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앱 | | 모바일버전
뉴스 > 사회 > 사회일반
  • 작게
  • 원본
  • 크게

《이 사진은 내 목숨과 바꾼것입니다!》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2.08.14일 14:34
50년대 《국가공신》 60년대 《주덕해보황파》 정책을 묻다

집에 찾아온 80대 손님

8월 11일, 도문시 신화가에 거주하는 김용욱(80세)옹이 사진, 군공메달, 증서 등 소중한 자료들을 내놓으며 하는 말이다

《시공회 경제부 부장이 전화번호까지 알려주면서 그래도 오기자를 찾아가 사연을 말하라고 권고하기에 이렇게 집까지 찾아왔습니다…》

자료는 《심양군구 공안군 제1차 적극분자대표대회 전경》(1956.10.9), 《모주석과 중앙수장들 중국인민해방군 공안군 적극분자대표대회 전체 대표들과 합영》(1956.11.16), 군공메달, 증서 등이였다.

《이 사진은 내 목숨과 바꾼것입니다!》

김옹이 모주석과 함께 찍은 사진을 가리키며 《문화대혁명때 반란파들이 몰수해간것을 요행 찾았다》며 비록 그들이 잘 건사하지 않아서 볼품은 없지만 자기 목숨과 바꾼것이기에 정히 보관한단다.

기자를 찾은 김옹의 사연은 이러하다.

월전에《성로동모범은 매년 1000원의 생활보조금, 매월 50원 의료비(애심카드)를 받는다》는 소문을 듣고 도문시공회를 찾아갔더니 책임자가 자기네는 못 해결하니 기자를 찾으라고 하더란다.

8월 13일, 기자는 도문시공회를 찾아가 원인을 알아보았다.

경제부 부장 성송의 말이다.

최근에 우리는 연변주공회로부터 우리 나라 1차 5개년이후의 성급로력모범을 등록하라는 지시를 받고 지금 성급로력모범을 등록하고있다. 우리는 매년 양력설과 음력설에 성로력모범들을 찾아가 위문하는외 상황에 따라 그들에게 생활보조, 병치료보조를 한다.

성로력모범은 본인이 성로력모범증서와 관련 문건을 제공해야 한다(문건은 조직에서 보관하는데 본인이 제공하라니 문제로 되고있다).

공회조직은 로력모범을 취급하지 기타 공신은 취급하지 않는다.

김영욱아바이가 제공하는 자료는 50년대 심양군구 정위와 사령원이 서명한 증서, 메달, 모택동, 류소기, 주은래 등 당과 국가의 지도자들과 함께 찍은 《중국인민해방군 공안군 적극분자대표대회 대표》사진이다. 그러니까 상급에서 성로력모범을 등록하라며 요구하는 서류와 틀린다.

내 생각에는 해방군공신은 민정에서 취급해야 한다. 김옹은 50년대 국가공신으로서 그에 따르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오기자가 김옹의 사적과 현실을 사회에 알리고 그 신문기사를 근거로 해당 부문을 찾으면 답이 빨리 나오리라고 생각되여 그더러 오선생을 찾으라고 하였다.

심양군구 공안군 제1차 적극분자대표대회 전경(1956.10.9),

모주석과 중앙수장들 중국인민해방군 공안군 적극분자대표대회 전체 대표들과 합영(1956.11.16)

50년대는 《조국 사회주의건설 적극분자》

김영욱이 제공한 증거는 1956년 11월 중국인민해방군 공안군 사령부와 정치부의 《공안군조국사회주의건설적극분자대표대회》사진, 증서, 메달이다.

김영욱은 1933년 4월 26일, 조선 함경남도 단천군 리증면 두리에서 탄생, 9살에 부모 따라 화룡현 투도구 청룡촌에 정착하여 소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일을 하다가 1951년에 참군, 연변변방퇀에서 8년간 복역하다가 패급간부로 제대하였다.

당년 연변변방부대는 《6.25》전쟁과 함께 중조 국경을 넘나드는 특무와 밀수분자들과 싸우며 조국의 사회주의건설을 지켰다.

김영욱이《공안군조국사회주의건설적극분자》와 적극분자대표로 표창을 받은것은 남보다도 빛나는 그의 전공(戰功)때문이였다.

김영욱은 워낙 탄탄한 체구에 일찍부터 농사를 하다가 참군하다보니 누구보다도 신체가 튼튼하고 힘이 셌다.

