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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얼친초원에서 《모주석》의 접견을 받다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3.09.04일 14:02

커얼친초원

지난 8월 20일, 천진시 금석건생물공정유한회사에서 조직한 내몽골유람단의 60여명은 내몽골자치구 통료시를 향해 아침 6시에 연길을 출발하여 저리무멍 허줘허우치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8시 30분이였다. 우리 일행은 큼직한 몽골포에서 처음으로 맛보는 여러가지 볶음채와 통양구이를 먹었다. 처음 먹는데다 각을 뜯어 손으로 쥐고 고기를 뜯어먹으니 그 맛이 일품이요, 술안주로는 제격이였다.

대청구의 몽골포

8월 21일, 첫 유람코스는 국가급자연보호구인 대청구(大青沟)원시삼림풍경구였다. 입구에 들어서자 같이 기념사진을 남길 각양각색의 명물들이 많았다. 층계를 따라 수십메터를 올라가니 놀랍게도 검푸른 련산협곡이 한눈에 안겨왔다.

몽골족 가이드(장계룡)의 소개에 의하면 몽골경내에서 대청구라는 한어명사를 쓰게 된데는 유래가 있었다. 청나라라 초기 4개 조대의 정권을 공고히 하는데 큰 공로를 세운, 청대의 국모로 거듭난 효장문황후의 출생지가 바로 커얼친(科儿沁: 활쏘는 궁전수라는 뜻)부락이여서 강희황제께서 친히 이곳에 와서 기제행사를 벌이고 조모에 대한 숭상과 존중을 표하군 하였다. 어느 하루, 사냥도중 망망한 림해, 유유한 협곡을 보고 경탄한 나머지 수행인원들과 여기가 어디냐고 물으니 그저 《중호러》(몽골어로 수림이라는 뜻)라고 하면서 이름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강희황제는 수많은 협곡을 보고는 매우 감격하여 이런 보배땅이 이름이 없어야 되겠느냐며 《대청구》라고 하였는데 그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어로 대청구라고 불리게 되였다고 한다.

수백개의 콩크리트 층계를 내려 유람로선대로 걷노라니 《가다매림(민족영웅)오솔길》, 작은 아치다리, 널판자포장길 《까마귀숲》, 《봄이 뭠추는 곳》, 《좋은 운수 받는 사당》 등이 있었고 협곡, 시내물가, 구릉, 벼랑, 등을 따라 숲속 오솔길을 걸으면서 구경하노라니 대부분이 이름 모를 활엽수들이였다. 가장 실한 나무라야 한아름 좌우되였는데 간혹 가둑나무도 있었다. 태반이 사막과 초원으로 된 몽골에서는 얼마나 귀중한 유람명소로 거듭날것인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다 돌아보고나니 삼림 피복률이 80%를 넘고 수없이 많은 명산과 력사와 전설이 숨쉬는 명소, 울울창창한 삼림, 계곡을 가지고있는 우리 연변이 얼마나 아름다운 고장인가를 새삼스럽게 느낄수가 있었고 막 자랑하고 싶었다.

우리는 유람구 입구를 나와 약 300메터 지점에 있는 민속유람 체험장소에서 난생 처음으로 활도 쏘아보고 약 10여메터 높이에서 안전띠를 띠고 삭도로 200여메터 《날아가는》 아슬아슬하고도 신선스러운 놀이도 체험하였다. 시간제한이 없었으면 한번 더 타고픈 마음이였다. 우리 60여명 유람객들이 기관차모양의 차에 앉아서 소나무와 이깔나무가 무성한 인공림지속의 포장길을 따라 30여분가량 달려서 당도한곳은 표류체험장소였다.

안전시설이 구전하고 비록 급류나 소용돌이는 없지만 구불구불 에돌아 유유히 흐르는 물에서도 제대로 《노》를 젖지 못하여 서로 부딪치기도 하고 량켠에 총총히 박아놓은 통나무바자에도 부딛치면서 수림이 무성하고 록음이 짙은 협곡에서의 표류는 우리를 동년으로 되돌아가게 하였다. 나어린 소년, 청년유람객들이 《물권총》, 《물보총》으로 서로 《사격》하면서 쫒기고 추격하고 반격하는 놀이가 참으로 볼만하였다. 연길 하룡촌 해란강에도 표류터가 있다고는 하지만 표류가 이렇게 모험성도 있고 재미있고 좋은 줄을 처음 알았다.

타민차깐사막

오후의 유람코스는 《타민차깐》(塔敏查干)사막 유람풍경구였다. 평균 해발이 800여메터이고 연선길이가 130여킬로메터, 평균넓이 10여킬로메터인 타민차깐사막은 극히 메말라서 한포기의 풀도 자라지 못하고 기복을 이룬 일망무제한 눈부신 사막이였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8백리 넓은 바다》, 혹은 《지옥의 모래땅》, 《죽음의 모래땅》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유람자원 각도에서 보면 보기 드문 자연경관이고 관광객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기이한 경관들은 수많은 관광객들이 유혹하고있다. 타민차깐사막은 땅이 넓고 사람은 희소하며 구릉기복이 비교적 커서 사막탐험과 사막생존체험에 적합하여 동북지구에서 유일한 사막관광경구로 되고있다.

