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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공동체의 형성과 변화: 역사적, 이론적 접근(2)/정호영

[중국조선족문화통신] | 발행시간: 2009.12.08일 09:56
정호영(한국 고려대학교)


Ⅳ. 민족 공동체의 형성

1. 민족이란 무엇인가

민족을 골치 아프고, 선동적이고, 정의하기도 어려운 것이라고 지적하였던 Tilly는, 그래서 그것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민족이 국가와 혼동되기도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어떤 실체라는 점은 인정하면서, 그것의 특징을 대중적인 정치적 정체성과 문화적 동질성으로 제시하였다(Tilly, 1975: 6-7). Waldron 또한 민족은 국가라는 용어로는 포착되지 않는 무엇인가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 무엇이란 바로 감정(feeling), 열정(passion), 국가 혹은 권력에 대한 정당화 능력 같은 것들이라고 주장하였다(Waldron, 1985: 417). 이러한 지적들은 일단 민족이 국가와 자주 혼동을 일으킬 정도로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 민족은 문화적 성격과 더불어 정치적 성격도 가지고 있다는 점, 민족에 의해 국가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점, 정서나 감정 같은 사회학적 차원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 같은 것들을 알려준다.


민족이란 무엇인가. 민족이라는 말에 들어 있는 의미들은 실로 다양하고 그것의 쓰임 또한 다양하지만 , 그 다양한 의미들과 쓰임새들에는 어떤 공통점이 발견된다. 그것은 민족이 애초부터 우리와 그들(us and them, locals and aliens)을 구분하기 위한 필요에서 나온 것이고, 따라서 대내적 동질성과 대외적 이질성의 용어로서 공동체를 함의는 맥락에서 사용되어 왔으며, 현재에도 그런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족은 애초부터 차별적 특징을 갖는 한정적 집단들을 서로 구분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였으며, 이 맥락에서 민족이 의미하는 바의 핵심은 ‘한정적, 배타적 공동체’인 민족의 성원들은 독특한 규정적 특징들을 공유하고, 우의의 감정(feeling of fraternity)에 의해 서로 결속된다는 것이다(Tamir, 1995: 428-429). 성원들간의 유대 및 성원들에 의해 공유되는 특징들에 따라 규정되는 공동체라는 것은 민족의 두 가지 규정적 특징들 중 하나인데, 이것은 민족의 사회문화적 측면이다.


다른 한 가지의 규정적 특징은 민족이란 국가를 전제로 하지 않고는 성립 불가능한 실체라는 점인데, 이것은 민족의 정치적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Ben-Israel은 민족이 의미하는 바가 ‘동질적인 하나의 전체 혹은 분할 불가능한 하나와 국가’라고 하였다(Ben-Israel, 1992: 369). 사실 이런 지적을 굳이 검토할 것도 없이, 민족이 국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은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민족(nation)을 민족이라는 의미로도 국가라는 의미로도 사용한다는 것, 그리고 국가와 민족을 지속적으로 혼동하게 된다는 것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


사회문화적 단위이자 정치적 단위로서 민족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민족에는 수없이 많은 정의들이 존재하지만 , 일반적으로 민족을 정의하는 방식에는 객관주의적 입장과 주관주의적 입장이 있다. 객관주의적 입장은 민족됨(nationhood)의 기준을 언어의 공유, 영토의 공유, 공통의 역사와 문화적 특징, 종교 같은 객관적 특징들에 두는 반면, 주관주의적 입장에서는 민족 구성의 핵심은 민족으로 하나가 되려는 성원들의 의지, 서로를 동료로 간주하는 상호적 인식이라고 본다 (홉스봄, 1994: 20, 22-23; Ben-Israel, 1992: 369, 391-395; Gellner, 1983: 7; Haas, 1986: 712-713). 주관주의 진영에 속하는 논자들은 기본적으로 국가 권력의 정당화 필요가 민족을 탄생시킨 근본적 원인이며, 민족을 탄생시킨 수단은 국가의 조작적 정책(manipulative policy)들이며, 민족이 형성된 시점은 근대 이후라는 입장을 갖는다. 반면, 민족주의자들에게서 주로 발견되는 객관주의적 입장은 인종적 요소들(racial elements)과 문화적 요소들(cultural elements)을 결합시켜 민족을 이해하는 경향을 갖는데, 이런 입장은 자기 민족은 아주 오랜 과거부터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라는 믿음을 중심적 요소로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입장에서는 자기 민족을 근대적 구성물이 아니라 영원성의 실체, 역사적 유산으로 이해한다.


민족이 전적으로 개인들의 자유로운 선택 사항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을 구성해내는 실체란 점에서는 객관주의적 입장이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 기원을 고대에 두고서 민족에 원초성(primordiality)을 부여하여 그것을 영원성의 실체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근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민족은 근대로의 이행 과정 속에서 국가의 정치적 정당화라는 목적을 위해 국가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물론, 역사적문화적 유산으로서 에스닉적 기초에 바탕한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


민족에 대한 시각이 객관주의적 입장과 주관주의적 입장으로 갈리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민족에 두 시각들이 강조하는 사항들이 모두 들어있기 때문이다. 주관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갖는 프랑스 같은 서유럽 민족에서도 혈통적 이미지와 유산은 정치적 담론의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있으며 , 객관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갖는 아시아 대부분의 민족들에서도 성원들의 법적 평등성의 중요성은 대단히 크다. 어느 쪽에 더 비중이 실리느냐라는 문제는 있지만, 결국 객관적 기초와 주관적 기초는 함께 하나의 민족을 구성해낸다. 그리고, 두 가지 기초들 중 어느 것에 더 무게가 실리는가는 각 민족과 민족적 운동의 특성을 만들어내는데, 에스닉적 요인들이 강조되는 정도와 민족적 운동의 폭력적 성향간에는 상당한 정적 상관관계가 관찰된다. 에스닉적 측면들이 강조될 수록,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그만큼 더 본능적, 원초적이 되기 때문이다(Ben-Israel, 1992: 393, 395).