당년 대부분 밀수품이 아편과 손목시계였다. 아편장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불허하는것으로 붙잡히면 경하면 감옥살이고 중하면 사형이였다. 그래서 아편밀수는 《잡히면 죽는다》는데서 흉기를 들고 최후발악을 하였다.

50년대는 장비가 허름하여 령하 30-40도나 되는 추운 겨울밤에 매복하여 변강을 지킨다는것은 간고하기 그지없었다. 남들은 겨우 4시간 근무를 견지하는데 김영욱은 최고 12시간의 근무를 견지했다. 초기에는 군견이 없다보니 매복하여 있으면서 눈 한잠 못붙였다.

얼마나 간고했으면 일부 전사들이 자기로 자기 다리에 총을 쏴서 부상으로 퇴역을 시도했겠는가? 그리고 밀수분자들의 매수에 걸려 타락된 분자들도 종종 있었다.

허나 김영욱에게는 《집처럼 나라를 지킨다》는 일념과 사명밖에 없었단다.

그는 자기만의 경험에 비추어 밀수분자들이 늘 다니는 길을 장악하고 방어선을 설치해 놓은데서 전공이 남보다 곱절이나 더 많았다. 붕대로 밀수품을 감고 종기환자로 위장한 밀수군, 유방밑에 밀수품을 감춘 녀밀수군, 자궁에 아편을 숨긴 녀밀수군을 붙잡는것은 거의 모두 《천리안》, 《만리이》, 《거미손》 김영욱의 몫이였다.

무더운 여름의 어느날, 김영욱은 죽기내기로 도망치는 밀입자를 추격하다가 그놈이 그만 밭머리에 있는 똥구뎅이에 빠진것을 붙잡느라고 그도 함께 똥구뎅이에 빠지기도 했다.

《지금도 똥구뎅이에 빠지면 일찍 죽는다고 하는데 나는 어려서 똥구뎅이에 빠졌어도 지금까지 이렇게 멀쩡하다이…》

간고했던 그날을 돌이키는 화자(話者)의 이그러진 얼굴을 마주 보기마저 마음이 저려나던 청자(聽者)는 요행 웃음을 짓는 그의 모습에 함께 웃어주었다.

60년대는 《주덕해 보황파》

김용욱이 주덕해를 처음 만난것은 1954년, 그때 연길비행장건설임무를 맡고 한개 사단을 동원하였을 때 주덕해(중국인민해방군대좌)가 비행장건설 총지휘였다.

1958년 3월, 김영욱은 연길현정부 인사과에서 전업, 1965년 5월에 도문시가 설립되면서 도문시당위 조직부에 전근되여 간부심사전문을 맡게 되였다. 1966년 5월에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김영욱은 처음부터 주덕해보호자로 나섰다.

워낙 정부의 인사과와 당위의 조직부에서 간부심사전문이였던 그는 《당중앙에서 엄격한 간부심사를 거친 후 주덕해를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장으로 배치했다》는 믿음 하나로 문화혁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주덕해 보황파》라는 모자를 쓰고 쫓기우고 반란당하고 (그때 반란파들이 그가 모주석과 함께 찍은 사진을 빼앗아갔음) 체포당하고 야만적인 고문을 당했다. 그때 반란파들의 흉기에 찔린 칼자국이 지금까지 그의 량미간에 원한으로 남아있다.

그의 물음과 바람은?

문화혁명후 김영욱은 도문시농기수리제조공장, 도문시환경위생관리처, 도문시수리국 사석관리공사에서 당지부서기, 주임 등 직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정년퇴직을 하였다.

지난 4월 7일, 김옹은 《도문위주임원로》로 불린 부인 한옥련(75세, 40여년간 위주임을 지냈음)을 저 세상에 보내고 홀로 지낸다.

김영욱, 한옥련 부부는 맡은 사업에 일심정력으로 충성하면서도 개인의 득실을 따져본적이 없고 공로장을 내들고 조직과 그 어떤 흥정도 해 본적이 없었다. 그러기에 부인이 죽지만 않았다면 지금 정책에 따라 《도문위주임원로》의 자격으로 몇가지 향수를 받을수 있다고 김옹이 말한다.

김옹은 10년전에 전업간부들에게 매년 일차적으로《무슨 보조금》을 준다는 소문을 듣고 이곳저곳에 다니며 수소문을 해서야 꼭 12년만인 얼마전에 《금년 8월부터 한달에 380원씩 계산하여 년말에 보조를 받게 된다》는 기별을 접하고도 《아직은 못 받았으니 년말이면 알게 되겠지》라고 씁쓸하게 부언했다.