가이드의 해설에 의하면 이 사막은 2005년 5월부터 투자하고 건설하기 시작하였는데 오늘에 이르러서는 일정한 규모를 갖춘 유람지로 되였다고 하였다. 말타고 사막탐험, 락타타고 사막유람, 사막미끄럼놀이, 네바퀴오토바이(혹은 자동차)타고 사막달리기, 사막에서 밤새우기, 사막려인숙, 사막축구, 사막배구 등 전에 보지도 못했던 놀거리가 수두룩 했다. 우리 일행중에서도 30원씩 내고 사막에서 차나 오토바이를 몰고 모래바람을 흩날리며 달리거나 10원 내고 정마군의 안내로 사막정상에 다녀오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 늙은 축들은 발목까지 빠지는 사막을 힘겹게 수백메터 걸는 체험을 하였다. 나는 아예 맨발바람으로 걸었는데 사막을 밟으니 겉은 뜨거웠으나 발이 빠져 들어가면 모래속은 조금 차거울 정도로 랭기가 있어서 신기했다.

이 사막유람구와 대청구유람구의 거리는 18킬로메터여서 교통이 편리하였다. AAAA급 유람풍경구인 대청구의 록음이 짙은 아름다운 풍경과 망망하고도 넓디넓은 장관을 이룬 타민차깐사막은 영원히 잊을수 없는 추억으로 남을것이다.

8월 22일의 첫 유람코스로는 달칸친왕부(达尔罕亲王府)였다. 통료시와 48킬로메터 떨어진 커얼친좌익중기 화투구라진효장원 유람구내의 청대국모인 효장문황후의 출생지에다 4백년 력사를 갖고있는, 중국에서 가장 큰 친왕부를 복구한것이였다. 왕부 총면적은 10만평방메터이고 왕부부문, 의문, 인무처, 은안전, 침전, 사당, 공주부, 서원서숙 등 90여채의 청대 목조건축물외에도 왕부안에는 효장문황후박물관, 가다매린기념관, 달칸친왕부력사전람관, 커얼친몽골말 문화박물관, 커얼친민속박물관 등이 있었는데 이곳 역시 국가 AAAA급유람경구였다. 우리 유람객들은 근 3시간동안 보고듣고 하였으나 전부 돌아보지 못하고 《말타고 꽃구경》식으로 구경하였다. 바다처럼 넓은 커얼친초원에 이렇게 웅장하고도 고전적인 건축물이 일떠서고 하나의 유람명소로 되다니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이번 유람은 몽골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 및 몽골민족과 민속을 새롭게 학습하고 인식하는 계기로도 되였다.

8월 22일 오후에는 교통이 사통팔달한 통료시에서 서북쪽으로 102킬로메터, 304국도 서쪽 7킬로메터 부근에 있는 아름다운 커얼친초원 중심지대의 주르허(珠日河 몽골어로 심장이란 뜻)초원 유람구를 갔는데 이곳은 국가 AAA급 유람풍경구였다. 내몽골에서 가장 좋은 10개 유람구의 하나로 선정되여 1994년에 국가관광국에서 정식 비준하고 투자하여 건설한 유럄풍경구였다.

이 유람구 총면적은 6만여무, 총 건축면적은 3천 250평방메터로서 민족특색이 다분하고 마치 나래펼친 초원의 매 모양으로 설계되였다. 가운데는 5개의 전당식 영빈포가 있고 동서 량측엔 호화연회청이 있었는데 300명이 식사할수 있고 가무오락성, 실내 활쏘기 경기장도 있었다. 도문에서 온 한 관광객은 행운스럽게 4마리 닭을 명중하여 닭고기도 맛보았다. 영빈포 우익《날개》에는 18채의 호화형고정포, 좌익《날개》에는 21채의 전통식 몽골포가 있어서 가히 300여명 유람객들이 주숙할수 있고 몽골포내에는 전화, 텔레비, 위생시설들이 구전하였다.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저녁식사를 하였는데 양뼈갈비찜, 양순대, 양탕, 양채갑, 양간을 비롯하여 10여가지 볶음채에 유명한 몽골술까지 어울리다보니 난생처음으로 특이한 음복을 하였다. 이 건축물 바로 동쪽 2백메터 되는곳에는 둘레길이가 3천메터되는 기마경기장이 있었다. 통료시에서 한해에 한번씩 열리는 《8.18》기마경기를 바로 이곳에서 거행하는데 이미 15회 거행되였고 활동기간 유람객은 10여만인차에 달한다고 한다.

8.18저리무(哲里木)기마절은 커얼친초원의 성회이고 커얼친초원의 유명한 문화브랜드이며 전자치구 나아가 전국에 이름있는 관광브랜드라고 한다. 기마절 역시 나다무(那达慕는 몽골어로 유람, 련환이란 뜻임.)의 일종 형식이다. 몽골족 남자들이 숭상하는 3가지 재간(말타기, 씨름, 활쏘기)중에서도 말타기가 첫자리인데 이미 700여년의 력사를 가지고있다. 몇일전에 진행된 2013년 저리무(8.18)기마절을 관람하지 못하여 얼마나 유감스러웠는지 모른다.