Smith는 이런 두 측면을 모두 인정하면서 민족을 원초주의나 도구주의 중 어떤 하나의 시각을 가지고 일률적으로 설명하는 대신 민족에 대한 두 가지 모델들을 제시하였다. 그는 객관주의적 특징에 더 많이 지배되는 민족도 있고, 주관주의적 특징에 더 많이 지배되는 민족도 있다고 보았다. 전자의 경우 민족은 성원들에 의해 마치 영혼과 과업을 가진 유기체와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지며, 후자의 경우에는 민족이 동일한 정부와 법률에 의해 지배되는 공동의 영토 안에 사는 사람들의 합리적 결합으로 이해되는데, Smith는 이들 각각을 에스닉-혈통적 모델(ethnic-genealogical model)과 시민적-영토적 모델(civic-territorial model)이라 불렀다 (Smith, 1991: 79, 81). 그리고, 그는 민족이란 어떤 모델의 것이든 근대적 산물인 것이 사실이지만, 동시에 민족이 근대 이전부터 존재해온 에스닉적 기초 위에서만 형성될 수 있었다는 것 또한 사실이라고 주장하였다(Smith, 1991: 71-72).


민족에 대한 상이한 모델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결국 에스닉적-혈통적 특성들과 시민적-영토적 특성들을 동시에 가질 수밖에 없는 실체라면, 유형에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민족의 기준들을 마련해볼 필요가 있는데, Smith에 의해 제시된 기준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민족은 역사적 영토 또는 조국 땅을 실제로 ‘소유’해야 한다. 둘째, 민족은 공동의 신화와 역사적 기억을 가져야 한다. 셋째, 민족은 공동의 대중화된 문화를 가져야 한다. 넷째, 민족은 공동의 법률적 권리와 의무 체계를 가져야 한다. 다섯째, 민족은 그 영토 안에서 성원들의 자유로운 이동성이 보장되는 공동의 경제를 가져야 한다.


이러한 기준들을 종합해보면, 민족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영토, 기원에 대한 공동의 기억과 신화, 표준화된 대중 문화, 하나의 공동 경제와 영토 내에서의 이동성, 모든 성원들에 대하여 공동의 법적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법률 체계를 공유하는, 하나의 명명된 인적 집단”으로 정의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의 자체보다도 이 정의가 알려주는 민족의 내용인데, 그것은 자세히 보면 민족은 영토적 단위, 정체성 단위, 경제적 단위, 정치적 단위의 결합이며, 간략히 보자면 그것은 정체성 단위이자 정치적 단위라는 것이다.

2. 민족과 국민인가, 에스닉 집단과 민족인가

Tilly가 민족(nation)과 국가(state)를 구분하는 데서 어려움을 느꼈듯이, 한국에서는 민족과 ‘국민’간의 관계에서 많은 혼란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 혼란은 ‘에스닉 집단’이라는 개념까지 가세하면 더욱 심해진다. 민족과 국민이 맞는가, 아니면 에스닉 집단과 민족이 맞는가.


