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던 지난 27일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직장 근처에서 투신자살한 20대 여성 소방관이 남자 상사로부터 수개월간 술자리 동석 요구에 시달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31일 조선일보에 따르면 숨진 A(27)씨 빈소를 찾은 대전의 한 소방서 동료들은 "A씨가 지난 2월부터 같은 소방서에 근무하는 상사로부터 수십 차례 술자리 요구를 받았다"며 "최근 술자리 참석을 거부하자 '시말서'를 쓰라고 해 몹시 괴로워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40대인 상사는 3년차인 A씨와 같은 소방서에 있지만 부서는 다르다.
A씨는 지난 27일 오후 6시 40분경 소방서 근처 고층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계단에 A씨의 가방과 신발이 남아 있었지만,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유족은 빈소를 찾은 동료에게 직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한 동료는 "간부급 상사가 3개월간 남자 소방관들과 술자리를 함께 하자고 요구했고, 성격이 온순한 A씨는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려 다니며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또 "해당 상사는 A씨를 사무실에서 마주치면 손목을 잡고 옆자리에 앉힌 뒤 '술자리 하자'고 말하기도 했고, '너희 월급이 왜 많은 줄 아느냐. 선배에 대한 접대비로 쓰라고 많이 받는 것이다'고 말해 A씨가 피해 다녔다"고 했다.
또 다른 소방관도 "후배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몇 번씩 '싫으면 싫다고 딱 부러지게 말해라. 왜 자꾸 끌려 다니느냐'고 말했다. (이런 사실을 증언하면) 불이익이 올지 모르지만 그래야 후배를 편히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그 상사는 약속 시간까지 정해주면서 술자리를 만들라고 했고, 이를 거부하자 시말서를 쓰라고 했다. 다른 직원들도 이 광경을 봤지만, 대부분 같은 남성 직원이고 상사 직급이 높아 아무도 나서서 말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A씨 사망 사건을 조사 중인 경찰은 "동료들 사이에 'A씨가 상사 때문에 힘들어했다'는 얘기가 돌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A씨 상사는 "부하 여성과 자살한 A씨가 가까워 친하게 지냈을 뿐"이라며 "3월 이전에 한 번 술을 마신 적이 있고, 술자리 동석 강요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이와 관련 소방서 관계자는 "A씨는 작년 전 직원 워크숍에서 사회를 보고 노래를 부를 정도로 활발했다"며 "홀어머니가 뇌졸중을 앓아 가정 문제로 우울해했다는 말도 있다"고 전했다.
A씨의 유족들은 "일흔 가까운 홀어머니를 모시고 어려운 형편에서 자랐지만, 집에서는 단 한 번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며 "아르바이트로 학원비를 벌며 혼자 힘으로 소방관 꿈을 이뤘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던 터라 자살을 예상치 못했다"고 말했다.
김현주 기자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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