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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68] 어미거미 빈 껍데기 속은 하얗게 비여있었다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21.03.22일 16:00
어릴 때 우리 집 초가집 처마 밑에는 많은 거미들이 살고 있었다. 부지런한 어미거미들은 매일마다 극성스레 거미줄을 치면서 벌레 잡이로 온 식구들을 먹여살리는 모양이였다. 그 때문에 찌그러져가는 낮다란 초가 주위에는 여기저기 둥그런 거미줄망이 보기 흉하게 달려있었다.



지난해 85세 생일 맞는 필자의 엄마  

장난기가 많았던 나는 긴 막대기로 거치장스러운 거미줄을 걷어치우기도 하고 그렇게 딸려나와 땅에 떨어지는 어미거미들을 발로 밟아죽이기도 했다. 고무신을 신은 내 발바닥에서 툭툭 이상한 감각이 느껴지면서 어미거미들은 배가 터지면서 죽어나갔다.

“불쌍한 거미들을 죽이지 말거라…” 엄마가 나를 타일러주었다.

“엄마, 어떤 거미들은 저절로 말라죽었던데요. 속이 텅 빈채로요.”

“그건 말라죽은 게 아니란다. 어떤 새끼 거미들은 먹을 것이 없으면 그렇게 어미속을 파먹어버린단다.”

어릴 때 엄마가 들려주던 말이였지만 나는 그것이 잘 믿기지 않았고 하지만 그 후부터 더는 불쌍한 어미거미들을 죽이지 않았다.

어미거미의 일생을 닮은 듯 엄마는 우리 다섯 남매들을 키우고 공부시키느라 많은 고생을 하였다. 작은 밀차를 밀고 매일 현성 시장으로 짠지장사를 다녔는데 중학교 다니는 나이에 내가 가만히 그 밀차를 밀어보니 그렇게도 무거웠다. 손재간이 없는 아버지는 밀차를 수리해줄 줄도 몰랐고 가볍게 기름칠을 해줄 줄도 몰랐다. 외할머니까지 여덟 식솔이였던 우리 집은 너무나도 오래동안 심한 돈 고생과 식량 고생을 하였다. 엄마는 평생 가도록 값진 새옷 한벌 해입은 적 있은 것 같지 않았고 식사 할 때도 언제나 흰 쌀밥쪽은 우리한테 밀어주고 자신은 누런 감자 섞인 조밥만을 뜨군 하였다. 해마다 리자 돈을 많이 꾸어쓰다보니 하나뿐인 이 아들이 결혼식을 올리기 전날까지도 빚받이군 아낙네가 집에 찾아와서 행악을 부렸기에 엄마는 물론 나와 녀동생들까지 서럽게 울음판을 벌린 적도 있었다.

엄마보다 11년이나 년상인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술주정을 부리였는데 그 때 우리 집은 동네에서 제일 화목하지 못한 가정으로 꼽히였다. 동네 애들은 명절만 돌아오면 좋아 야단인데 우리 집 식구들은 명절이 돌아오는 것조차 근심이 되였다. 명절이 되면 술이 있었고 술만 마시면 아버지는 엄마와 싸우군 하였다. 그렇게 중학교에 다닐 때에야 나는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였다. 십여년전 우리 다섯 형제가 태여나기전에 우리 집에는 귀동이라 이름 지은 맏이로 아들 하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애기가 한살 되는 해에 심한 설사에 걸렸는데 병원은 멀고 집에는 돈도 없고 해서 그대로 토방법만 쓰면서 요행을 바라다가 끝내는 아들애를 잃어버리는 참사를 겪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 후부터 더욱 술만 마시면 취하였고 술에 취하기만 하면 엄마와 싸웠다는 데 아버지가 69세 때 차사고로 세상뜰 때까지도 엄마는 그렇게 평생을 당하기만 하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집 식구들과 함께 있는 필자의 엄마

“그 때 애기를 병원에 실어가서 링게르 한병만 맞혔어도 살렸을 건데…”

“어미 피를 뽑아 팔아서라도 애기를 병원에 데려갔어야 했는데…”

엄마는 그 소리를 늙어서까지도 드문드문 입에 올리군 하였다. ‘엄마거미’의 가슴속은 새끼를 잃은 그 때로부터 하루하루 파먹히고 말라들어갔는지도 모른다.