‘민족과 국민’이라는 개념적 구도를 갖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우선적 이미지는 하나의 정치적 공간 안에 공존하는 다수의 민족들이다. 이럴 때, 민족은 오랜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혈통적 공동체로 이해되는 반면, 국민은 혈연적 배경이나 문화적 배경과 관계없이 한 국가의 영토 안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을 지칭하는 포괄적인 인적 집합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이 구도에서는 민족은 독자성의 개념으로, 국민은 포괄성의 개념으로 위치하기 때문에, 문화적 배경이나 혈통적 배경을 초월하여 국가적 통합을 주장하려 할 경우, 그것은 국민적 통합이나 국민 정체성에 대한 주장으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이 구도를 채택한 사람들에게 미국 같은 다문화 사회는 ‘다민족 사회’이며, 그 사회의 통합은 ‘국민적 통합’을 통해서 가능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다문화 사회의 독자성과 포괄성이 ‘에스닉 집단과 민족’이라는 개념적 구도에 의해 설명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당황케 한다. 이 구도 속에서는, 에스닉 집단이 역사문화적 단위로 이해되고, 민족이 문화정치적 단위로 이해된다. 따라서, 이제 독자성의 단위로 위치하게 되는 것은 에스닉 집단이고, 포괄성의 단위로 위치하게 되는 것이 민족이 된다. 이 때, 미국은 다중 에스닉 사회(multi-ethnic society)이고, 그 사회의 통합은 ‘민족적 통합’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민족과 국민인가, 아니면 에스닉 집단과 민족인가라는 문제의 핵심은 민족을 문화적 단위로만 규정할 것인가 문화적 단위와 더불어 정치적 단위로도 규정할 것인가에 있다. 그것이 문화적 단위로만 규정된다면, 다문화적 국가들이 충만한 지금 현재와 같은 세계적 조건 속에서 적합성을 갖는 구도는 ‘민족과 국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민족이 문화정치적 단위로 규정된다면, ‘에스닉 집단과 민족’의 구도가 갖는 현실 적합성이 더 클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들 두 개의 개념 쌍들은 동일한 현상에 대한 서로 다른 표현들에 해당하므로, 어느 것을 채택하느냐는 결국 선택의 문제가 될 것이다. 민족이 역사와 문화만이 아니라 정치적 공동체로도 정의된다면, 그리고 그것이 국가의 주권 범위 안에 위치하는 모든 개인들과 집단들에 대한 통일성의 맥락에서 발달한 관념으로 취급되는 한, ‘에스닉 집단과 민족’을 선택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민족이 문화적 공동체인 동시에 정치적 공동체라는 점, 민족 정체성은 문화적 정체성과 정치적 정체성 둘 다를 포함하는 것이라는 점은 민족과 에스닉 집단 (ethnic group)을 구분해주는 핵심이다. 1908년 Friedrich Meinecke는 수동적인 문화적 공동체로서의 민족(Kulturnation)과 민족적 자결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정치적 공동체로서의 민족(Staatsnation)을 구분하면서 정치적으로는 고대 그리스에 민족은 없었지만, 문화적으로는 그것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점을 제시하였다. 정치적 민족은 없었지만, 문화적 민족은 있었다는 것인데(Smith, 1991: 8-9), 이것을 ‘에스닉 집단과 민족’이라는 구도를 통하여 보면, 고대 그리스에는 민족은 없었지만 에스닉 집단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족이라는 관념에는 아무리 약한 것일지라도 정치적 공동체(political community)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며, 정치적 공동체는 모든 성원들이 공동의 정치 제도들 및 단일의 권리와 의무 체계의 적용을 받고 있거나 그런 상태를 지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에는 도시 국가들 모두에, 그리고 개별 도시 국가들의 성원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정체 제도들과 단일의 권리-의무 체계 또는 그러한 제도와 체계를 성취하고자 하는 명시적 운동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민족은 성원들 간에 문화적 통일성이 존재하고, 그 성원들 모두가 잠재적 또는 현재적으로 동일한 법률과 제도의 적용을 받는다는 두 가지 조건 모두가 충족되지 않는 한 존재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에스닉 공동체는 동일한 혈통을 가지고 있고, 언어나 종교 같은 공유된 문화적 특징들에 기초한 독자적인 집합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집단이며, 그것과 민족과의 차이는 민족이 정치적 자율성(political autonomy) 또는 정치적 독립이라는 함의를 더 강하게 갖는다’(Dyke, 1977: 344)는 지적은, 혈통의 공유에 대한 지나친 강조를 조심하기만 한다면, 에스닉 집단과 민족 간의 차이를 간명하게 잘 표현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3. 에스닉 핵심, 혈통과 운명의 사회화, 그리고 민족

한 국가 내의 다양한 집단들간의 독자성과 통일성을 설명하기 위해 ‘에스닉 집단과 민족’이라는 개념 쌍이 채택된다는 것, 그리고 이 경우 에스닉 집단은 문화적 단위로 정의되고 민족은 국가 주권을 전제로 한 정치적 단위이자 문화적 단위로 정의된다는 것은 에스닉 집단과 민족간의 관계를 함축하고 있다. 미리 핵심만을 먼저 제시하자면, 그것은 민족의 형성에는 에스닉적 요소들이 필요하지만, 민족은 에스니시티를 넘어서는 실체라는 것이 될 수 있다.


에스닉 집단과 민족간의 관계에 관한 체계적 설명은 Smith에게서 발견되는데, 그에 따르면 민족은 근대적 산물인 것이 틀림없지만, 동시에 그것은 근대 이전부터의 에스닉 공동체에도 기반하고 있다(Smith, 1991: 71-72). 전근대적인 요소로서의 에스닉적 요소들, 근대적 요소로서의 민족‘국가’, 또 다른 근대적 요소로서 18세기 말 등장한 민족주의, 이들 삼자간의 결합으로 민족이 형성되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렇듯 에스닉 집단의 요소들을 민족 구성 과정에 개입하는 핵심적 변인들 중 하나로 설정하는 Smith는 전


근대적인 에스닉적 유대와 근대적 민족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유념해야 할 점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Smith, 1996: 447): 1) 민족과 민족주의는 근대적인 것들이다. 2) 에스닉 집단(ethnie)은 역사상 언제나 존재해 왔고, 많은 에스닉 집단들은 오래 동안 유지되어 왔다. 3) 많은 민족들은 기존의 에스닉 집단들을 기초로 하여 형성되었으며, 민족은 아직도 에스닉적-혈통적 특징들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4) 지배적인 에스닉 기초를 결여한 민족 지망생들은 민족 의식(national consciousness)과 민족적 통합을 창출하는데 상당한 문제를 갖는다. 그리고, 전근대적인 에스닉적 유대와 근대적인 민족주의의 관계는 근대적인 한 국가의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이런 유의 사항들은 우리에게 에스닉 집단은 민족처럼 영토나 국가의 소유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정한 어떤 역사적 시기에 국한됨 없이 언제나 존재해온, 지속성을 갖는 문화적 공동체라는 점을 알려준다. 또한, 대개의 경우 민족 형성의 기초로 작용하는 에스닉 집단들은 하나가 아닌 다수이며 , 다수의 에스닉 집단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구성해내는 과정에서는 여러 에스닉 집단들 사이에 중심성과 통합성을 제공해줄 수 있는 지배적인 어떤 에스닉 집단(들)이 존재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도 알려준다. 지배적인 에스닉 집단의 존재 없이는 다수의 에스닉 집단들 사이에 문화적, 정치적 통일성과 일관성이 유지되기 힘들며, 그렇게 되면 민족의 형성이 어려워진다는 것인데, 이 지배적 에스닉 집단을 일컫는 용어는 ‘에스닉 핵심’(ethnic core)이다. 에스닉 핵심은 ‘그 안에 다수의 에스닉 집단들이 존재하는 어떤 한 국가의 중핵(kernel)과 기초(base)를 형성하는, 상당히 결속력 있는, 자기 집단의 차별성을 자각하고 있는 에스닉 공동체’로 정의될 수 있다 (Smith, 1991: 38-39).