이번도 월전에 친구로 지내는 성로력모범 장일룡(74세)한테서 《성급로력모범이면 매년 1000원의 생활보조금과 매월 50원어치의 의료비(애심카드)를 향수한다》는 말을 듣고 사실을 확인하려고 도문시공회를 찾았다.

이하는 김옹의 물음과 속심말이다.

성로력모범이나 해방군공신은 모두 우리 나라사회주의건설공신이다. 지방의 건설공신은 로력모범이라 칭하고 국방을 보호한 해방군공신은 영웅, 립공자, 적극분자로 칭한다. 나는 참군하여 3등공도 세웠고 국가급 《조국사회주의건설적극분자》, 적극분자대표다. 내가 목숨으로 바꾼 사진이 이를 증명한다.

나는 해방군영웅이나 모범들도 지방로력모범들에 상응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과 정부의 정책은 어디를 가나 같은 정책이고 그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들도 모두 국가 공무원들이다.

내가 이제 살면 몇해나 더 살겠는가? 나는 돈보다도 살아있는 동안에 당과 정부에서 주는 우대로 여생의 보람을 느끼려 한다.

나는 정부관계부문의 책임자들이 진정 열정적이고 뜨거운 마음으로 나서서 나같은 사람들을 도와주기를 바란다. 만약 관계부문에서 이곳에 가보라, 저곳에 가보라며 서로 밀면 우리 같은 로인들은 힘에 부쳐 더는 찾아다니지 못한다.

이 글을 맺으면서 기자는 김영욱 그리고 아직도 김영욱과 비슷한 상황에 모대기고있는 원로들의 갈망이 하루속히 풀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글 오기활기자

뉴스조회 이용자 (연령)비율 표시 값 회원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 주시면 통계에 도움이 됩니다.

남성 80%
10대 0%
20대 20%
30대 20%
40대 40%
50대 0%
60대 0%
70대 0%
여성 20%
10대 2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네티즌 의견

첫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 관련 태그 기사

관심 많은 뉴스

관심 필요 뉴스

KBS아나운서 출신 배우 오영실이 4년만에 7억 대출금을 갚았지만 결국 무리한 일상에 '갑상선암'을 투병했던 삶을 고백했다. 지난 29일 방송된 채널A '절친 토큐멘터리 4인용 식탁'에서는 아나운서 출신 배우 오영실이 출연했다. 그녀의 절친으로는 송도순, 김병옥, 조
1/3
모이자114

추천 많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1/3
"태명은 용용이" 백아연, 악성림프종 이겨내고 임신... '엄마' 됐다

"태명은 용용이" 백아연, 악성림프종 이겨내고 임신... '엄마' 됐다

지난해 8월 비연예인과 결혼했던 가수 백아연이 이번에는 임신소식을 전해 많은 축하를 받고 있다. 지난달 30일, 백아연은 자신의 SNS를 통해 임신 5개월 차 초음파 사진을 공개했다. 그녀는 "저희 가족에게 선물같은 아기천사가 찾아왔다"며 임신소식을 전했다. 이어

"멈추지 않는 질주" 임영웅, 콘서트 앞두고 6일 신곡 발표

"멈추지 않는 질주" 임영웅, 콘서트 앞두고 6일 신곡 발표

오는 5월 25일부터 26일까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아임 히어로-더 스타디움' 콘서트를 앞두고 있는 가수 임영웅이 팬들을 위해 콘서트 전 깜짝 신곡을 발매한다. 지난 29일, 임영웅의 공식 SNS에는 오는 6일 공개될 임영웅의 신곡 첫번째 티저 이미지가 공개돼 팬들

“22kg 다이어트 성공” 이장우 무대 선다, 송스틸러 방송 언제?

“22kg 다이어트 성공” 이장우 무대 선다, 송스틸러 방송 언제?

배우 이장우와 조혜원(나남뉴스) 예능 프로그램의 신성으로 떠오른 배우 이장우(38)가 또 다른 음악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예고하면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장우가 출연하게 되는 프로그램은 MBC ‘송스틸러’다. 이 프로그램은 올해 2월 9일부터 2월 12일까지 파일

모이자 소개|모이자 모바일|운영원칙|개인정보 보호정책|모이자 연혁|광고안내|제휴안내|제휴사 소개
기사송고: news@moyiza.kr
Copyright © Moyiza.kr 2000~2024 All Rights Reserved.
모이자 모바일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