주르허초원유람구

나는 아쉬운 나머지 기마경기장에 이르러 아직도 《〈택강의약컵〉2013저리무(8.18)기마절》이란 현수막이 걸려있는 텅 빈 주석대에 올라갔다. 안쪽 코스에 철란간을 두른, 경사도가 없이 아츨한 빈 경기장을 바라보노라니 텔레비죤에서나 볼수 있는 기마경기 장면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저 멀리 가없이 넓고도 아득히 뻗어나간 초원, 초원과 하늘이 맞붙은 곳을 바라보노라니 가슴이 확 트이면서 저절로 《저 푸른 초원위에 …》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낯을 돌려 오른켠을 바라보노라니 수십개도 훨씬 넘는 풍력발전기프로펠이 쉬임없이 돌아가면서 소임을 다하고있었는데 혼자 보기에는 매우 아쉬운 한폭의 아름다운 수채화였다.

그 옜날, 《집》을 수레에 싣고다니면서 살던 유목민족들은 오늘에는 정착생활을 하고 이 보귀한 풀들이 유구한 력사와 용감무쌍하고 지혜로운 몽골족인민들에게 육류와 젖을 공급하고 목민집과 양떼를 날려보내면서 대재난을 불러오던 칼바람도 오늘은 초원에 광명과 행복을 선물하고 있으니 실로 벽해상전이 아닐수 없었다!

옹근 오후동안 여기저기 돌아보고 설명을 듣고 기록도하고 사진도 찍었다. 저녁을 먹으니 어느덧 초원엔 어둠이 깃들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행운좋게도 그날 저녁에는 칭기스칸광장에서 제4차 예술절행사가 벌어졌다. 광장복판에 있는 한메터 높이의 화토불대에서 화토불이 활활 타오르고 무대에서는 국내 유명가수들의 정채로운 노래와 이색적인 마두금,몽골춤, 현대춤이 엇갈아 공연되고 곡에 어울려 무대 아래에서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여온 500여명 유람객들이 흥겨운 춤판을 벌리는데 무대위와 무대아래는 온통 환락의 큰 도가니로 되었다.

특히 영원히 기억에 남는것은 우리 합창단의 공연이였다. 아름다운 한복차림을 한 조선족녀인들이 앞줄에 서고 다음줄에 한족녀성들, 맨뒤에 조한족 남성들이 서서 두가지 언어로 《연변인민 모주석을 열애하네》를 부르는 합창이였다. 어찌나 목청껏 잘 부르는지 커얼친초원에 울려펴지고 주최즉 지도자들과 천진, 심양의 금석건회사의 책임자들을 포함한 전체 유람객들의 우렁찬 박수갈채와 환호를 받았다. 바로 이때 위대한 령수 모주석의 배우가 현장에 나타났다. 정녕 연기를 위한 가짜 모주석이였지만 그 용모 행동거지 말투까지도 곡 모주석을 닮은데서 그 순간에는 누구나 진짜 모주석으로 착각할수 있은것은 당연한 일로 보아야 할것이다.

《모주석》께서 합창단과 기념사진을 찍을 때 몇명 조선족녀인들과 친절하게 악수한 다음 한복차림을 한 나와 악수하면서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조선족은 위대한 민족이고 연변은 살기 좋은 고장입니다.》라고 호남말투로 칭찬을 했을 때 어쩐지 목이 꽉 메여 그 크고도 부드러운 손을 꼭 쥐고 흔들면서 《쎄세! 쎄세!!》하고 감사를 드렸다. 모두들 이 시각은 진짜 모주석의 접견을 받고 기념사진을 남기는 기분이여서 무등 기뻤고 행복감에 푹 젖었다.

8월 23일 오전에는 내몽골 동부에 위치한, 사방이 탁 트인 드넓은 곳이란 이름을 지닌 통료시내를 유람차를 타고 돌아보았는데 아주 큰 도시였으며 모든 간판의 앞 혹은 위에는 몽골문자가 씌여져 있고 다음 한어문자가 씌여진것만 보아도 내몽골자치구임이 확연했다. 우리 려행단은 차를 타고 도시구경을 하고 전문 유람객을 대상한 몽골족 특색이 짙은 상가에 들려 기념품들을 샀다. 절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잘 포장된 말린 소고기와 가지각색 술류를 샀다.

유람을 떠나기전에 몽골유람을 간다고 하니 조금은 서운하였는데 정작 제눈으로 초원과 사막풍경 및 민속과 문물들을 보고 체험하고 보니 내 생애에서 두번 다시없을 절호의 기회였음을 실감하게 되였다. 게다가 잠자리는 3성급호텔이고 먹거리, 볼거리, 놀거리가 많아 3일간의 체류기간이 너무 짧아보였다.

리진욱특약기자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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