에스닉 핵심은 한 민족의 특징과 그 민족의 경계를 규정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 이유는 국가가 특정한 어떤 에스닉 핵심의 기초 위에서 다양한 인적, 문화적 접합을 통해 민족을 구성해내기 때문이다. 현재 높은 동질성 수준을 보이는 민족도 처음에는 어떤 에스닉 핵심을 진원지로 삼은 확산적 민족 형성의 과정을 거쳐 동질성에 도달한 것이며(Smith, 1991: 39), 확산적 민족 형성 과정을 주도한 것은 그 에스닉 핵심에 의하여 지배되는 국가이다 .


에스닉 핵심에 기초하여 민족이 형성되는 과정에 개입되는 요소들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에스닉 집단과 민족의 특징들을 비교하여 보면 , 이 둘간에는 상당한 유사점들과 차이점들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우선, 양자간에는 이름을 갖는다는 점, 공동의 기원이나 혈통에 대한 믿음신화기억 같은 것들이 성원들간에 공유된다는 점, 특정한 어떤 영토에 대한 유대를 갖는다는 점, 공동의 문화를 갖는다는 점, 성원들간에 연대성이 존재한다는 점 같은 공통점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일견 유사해보이더라도, 양자간에는 다음과 같은 결정적 차이들이 존재한다: 1) 에스닉 집단이 어떤 영토에 대한 유대를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집단의 성원들이 반드시 그 영토에 거주하는 것은 아니다. 에스닉 집단의 영토에 대한 유대는 실제 소유 여부나 거주 여부와 관계없는 신화적, 주관적 성격의 것이다. 반면, 민족은 영토를 실제로 소유하며, 대부분의 민족 성원들이 그 영토에 거주한다. 2) 에스닉 집단은 공동의 문화를 갖지만, 그것이 어떤 프로젝트에 의해 대중화되는 것은 아니다. 즉, 에스닉 집단은 모든 성원들에 의해 공유되는 대중적 문화를 구성하기 위한 제도나 프로그램을 갖지 않는다. 반면, 민족은 표준화된 대중적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후속 세대들을 사회화시켜 그들을 민족의 일원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대중 교육 체계나 미디어 체계 같은 제도들과 프로그램들을 갖는다. 3) 민족과 달리 에스닉 집단은 공동의 노동 분업 또는 경제적 통일성을 갖지 않는다. 4) 에스닉 공동체는 모든 성원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공동의 법률 체계를 갖지 않는다(Smith, 1991: 40-42).


이러한 차이점들이 존재하므로, 에스닉 집단의 민족으로의 전환, 정확하게는 에스닉 핵심을 중심으로 한 에스닉 집단들의 민족으로의 통합에는 다음과 같은 과정들이 개입된다: 1) 에스닉 집단들을 조국 땅, 즉 확고히 규정된 영토 안에 위치시킨다; 2) 국가의 핵심 구성원들만이 아닌 피지배 일반에게까지 민족적 가치, 기억, 신화를 내면화시킨다; 3) 영토에 기반한 공동체가 된 이후에는, 영토 안에서 경제적 통일성(economic unity)이 구축된다; 4) 시민적, 정치적, 사회적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성원들을 법적 시민으로 만든다; 5) 이 모든 과정들의 결과로서 수동적인 문화적 공동체로서의 에스닉 집단들을 적극적인 정치적 주장의 공동체인 민족으로 이행시킨다(Smith, 1991: 64-65).


명확히 규정된 영토 획득, 영토 내의 모든 개인들에 대한 문화적 통일성 부여, 영토 내의 모든 개인들에 대한 시민권(시민적 권리, 정치적 권리, 사회적 권리) 부여, 영토 내에서 단일 경제 단위 구축이라는 변화는 모두 국가 안에서 그리고 국가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들이다. 서로 명백히 구획되는 영토의 획득과 그 영토 안에서의 단일 경제 단위 구축은 17세기 중반 이후 발전한 절대주의 주권 국가의 핵심적 특징이다. 다만, 그 국가 내의 모든 개인들에 대한 문화적 통일성과 시민권 부여는 절대주의 국가 시대까지는 아직 성취될 수 없는 일들이었는데, 그 이유는 절대주의 국가는 성원들에게 문화적 통일성과 시민권을 제공해줄 수 있는 의지와 수단인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결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적 통일성과 시민권은 절대주의 국가 이후의 발전들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었으며, 그 발전들이란 민족주의적 혁명(또는 운동)과 민주주의적 혁명(또는 운동)을 의미한다. 일단, 혁명이 성공한 뒤 또는 지속적 운동을 통해 민족주의와 민주주의가 상당한 발전을 이룩한 상태가 되면, 국가-민족주의-민주주의가 결합하면서 문화적 통일성과 시민권이 성원들에게 부여되고, 그러면 민족이 탄생하게 된다. 국가가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수단들을 이용하여 민족을 구성해내는데, 그 국가의 중심에는 에스닉 핵심이 자리 잡고 있으며, 국가는, 특히 문화적 측면에서는, 민족 구성에 필요한 재료들을 이 에스닉 핵심으로부터 구한다.