다섯 자식들을 모두 시집장가 보내고 인제는 80이 넘은 고령에 이르러서 엄마는 기어이 양로원에 가겠다고 고집을 세웠다. 모두 외국에 가 있는 네 딸들도 엄마를 가까운 양로원에 보내는 것이 옳은 도리라고 하였다.

며느리가 장기 환자이지, 엘리베이터가 없는 층집 6층에서 밖으로 한번씩 나올려고 해도 운신이 힘든 데다가 집에서는 자주 목욕을 할려고 해도 조건이 안되지, 손주들도 외지에 가있고 아들며느리도 정상 출근을 해야 하지…, 이것이 결사적으로 양로원에 가 있겠다는 엄마의 리유였다.

양로원에 간 후에 엄마는 딸들과 통화할 때마다 양로원이 좋다고 한다. 음식이 입에 잘 맞는다고 한다. 매일 앞마당에 나와서 운동을 할 수 있어 좋다고 한다. 매주 금요일마다 통일로 목욕을 할 수 있고 옷과 이부자리까지 양로원에서 씻어주어서 근심걱정이 없다고 한다. 게다가 아들이 명절외에도 거의 주일마다 찾아와서 시내에 가서 맛 있는 음식을 대접하기에 행복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엄마는 집에 할 일이 많겠는데 다음주일에는 양로원에 오지 말라고 한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때만 되면 마당에 나와서 내 차번호를 찾아본다는 늙은 엄마이다… 엄마는 이렇게 자식들한테 많고 많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죽을 때에 ‘효자아들’한테 변변한 저축 통장 하나 남겨주지 못하는 게 어미로서는 제일 미안하다고 딸들과 전화로 속심 말 할 때도 있었다.

양로원에 있는 게 그렇게 행복하다고 하였지만 엄마는 하루하루 정신 상태가 못해져갔고 불쌍한 ‘어미거미’처럼 마음속이 파 먹히고 메말라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맏딸의 이름은 류금란, 둘째 사위 이름은 김명섭, 큰 외손주 이름은 황영춘…”

양로원에 가 있는 첫해에는 자식들과 손주들의 이름을 아무 때나 물어보아도 인차 척척 대답할 수가 있었는데 이듬해에는 아들과 딸들의 이름 만을 기억할 수 있을 정도였고 또 그 다음해에는 네 딸들의 이름도 오락가락 틀리게 대답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가 이상하게도 영상통화만 하면 대뜸 딸들의 이름을 용케도 맞추어내군 하는 것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간, 이튿날 다시 물어보면 전날에 어느 딸하고 영상통화를 한 일까지 기억을 못하는 정도로 되였다.

이렇게 엄마의 마음속에 깊이 저축되여있던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은 야속한 세월과 더불어 하루하루 색바래져갔고 다섯 자식을 젖먹여 키워준 엄마의 가슴도 끝내는 텅텅 비여버린 껍데기로 남아있게 되였다.

“내가 어릴 때에 어미거미가 왜서 속이 텅 비여 말라죽었다고 했던 가유?”

엄마의 정신상태를 측험하려는 듯 내가 이렇게 물어보았다.

“그거야, 늙어서 그렇게 됐겠지므… 늙으면 다 그렇게 되는 법이지…” 엄마는 ‘어미거미’가 속이 텅 비여 죽은 게 새끼거미들이 속을 파먹어서 그렇게 된 거라는 말을 다시는 하지 않았다.

그 때 양로원에서 엄마와 같이 한방을 쓰는 안로인이 있었는데 엄마보다 년세가 많이 적었지만 당뇨병이 심하여 머리맡에는 약통들이 무더기로 쌓여있었고 그것도 소용 없어서 매일 소금물에 손발을 담그면서 아픔을 이겨낸다고 했다. 그 보다도 더 가슴 아픈 현실은 그 안로인의 자식들이 모두 외국에 나가있어서 1년 동안 한번도 보러 오는 친인이 없다는 것이였다.

“이 고생을 말고 빨리 죽어버려야 새끼들도 시름을 놓겠는데…” 그 안로인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엄마는 어느 한번 나한테 이렇게 물어오는 것이였다.

