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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민해방군 군가는 이렇게 탄생되였다

[인터넷료녕신문] | 발행시간: 2021.08.03일 08:09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우리의 대오 태양을 향하여

조국의 대지를 밟으며

민족의 희망을 짊어지고

우리는 하나의 무적의 힘

……

인민군대의 정신의 상징인 군가, 〈중국인민해방군 군가〉의 전신은 〈팔로군 행진곡〉이다.

1939년, 항일 봉화의 초연 속에서 중국인민항일군정대학의 두 진보 청년인 공목(公木, 원명 장송여)과 정률성은 합작해 모음곡(组歌) 〈팔로군 대합창〉을 창작했다. 〈팔로군 행진곡〉은 바로 8수로 된 모음곡 가운데의 한수이다. 이들은 인민군대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가사에 적어 넣고 곡에 담은 것이였다.

공목의 생전 회억에 따르면 당시는 물자가 더없이 결핍하던 년대라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없고 손풍금마저도 없었다. 그들은 어두운 토굴집에 앉아 미약한 등잔불빛을 빌어가며 온 정신을 몰두해 입으로 흥얼거리는 한편 손으로 박자를 맞추었으며 때론 책상 주위를 바장이기도 했다.

몇달 간의 간고한 창작을 거쳐 이 한수의 격앙되고 유력한 행진곡이 탄생했다. 정률성은 특별히 악보의 첫머리에 “영용한 팔로군에 드림”이란 글자를 큼직하게 써넣었다.



공목



정률성

이해 겨울, 〈팔로군 대합창〉이 정률성의 지휘로 연안 중앙대강당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대성공이였다. 〈팔로군 대합창〉 가운데서 한수의 합창가곡으로서의 〈팔로군 행진곡〉은 강개 격앙되고 인심을 분발시키는 사와 곡의 풍격으로 하여 많은 장병들의 호감을 샀다. 노래는 점차 여러 항일근거지들에서 널리 류전되면서 팔로군이 용감히 적을 무찌르도록 격려했다.

1940년, 《팔로군 군정》 잡지에서 〈팔로군 행진곡〉 악보를 정식 발표했다. 1941년 8월, 〈팔로군 행진곡〉은 모택동, 주은래 등이 후원하는 ‘5.4청년절’ 상금위원회 ‘음악류 갑등상’의 영예를 안았다.

1942년 5월, 공목은 연안문예좌담회에 출석했다. 모택동 등 중앙 지도자들이 회의 참석 대표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면서 공목이 〈팔로군 행진곡〉 작사자임을 알게 된 모택동은 그의 손을 굳게 잡고 말했다. “참 잘 썼습니다. 병사를 쓰고 병사를 노래하고 병사를 연기했는데 참 잘했습니다!”

1945년 항전 승리 후 항일민족전쟁은 인민해방전쟁으로 전변했고 인민군대의 성장 장대를 견증한 이 이름난 행진곡은 1946년에 〈인민해방군 행진곡〉으로 개칭되였으며 당시의 형세와 임무에 근거해 원 가사 중의 “일본침략자”, “항전”, “민중”, “화북의 원야” 등 소수의 가사 구절들을 상응하게 수정했다.

군가는 군대의 위세를 북돋운다. 개명 후의 〈인민해방군 행진곡〉은 여전히 진군의 나팔이였다. 인민해방군은 이 노래를 소리높이 부르며 3대전역을 치르고 이 노래를 소리높이 부르며 백만 대군이 장강을 뛰여넘었으며 이 노래 높이 부르며 장가왕조의 멸망을 선고했으며 이 노래 높이 부르며 중화인민공화국 탄생을 맞아왔다.



1949년 〈인민해방군 행진곡〉은 중화인민공화국 개국대전 연주 종목에 들어 천안문에서 울려퍼졌다. 1951년 중국인민해방군 총정치부는 가사를 통일적으로 수정하고 《부대가곡선집》 제1집에 실었다.

같은 해 2월 1일, 총참모부에서 반포한 〈중국인민해방군 내무 규정(초안)〉에서 이 노래를 〈인민해방군 군가〉로 이름했다. 1953년 5월 1일, 총참모부에서 반포한 두번째 〈중국인민해방군 내무 규정(초안)〉에서 이 노래 제목을 〈인민해방군 행진곡〉으로 고쳤다. 1965년에 〈인민해방군 행진곡〉은 또 〈중국인민해방군 행진곡〉으로 고쳐졌다.



1988년 7월 25일, 중공중앙의 비준을 거치고 중앙군위의 결정을 거쳐 중앙군위 주석 등소평의 서명 명령으로 〈중국인민해방군 행진곡〉을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로 정식 결정했다.



이 노래의 창작자 두분 모두가 이미 이 세상을 떠나고 없다. 공목의 묘비에는 그의 생졸 년 월이 없고 다만 이 노래의 가사만 새겨져 있다…

/학습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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