Anderson의 레토릭 대로 민족은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y)이며 근대적 구성물이다. 하지만, 민족이 전근대적 뿌리를 갖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민족 구성원들은 자기 민족 구성원들에게서만 발견되는 공동의 민족 기원에 대한 공유된 믿음, 공동의 역사적 기억, 독특한 문화적 표식(marker), 차이 의식(sense of difference) 같은 요소들을 공유하는데, 이 모든 것들은 근대 이전부터 존재해오던 에스닉 집단, 그 중에서도 특정한 어떤 에스닉 핵심의 특징들이 민족 구성 과정에서 국가에 의해 민족 구성원들에게 사회화된 것들이다. ‘민족은 근대적이지만, 그 뿌리는 깊은 것이다’(Smith, 1991: 69-70). Anderson이 제시한, 민족 관련 연구자들이 직면하게 되는 세 가지 역설들 중 첫 번째 역설, 즉 민족이 역사적 영토, 공동의 신화와 역사적 기억 같은 전통성과 문화의 대중화, 공동의 법률적 권리와 의무, 공동의 경제 같은 근대성을 동시에 갖게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


언어학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민족(nation)이라는 단어의 일차적 의미는 출신 또는 혈통이다(홉스봄, 1994: 31). 민족(nation)은 라틴어 nãtiõ에서 나온 것이며, 그 뜻은 “태어남”이다. 태어남을 공유하는 사람들, 같은 혈통을 갖는 사람들이 민족인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민족은 실제로 같은 혈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렇다는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합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그 공유된 혈통이라는 믿음은 원래는 민족의 것이 아니라 특정한 어떤 에스닉 핵심의 것이었고, 그것이 민족 형성 과정에서 다른 비지배적 에스닉 집단들에 속한 사람들까지도 포함하여 국가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로 사회화된 것이다. 그리고, 이 혈통의 이미지는 영원한 운명 공동체이자 하나의 가족이라는 민족의 이미지로 확장되었으며, 민족이 정치적, 경제적 틀 뿐 아니라 시공간 틀(time-space framework)로도 기능할 수 있는 이유가, 또 민족이 혼돈 상태에 질서를 부여하고 우주에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Smith, 1991: 78). 민족의 구성에는 근대적 발전들이 개입되어 있지만, 그것은 동시에 근대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에스니시티에도 기초한다는 점에서, 민족은 ‘오래된 새로운 것’이다.

4. 민족 공동체의 구성 동학

민족이라는 공동체는 가장 대표적이고 보편적인 근대적 공동체들 중 하나로서, 그것의 형성 및 발달 과정은 세 가지의 획기적인 역사적 계기들을 거치면서 진행되어 왔다. 첫 번째 계기는 1648년 성립된 ‘웨스트팔리아 체제’(Westphalia System) 혹은 ‘유럽 국가 체제’(European State System)의 등장인데, 이에 따라 등장한 주권 국가의 형성은 ‘민족적 범주 규정’으로 정의될 수 있다. 주권 국가는 범주 규정자로서 범주 규정 프로젝트(국가 형성 프로젝트 state-building project)의 추진자가 된다. 두 번째 역사적 계기는 프랑스 혁명으로 상징되는 부르주아 혁명에 따라 웨스트팔리아적 주권 국가가 민족국가로 변화발전한 것인데, 이것은 ‘민족적 동일시’의 형성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 때, 민족국가는 집단 대표자로서 민족 정체성 프로젝트(민족 형성 프로젝트 nation-building project)의 추진자가 된다. 마지막 계기는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먼저 민족국가가 확립되면서부터 20세기 초까지 계속되었던 민족 정체성에 기반한 국가 형태의 발전 및 국제적 보편화로서, 이것은 ‘민족 정체성 교섭’으로 정의될 수 있다. 민족국가의 발전과 국제적 보편화 과정은 민족국가와 절대주의 국가간의 체제간 전쟁, 시민혁명 및 민족주의 혁명의 국제적 확산, 국제적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한 민족국가 형태의 자발적 도입 같은 다양한 형태의 국가간 상호작용을 통해 진행되었는데, 이것은 다시 말하면 민족 정체성이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한 국가 행위자들간의 상호작용 과정이다. 따라서, 이 과정은 민족 정체성의 교섭 과정이 될 수 있다.

1) 민족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민족 공동체의 형성 과정을 민족적 범주 규정, 민족적 동일시, 민족 정체성 교섭이라는 틀로 이해할 경우, 그것은 민족 형성 과정의 핵심을 민족 정체성의 형성에 두는 것이 된다. 민족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쉽게 생각하자면, 정체성이 어떤 대상에 대한 의미들의 집합이므로, 민족 정체성은 민족에 대한 의미들의 집합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의 방식은 너무 간단해서 분석적 유용성이 낮다. 따라서, 좀 더 분석적이고 전문적인(technical) 정의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같은 집합체 안에서 그리고 하나의 집합체로서 살아간다는, 성원들간의 공유된 인식과 성원들의 자신의 집합체에 대한 공유된 소속감’이라는 집합적 정체성 정의가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민족 정체성도 집합적 정체성이므로, 그것은 ‘같은 민족 안에서 그리고 하나의 민족으로서 살아간다는, 성원들간의 공유된 인식과 성원들의 자신의 민족에 대한 공유된 소속감’으로 정의될 수 있다(정호영, 2001: 68). 민족 정체성은 민족에 대한 의미들의 집합이며, 그 의미들의 집합은 성원들간의 상호적 인식과 성원들의 민족에 대한 소속감의 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대표적이고 보편적인 근대적 집합적 정체성으로서 민족 정체성은, 집합적 정체성이 집합체를 하나의 공동체이자 단일 행위자로 만들어주듯이, 민족국가를 내적으로는 근대의 보편 공동체, 외적으로는 근대의 보편적 단일 행위자로 만들어준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을 담아내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그릇이었다는 점에서는 민족국가는 보편 사회가 된다.

