 마을 간부들과 전자상거래 공동구매 활동의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 상의하고 있다(2017년 3월 1일 촬영). [촬영/ 신화사 기자 차오양(曹陽) ]
구이저우(貴州) 첸시난(黔西南) 부이족(布依族)먀오족(苗族)자치주 칭룽(晴隆)현의 장스쿤(姜仕坤, 중간) 당서기가 생전에 마창(馬場)향 잔마(戰馬)촌에서 군중들의 농업생산 현황을 파악하고 있는 모습이다(사진자료).
간쑤(甘肅)성 딩시(定西)시 안딩(安定)구 찬커우(巉口)진 룽탄(龍灘)촌의 마을 주민 양잉비(楊應弼) 일가가 자기집 뜰 안에 있는 우물에서 물을 받고 있다(2016년 7월 27일 촬영). [촬영/ 신화사 기자 판쉬(潘旭)]
구이저우성 즈진(織金)현 허타오자이(核桃寨)의 청년 양원쉐(楊文學)가 자기와 마을의 청년들이 닦은 마을과 외부를 잇는 길에서 걷고 있다(자료사진).
조판사진: 위 사진은 쓰촨(四川)성 퉁장(通江)현 눠수이허(諾水河)진 류린(柳林)촌의 빈곤가정 시스템에 등록된 리궈즈(李國芝)가 자기집 문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벽에 쓰인 ‘고전할지언정 참고 견디지 않겠다(寧願苦戰不願苦熬)’는 8글자가 사진에 담겼다(2016년 8월 22일 촬영).
아래 사진은 리궈즈가 채소 밭에서 물을 주고 있는 모습이다(2016년 9월 22일 촬영). [촬영/ 신화사 기자 류쿤(劉坤) ]
헤이룽장(黑龍江)성 칭강(青岡)현 민정(民政)진 지둥(繼東) 바이어(白鵝)산업전문합작사 인튜베이터 기지의 근로자가 다른 지역으로 판매할 새끼 거위를 포장하고 있다(2016년 6월 8일 촬영). [촬영/ 신화사 기자 왕숭(王松 )]
안후이(安徽)성 펑양(鳳陽)현 샤오강(小崗)촌의 포도 밭에서 일하는 농민들이 포도를 딸 준비를 하고 있다(2017년 7월 13일 촬영). [촬영/ 신화사 기자 궈천(郭晨) ]
근로자들이 허난(河南)성 선츄(沈丘)현 베이양지(北楊集)향 린자이(林寨)촌 마을 주민 린펑(林峰)의 밀 밭에서 밀을 수확하고 있다(2012년 6월 5일).
린펑은 1,000여 무 경작지의 경영권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 기계화 재배와 생산을 진행했다. 빈곤과의 투쟁에서 오로지 개혁하는 사람만이 이길 수 있고 개혁하는 사람만이 진보할 수 있다. 개혁은 빈곤과의 투쟁을 한발 한발 승리로 이끌어 가고 있다. [촬영/ 신화사 기자 자오펑(趙鵬) ]
푸젠(福建)성 우핑(武平)현 완안(萬安)진 제원(捷文)촌의 마을 주민 리구이린(李桂林)이 재산권개혁 후 입수한 산림소유권 증서를 보여 주고 있다(2017년 6월 16일 촬영). [촬영/ 신화사 기자 자린산촨(林善傳) ]
장시(江西) 징강산(井岡山) 샤치(下七)향의 귀향 창업한 대학생 루츙팡(盧瓊芳)이 자기의 ‘농촌e배달’ 서비스센터에서 현지 특산품인 징강 붉은 쌀을 전시하고 있다(2016년 2월 2일 촬영). [촬영/ 신화사 기자 리허(李賀)]
조판사진: 위 사진은 1996년, 간쑤 룽난(隴南)시 당창(宕昌)현 아우(阿塢)향의 농민 양가뉘(楊尕女)가 집에서 딸을 안고 찍은 사진이다. 등뒤의 벽에 목탄으로 그린 기차가 사진 배경으로 나왔다. 그 당시 기차를 타 본적 없는 양가뉘는 언젠가 기차 타고 깊은 산골에서 나갈 수 있기를 꿈꾸었다. [촬영/ 신화사 기자 우빈(武斌)]
아래 사진은 2016년 12월 24일, 양가뉘(오른쪽)와 딸이 새로 건설된 룽난시 당창현의 란위(蘭渝)철도 하다푸(哈達鋪) 기차역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촬영/ 신화사 기자 천빈(陳斌)]
이것은 란위철도 간쑤 룽난 관내의 한왕(漢王)특대교(오른쪽)와 고속도로 및 국도가 교차된 모습이다(2016년 12월 25일 촬영). [촬영/ 신화사 기자 천빈(陳斌)]
신장(新疆) 카스(喀什) 자스(伽師)현의 광둥(廣東) 쓰커(思科)확대실업유한공사 직원이 생산라인에서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2016년 9월 25일 촬영). [촬영/ 신화사 기자 톈젠촨(田建川)]
조판사진: 위 사진은 닝샤(寧夏) 융닝(永寧)현 민닝(閩寧)진 건설 초기의 향진 모습이다(사진자료).
아래 사진은 2016년 7월 22일에 촬영한 민닝진 위안룽(原隆) 이민 마을이다 [촬영/ 신화사 기자 왕펑(王鹏)].
조판사진: 위 사진은 이민이 이사 간 닝샤 구위안(固原)시 펑양(彭陽)현 훙바이양(紅白陽)진 황토고원의 지형이다(2013년 6월 15일 촬영).
아래 사진은 이민들이 닝샤 인촨(銀川)시 싱칭(興慶)구 웨야후(月牙湖)향의 이민 신주택에 입주한 모습이다(2015년 6월 22일 촬영). [촬영/ 신화사 기자 왕펑(王鹏)]
장기간 빈곤에서의 허덕임은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풍족하고 편안한 생활을 누리는 상태) 사회를 더욱 동경하게 했다. 이것은 중국공산당이 초심을 잃지 않고 용감히 돌진해온 100년이고 당이 인민을 거느리고 7억 여명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한 30년이며 앞으로 3년 동안 4,000여만 군중을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는 위대한 결전이다.
원문 출처: 신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