“듣자니 사람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죽을 때까지 아무 아픔도, 고통도 없고 또 죽은 후에는 먼저 하늘나라에 간 친인들을 곧바로 만날 수 있다는데… 나도 그런 ‘예수님’을 믿어나 볼가? “

나는 그 말을 듣고 끔쩍 놀랐다. 엄마가 어쩌면 죽음과 련관이 되는 이런 소리를 갑자기 할 수 있는 것일가?

“그런 헛소리 곧이 듣지 말아유. 사람이 죽으면 모든 정신세계도 싹 없어지는 법인데, 예수를 믿는다구 아프지 않구 죽으면 앞서간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게 말이 돼유? 그게 다 미신인 거유. 이런 미신을 마구 믿다가는 자식들 한테두 나쁜 영향이 있으니… 그러니까 생전일 때에 맛 있는 것 하나라두 많이 먹구 운동두 많이 하면서 하루라두 더 건강하게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하지유…” 다 타버린 연탄 재덩이를 생각 없이 뚜져내버리듯 내 입에서 이런 투박한 소리가 황당하게 튀여나갔다.

“자식들한테 영향이 나쁘다면야… 믿지 말아야지… 믿지 말아야지… 믿지 말아야지.” 엄마는 그 한마디를 세번이나 곱씹었는데 마지막에는 입속으로 혼자 그냥 중얼거리는 셈이였다.

이번 음력설을 계기로 코로나19 영향으로 엄마를 집에 모셔와서 거의 두달을 함께 있었다. 바깥 세상 영문을 모르는 엄마는 그동안에도 며느리를 고생시킨다면서 빨리 양로원에 돌아가야 한다고 하였다. 후에 코로나19가 좀 즘즘해졌을 때에 다시 엄마를 양로원에 모셔갔는데 그 때 한방을 쓰던 그 안로인이 보이지 않았다. 관리원한테 물어보니 그녀가 나한테 가만히 “량수에 갔다”고 하였다. 도문시 량수진(凉水镇)에 화장터가 있었기에 우리 훈춘사람들은 사람이 ‘죽었다’는 걸 “량수에 갔다”고도 말한다.

늙은 엄마는 “량수에 갔다”는 말의 뜻을 몰랐고 그 안로인이 인제는 어느 자식이 돌아와서 집으로 모셔갔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잘됐네, 그렇게도 자식들을 기다리더니 끝내 자식들 곁으로 갔구만…” 엄마는 인제는 자식들 ‘집’에 갔을 그 안로인을 부러워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듯 했는데 그것을 눈치로 느껴지는 내 마음도 편치가 못했다.

그날, 착잡한 심정을 억누르면서 엄마의 옷가지와 옷장 안의 물건들을 다시 정리하느라 하다가 나는 또다시 가슴 아픈 일을 발견했다. 거치른 인쇄로 된 낡은 책자가 있었다. 책갈피가 거의 떨어져나간 책자 속에는 엄마 이름의 저축통장 몇개가 깊이 숨겨져있었다.

여러해전 엄마가 한국 막내딸 한테로 갔을 때 페치해버린, 인제는 비밀번호마저도 잊혀버린 세개의 저축통장에는 아직도 밑바닥에 남은 예금 액수가 찍혀져있었다.

중국공상은행 예금 37.22원

중국건설은행 예금 1.00원

중국우정저축 예금 0.00원

늙은 엄마는 이 저축통장이 이미 쓸 데 없는 페물이 되여버린 줄도 몰랐을 것이고 통장 액면에 찍혀있는 소수점 뒤의 0까지도 셈에 넣으면 그냥 꽤 큰 돈 액수로 들어가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엄마는 죽기전이면 이 저축통장을 하나뿐인 이 ‘효자’아들한테 넘겨줄 생각까지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보다도 끝내는 이내 가슴을 찢어울리게 한 것은 예금액수가 0.00원으로 찍혀져있는 중국우정저축 통장 속에 고스란히 끼워있는 사진 한장이였다.

그것은 아버지가 조선인민군 중대장으로 있을 때 찍은 멋진 군관복 차림의 사진 한장이였는데 한평생을 가정 싸움으로 반려로 있었던 그 죽도록 얄미운 령감의 사진 뒤면에는 아직도 희미하게나마 이름 석자가 씌여있었다.

‘귀동이’

/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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