그렇다면, 개인적 수준에서나 사회적 수준에서나 근대적 정체성의 특징이 정체성의 다중성인데, 정체성의 다중성과 민족 정체성의 보편성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단적으로 말한다면, 근대적 정체성 구조는 민족 정체성에 의해 지배되는 다중 정체성 구조라고 특징지워질 수 있다.


전근대의 단순한 정체성 구조는 근대에 들어오면서 복잡한 다중 정체성 구조로 변화되었다.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정체성은 인간의 성찰적 능력을 통해 이해되고 내면화된 사회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전근대 시대에는 사회관계가 미분화되어 있었고, 그 관계들을 성찰적으로 이해하고 내면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개인들의 인지적 능력과 도덕적 능력이 낮았기 때문에, 정체성 구조가 간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와서는 사회관계의 복잡성과 공간적 범위가 대단히 증대되고, 그 분화되고 확장된 사회관계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개인들의 도덕적, 인지적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기 때문에, 근대적 정체성 구조의 기본 특징이 다중 정체성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근대라는 조건 아래서 여러 정체성들이 다중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작위적으로 산만하게 분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하나의 공동체이자 단일 행위자, 그리고 보편적 형태의 ‘사회’로서 민족국가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중적 정체성들의 각 구성 요소들이 상호 충돌하거나 전체 정체성 구조에 불안정을 야기하는 분열적 원인들로 작용하지 않도록 정체성들간에 통일성과 일관성을 부여해주는 중심적 정체성이 있게 마련인데, 그것이 민족 정체성이다. 근대적 정체성 구조의 특징은 그냥 다중성이 아니라 민족 정체성의 우위성에 의해 지배되는 다중성이다 .


민족 정체성이 갖는 지배적 지위는 무엇보다도 그것의 ‘혈연 공동체’라는 주장이 모든 성원들에게 호소력을 갖기 때문이다. 민족 정체성은 성원들간의 호혜적 인식과 민족에 대한 성원들의 소속감인데, 이 호혜적 인식과 소속감의 핵심 내용은 민족이 유구한 역사를 갖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혈연적 공동체라는 ‘믿음’이다. 세대를 뛰어 넘는 계보학적 연속성(transgenerational genealogical continuity)에 대한 주장이 모든 성원들을 매혹시키기 때문에 민족 정체성의 우위성이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민족들이 ‘과거의 발명’(invention of the past)에 골몰하는 이유도 바로 민족을 유구한 역사를 갖는 혈연적 공동체로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Tamir, 1995: 432, 437).


민족에 대한 혈연적 공동체 주장은 다음과 같은 효과를 낳을 수 있으며, 이런 효과들은 바로 민족이 갖는 힘과 지속성의 원천이기도 하다: 1) 개인적 차원에서는 민족 정체성은 개인적 망각(personal oblivion)이라는 문제를 해결해준다. ‘역사적, 운명적 공동체’와의 동일시는 죽음의 유한성을 극복하고 개인적 영생(personal immortality)을 확보하고, 망각됨으로부터 개인들을 구해내어 집합적 신념을 복원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2) 민족 정체성은 자부심을 제공하고 지위의 역전을 가능하게 한다. 민족 정체성은 개인적으로나 집합적으로나 자부심의 원천이 되며, 이를 통해 지위 역전(status reversal)을 가능하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자부심의 원천이 별로 없는 계층들에게 민족 정체성은 때때로 유일한 자부심의 원천이 되어 주며, 개인들은 민족과의 동일시를 통해 존재적 위엄을 유지할 수 있다. 민족적 수준에서도, 한 민족은 민족 정체성을 통해, 지금은 비록 아니더라도, 세계가 언젠가는 선택받은 민족인 자기 민족과 민족의 신성한 가치를 인식할 것이라는 믿음을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역사의 장구함과 풍부함, 잃어버린 과거의 영광을 발굴하고 그것을 현재에 되살리는 일이 민족 정체성 프로젝트의 중요한 일부가 된다. 3) 민족 정체성은 우애(fraternity)라는 이상을 실현하고 공동체를 형성한다. 민족 정체성은 개인-가족-에스닉 공동체-민족을 관통하는 유대의 흐름이다. 문화적, 정치적 유대를 통하여 성원들 개인에게는 우애감의 요구를 충족시켜주고, 민족에게는 공동체 형성의 수단이 되어준다. 민족 정체성을 통해 민족은 하나의 ‘거대 가족’(super-family)이 된다. 4) 대외적으로는, 민족 정체성이 문화적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 풍부하고 장구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민족은 그렇지 못한 민족에 대해 문화적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지식인들은 보다 많은 공동체 역사를 발견하고, 그것이 진실임을 증명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역사의 진실성은 역사의 풍부함과 다양함보다는 중요하지 않다(Smith, 1991: 160-164; Tamir, 1995: 433-434).


민족 정체성 주장의 수용 측면과 더불어, 민족 정체성 프로젝트의 추진자 측면에서도 이 정체성의 우위성이 설명될 수 있다. 민족 정체성은 국가라는 집단 대표자에 의한 정치적 프로젝트로서 추진되는데, 국가라는 행위자는 자기 영역 안에서 상징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다른 어떤 행위자들보다도 월등히 우월한 지위를 갖는다. 국가는 다른 행위자들에 비해 훨씬 풍부하고 강력한 공식적, 비공식적 상징들과 사회적 의식(ritual)들을 갖는다. 또한, 자기 자신을 성원들에게 경험시킬 수 있는 잘 발달된 제도적 수단들(교육 체계, 방송, 신문, 경찰, 우편 제도 등)을 갖는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국가는 폭력과 권력을 독점한다. 국가가 갖는 이러한 독점적 능력 때문에, 민족국가는 어떤 의미에서는 마피아와 같은 존재(Bloom, 1990: 73)이기도 해서 자신의 영역 내에서는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존재들을 용납하려 하지 않는다. 민족 정체성 프로젝트의 추진자인 국가의 이러한 우월한 지위가 민족 정체성의 우위성의 한 가지 원인이 된다.

