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지) 리근
사람은 누구에게나 이름이 있기 마련이다. 애명이나 필명까지 히면 어떤 사람은 이름을 두세개씩 가지기도 한다. 인간은 무엇이나 보편화가 되면 소중하게 여기지 않지만 이름만은 그렇지 않다. 하기에 어떤 사람들은 자손의 이름을 뜻깊게 지으려고 학식이 높은 분을 모시기도 하고 전문 이름짓는 사람을 찾아가 돈을 써가며 이름을 짓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자손들의 이름을 뜻깊게 지어 복을 받고 출세하기를 기대한다.
나의 이름은 할아버지가 리근이라 지었다. 성 오얏 리(李)자 밑에 첫자는 리할 리(利)자, 다음자는 뿌리 근(根)자니 아마 오얏나무의 뿌리가 왕성하라는 뜻인듯싶다. 다시말해 모든 일을 성취할수 있는 근원부터 든든하라는것이리라. 그런데 이 이름이 한어로 발음하면 괜찮지만 조선어로 말하면 리자가 거듭되여 귀에 다소 거슬린다. 그런데 이 이름도 좋아서인지 내가 소학교에 입학하니 나와 동성동명인 학생이 있었다. 한반에 같은 이름이 둘이면 불편하기에 선생님은 우리를 보고 누구든 이름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나는 선생님을 찾아가 “내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준건데 우리 할아버진 걔 할아버지보다 학식이 높기에 나의 이름은 고칠수 없어요”라고 했다. 결과 선생님은 그 학생의 이름을 고쳐짓게 하였다. 이렇게 나의 이름은 잔잔한 파문속에서 자리를 굳혔다.
사회에 나온 나는 글을 쓰면서 성명을 그대로 달지 않고 리근이란 필명을 달았다. 그런데 여기에 생각밖의 에피소드가 주렁질줄이야. 1995년 내가 흑룡강신문사 시사측험 시상식에 참가하고 보니 전에 모 부대에서 사령원으로 사업하셨다는 름름한 로인님 한분이 계셨다. 주현남부총편은 우리와 한담을 하다 그 분을 보고 “이 자리엔 선생님보다 직위가 더 높은 한분이 계십니다. 이분의 이름은 리근이니 대통령이 아닙니까?”라며 나를 돌아보았다. 미국의 레이건(한어로 리근)대통령을 비유해 한 말이였다. 물론 이는 롱담이였지만 그후부터 많은 분들이 말등백성인 나를 '대통령'이라 불렀다. 참 흥미로운 일인데 근 20년이 지난 오늘도 이 여운이 나를 감싸고 돈다.
10여년전의 일이다. 우리 상지시의 문학애호가들이 해림시의 문인들을 찾아갔는데 낯모를 한분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신문지상에서 나의 이름을 종종 보았는데 자기 이름도 리근이라며 퍽 반가워 하였다. 기실 그는 나의 본명이 리리근이란걸 모르고 있었던것이다. 나는 반가운김에 그와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도 한장 찰깍 해 영원한 추억으로 남기였다.
그런데 이 ‘존대’를 받는 리근이란 필명으로 골탕을 먹은적도 있었다. 나는 원고를 보낼 때마다 리근이란 필명을 달군 했기에 매체들에서는 나에게 원고료를 보낼 때면 나의 이름을 리근이라 써 원고료를 찾을수 없었다. 하여 우전국의 령도를 찾고 아는 사람을 내세우는 등 쓰거운 겨자를 씹어야 했다.
생각지 않던 일이 또 튀여나왔다. 20여년전의 일이다. 향파출소에서 새로 내주는 호구책을 보니 나의 성명이 리립근(李立根)으로 둔갑했다. 이 두 글자는 한어발음이 꼭 같아서일것이다. 하여 파출소를 찾아갈가 하다가 지천명 고개를 넘어선 내가 리리근이면 어떻고 리립근이면 어떤가 하는 생각에 물앉고말았다. 이리하여 '대통령'이란 성스럽던 대명사가 없어지고말았다. 만약 이 일을 구천에 계시는 나의 할아버지가 아신다면 얼마나 노여워하고 서운해 하셨겠는가?
사람들의 이름은 젖꼭지를 문때부터 죽어 한줌의 재가 되기전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호상 부르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자료에 이름을 적어넣고 얼마나 많은 곳에 사인을 하는가? 은행에서 돈을 찾을 때도, 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때도, 고인을 화장할 때도, 지어 사형을 당하는 죄인도 서명을 해야 한다. 그런가하면 이름 한자를 잘못써 몇십만원을 떼우기도 하고 이름 한자가 틀려 엉뚱하게 법정의 피고석에 앉은 일도 있다.
이러니 이름은 인간의 낯이고 인생의 교향악이고 지어 생명의 대리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이러고보니 사람들이 자기의 이름을 소중히 여기며 여기에 만복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리유도 알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