2) 민족적 범주 규정: 대외적 경계와 기능적 체계

민족적 범주의 등장으로 규정할 수 있는 역사적 계기가 무엇인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범주의 특징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범주는 공동의 특징을 갖는 개인들로 이루어진 개체군으로서, 범주 규정자에 의해 정치적으로 규정된다. 범주 성원들의 공통점은 범주 규정자에게만 유의미할 뿐, 성원들은 서로의 존재에 대해 그리고 범주의 존재에 대해 무관심하다. 범주를 규정하고 유지시키는 근본은 범주 규정자의 정치적 이해와 능력뿐이다. 2) 범주는 동일시의 외적 틀과 경계를 이룬다. 범주의 경계는 임의적 분포 상태에 있는 개인적 삶들에 대한 최초의 인위적, 정치적, 제도적 구획이다. 3) 범주는 대부분 상당한 정도의 규모와 제도화 정도를 갖는다. 범주는 제도화된 행정 체계를 가지며, 이 행정 체계는 외적으로는 다른 집합체들과의 관계 속에서 범주의 경계를 유지하고, 내적으로는 성원들에 대한 통제를 보장하는 정치적 수단이다. 4) 범주는 동일시 형성의 조건이 된다. 행정 체계를 이용한, 범주 성원들의 삶에 대한 지속적인 체계적, 제도적 개입은 성원들의 생애경험 공유라는 상황을 만들고, 이로 인해 성원들 삶의 유형은 점차 비슷한 모습으로 주조된다. 이렇게 되면, 성원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자신들이 해온 경험의 유사성에 대한 인식을 획득하게 되며, 이 인식은 동일시의 기초가 된다. 5) 성원들로부터의 동조성(conformity)이 약하기 때문에, 범주는 집합체로서의 안정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범주의 유지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강제가 필요한데, 강제의 지속은 성원들 간의 저항적 연대성을 형성시킬 뿐 아니라 집합체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의 증대를 초래한다. 성원들의 저항적 연대성과 비용 증대는 범주의 위기를 향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6) 범주는 자원의 확보를 위해 다른 집합체들과 경쟁한다. 7) 범주는 대내적인 안정성의 기반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범주의 안정성은 대외적 관계의 안정성에 의해서만 추구될 수 있다. 범주의 자원 확보를 위한 경쟁은 때때로 경쟁적 파국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범주는 자신의 안정성을 위해 경쟁적 공존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특징들을 갖는 집합체는 1648년 ‘웨스트팔리아 체제’(Westphalia system)의 수립으로 등장하여 발전하기 시작한 주권 국가(sovereign state)에서 발견된다. ‘웨스트팔리아 체제’ 또는 ‘유럽 국가 체제’는 16세기 초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와 카톨릭 진영으로 나뉘어 끊임없이 갈등해 온 유럽 국가들이 17세기 초부터 다시 두 진영으로 나뉘어 치렀던 ‘30년 전쟁’(the Thirty Years’ War)을 종결하면서 맺은 ‘웨스트팔리아 평화 조약’(the Peace of Westphalia)으로 탄생한 국제 체제이다. 이 조약의 핵심은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종교적 믿음의 차이에 관계없이 각 군주의 배타적인 국내 관할권, 즉 주권(sovereignty)을 상호 인정하는 것이었으므로, 웨스트팔리아 체제는 평등성을 기초로 한 국가들의 국제 체제였다. 그리고, 이 체제로 탄생한 국가가 정치 권력의 대외적 독립성과 대내적 독점성, 그리고 상당한 정도의 제도적기능적 체계를 갖춘 ‘주권’ 국가였다. 민족 정체성 동학이란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 주권 국가는 위에 제시된 범주 규정의 기준들을 모두 만족시키므로 민족적 범주로 규정될 수 있으며, 주권 국가를 탄생시킨 웨스트팔리아 체제의 형성을 민족적 범주 규정으로 정의할 수 있다.

3) 민족적 동일시: 국가의 사회적 기초로서의 민족 정체성

민족적 동일시의 등장으로 정의될 수 있는 역사적 계기가 무엇이었을 지를 찾아보기 위하여 집합적 동일시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범주의 집단으로의 이행이 동일시이다. 이 과정에서는 권력적 행위자로서의 범주 규정자가 권위적 행위자로서의 집단 대표자로 성격 전환을 이루는 것이 핵심이며, 이 전환은 성원들과 범주 규정자 간의 정치적 상호작용 결과에 달려있다. 2) 집합적 동일시는 한 성원이 다른 성원들과 집단 대표자를 자아의 연장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성원들 간의 호혜적 인식과 집단에 대한 소속감인 집합적 정체성이 형성된다. 3) 집합적 동일시는 동일시 주체인 한 성원이 다른 성원들과 집단 대표자라는 두 가지 동일시 대상들을 경험할 수 있을 때 형성된다. 성원들의 집단 대표자에 대한 경험은 직접 이루어진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경험은 집단 대표자에 대한 경험을 통해 매개적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대개의 경우, 집단은 모든 성원들 간의 직접적 관계를 허용할 수 있는 정도보다 큰 규모를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원들 간의 경험과 성원들의 집단 대표자에 대한 경험, 성원들 간의 호혜적 인식 형성과 집단에 대한 소속감 형성은 동시적으로 이루어진다. 4) 집합적 동일시는 성원들이 집단 대표자를 경험하고, 이를 통해 집단 대표자가 자신의 태도와 행위의 기준으로서 적절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이 때, 성원들은 태도와 행위의 기준으로서는 집단 대표자를 직접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집단 대표자는 자신을 표상하는 상징들과 이미지들을 만들어 성원들에게 제공하고, 성원들은 그것을 향유함으로써 집단 대표자를 경험한다. 이렇게 경험되는 상징들과 이미지들이 성원들의 태도와 행위의 양식으로 적절하면, 동일시가 형성된다. 상징적 동일시를 위해, 집단은 다양한 상징들 및 그 상징들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성원들에게 경험시키기 위한 다양한 제도들을 가지고 있다. 상징을 통한 집합적 동일시는 집단에게 대외적으로는 통일성과 유사성을, 대내적으로는 다양성과 다원성을 허용한다. 5) 집합적 동일시는 집단 대표자가 성원들에게 물질적 유익함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물질적 측면에서 성원들은 자원을 할당하는 집단의 행정 체계의 작동을 통하여 집단 대표자를 직접 경험할 수 있다. 그 경험을 유익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관건은 자원의 평등하고 공정한 분배이다. 집합적 동일시에는 자원을 평등하고 공정하게 배분하려는 집단 대표자의 태도와 그 태도를 실현시킬 수 있는 제도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6) 집단의 안정성은 대외적 관계의 안정 뿐 아니라 대내적 관계의 안정, 즉 권력의 대내적 정당화에도 달려 있다. 나아가, 집단들 간의 상호 인정의 기초에는 권력의 대내적 정당성도 포함된다.


이와 같은 내용들을 갖는 역사적 계기는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으로 대표되는 시민혁명과 그 이후의 민족 형성 프로젝트에서 발견된다. 프랑스 혁명은 범주 규정자로서의 국가가 성원들과 범주 규정자 간의 정치적 상호작용을 통하여 어떻게 집단 대표자로서의 국가로 성격 전환되는가를 보여주는 본보기가 된다. 그리고, 혁명 이후 프랑스에서 추진된 민족 형성 프로젝트는 그것이 집단 대표자로서의 민족‘국가’의 정치적 프로젝트라는 점, 그 프로젝트의 핵심은 17세기 중반 절대주의적 주권 국가 성립 이래의 국가에 대한 부정적 경험을 긍정적 경험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라는 점, 부정적 경험의 긍정적 경험으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상징적으로는 민족주의의 발달, 물질적으로는 민주주의의 발달이었고, 이를 통해 결국 민족 정체성이 발달하였다는 점, 민족 정체성은 국가의 대내적 안정성의 기초라는 점 같은 것들을 잘 보여준다.

4) 민족 정체성 교섭: 국가간 상호작용과 국제적 보편화

민족 정체성 교섭의 등장으로 정의될 수 있는 역사적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찾아보기 위하여 집합적 정체성 교섭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동일시가 이루어진 집합체는 단일의 사회적 행위자가 된다. 2) 동일시가 이루어진 집합체는 다른 집합적 행위자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는다. 이 과정이 집합적 정체성 교섭이며, 성공적인 교섭 과정은 정체성을 더욱 공고화시킨다. 3) 정체성 교섭 과정에서 한 집합체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수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정체성 수정은 그 정체성이 명백히 부적절하거나 지속적으로 보상을 제공할 수 없는 것으로 확실히 판명될 경우에만 일어난다. 정체성 고수 경향은 자신의 사회적 생명을 부정하지 않으려는 집합체의 존재론적 속성과 집합적 정체성의 제도화 경향에 따른 구조적 관성 때문이다. 집합적 정체성은 제도화의 잠재력을 갖지만, 일단 제도화되고 나면 그 제도와 조직이 동일시의 장이 되어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끼치는 환경이 된다. 4) 정체성 교섭에서 권력적 우위를 점하는 집합체는 상대적으로 쉽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고, 더 나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다른 집합체들에 부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권력적 열세에 있는 집합체는 자신의 정체성을 다른 집합체들에 부과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도출해내는 것도 쉽지 않다.


역사상, 이와 같은 내용들은 프랑스 혁명 직후부터 유럽 국가들 간의 국제적 상호작용 과정에서 잘 확인된다. 1789년 혁명이 성공한 직후, 프랑스는 이제 민족과 국가가 일치된 단일의 사회적 행위자로 급속히 재탄생되고 있었다. 이렇게 탄생한 민족국가라는 형태의 체제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서는 먼저 일련의 전쟁들을 통하여, 그 이후에는 혁명의 확산 및 국제적 경쟁 같은 다양한 국제적 상호작용을 통하여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어 나갔으며, 이러한 국제적 상호작용은 다시 국가 단위의 민족 정체성을 강화시키는 피드백 효과를 낳았다. 그리고, 민족 정체성을 둘러 싼 이러한 국제적 상호작용과 그를 통한 민족 정체성의 확산은 프랑스라는 패권자(hegemon)를 중심으로 한 유럽 국가들 간의 국제 정치적 과정들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유럽의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기간은, 민족 정체성의 시각에서 해석해보자면, 유럽 국제 체제 안에서 프랑스라는 패권자가 등장하고, 그 패권자의 민족 정체성이라는 정체성 형태가 그것에 대한 부정의 시도들을 물리치고 유럽의 국제적 규범으로 확립되어 간 정체성 교섭의 국면으로 정의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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