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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MBA 과정 밟고 있는… ‘첫 우주인’ 이소연씨

[기타] | 발행시간: 2013.06.10일 03:06

이소연씨는“나로 인해 과학자가 되기를 마음먹었던 아이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 시애틀=최보식 기자

“내겐 앞으로 살 날이 더 많아… 과거의 ‘유행곡’을 계속 우려먹을 순 없어”

당시 지상에 내려와 빈혈 증세 느껴 피가 아래로 안 내려가도록 허벅지를 코르셋으로 묶고 지내

“고산씨는 유일하게 의지했던 선배 그 사건 뒤로 ‘절친’이라고는 못 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시간 오겠죠”

예정에 없던 만남이었다. 미국 시애틀에 출장 갔다가 우주인 이소연(35)씨와 연락이 닿았다.

그녀는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MBA(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방학을 맞아 친구와 교대로 16시간 자동차를 몰고 시애틀에 놀러 온 날이 공교롭게 내가 도착한 날과 일치했다.

당초 그녀가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떠나올 결심을 한 지는 오래됐어요. 주위 선배들이 '유명 연예인이 유행 지나면 잊히듯이 허무하거나 공허한 느낌이 들 수 있을 것이다. 너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충고를 많이 했어요. 사람들이 질려서라도 2년이면 끝나겠지. 하지만 강연 요청은 계속 이어졌어요. 그냥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면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소릴 듣겠다 싶어 자꾸 미뤘어요. 작년 8월 미국으로 떠나오기 바로 전날까지 강연을 했으니까요."

―강연이나 사회 활동에 많이 지쳤나 보군요.

"서른 살 여자 아이가 하는 얘기를 들어주려고 부르니 감사하죠. 하지만 점점 제 삶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떤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훗날에 유행곡 하나 우려먹으면서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데 '나도 한때는 잘나가는 가수였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젊은 날 한 번의 성취를 계속 우려먹고 있다는 기분 같은 건가요?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 지금껏 살아온 인생보다 길기 때문에 뭔가 마무리를 짓고 다른 방향을 잡아야 했어요. 많은 사람이 제 앞날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제 인생을 책임질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새로운 공부를 하고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어요."

―만약 우주인이 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요?

"과학기술을 홍보하는 일을 했을 거예요. 저는 콘퍼런스나 워크숍, 학회 행사 등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일이 재미있었어요. 카이스트(KAIST)에서 박사과정을 마무리할 무렵 몇몇 동료를 보면서 '연구할 사람은 따로 있다. 나는 저런 능력이 못 되는구나'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당초 우주인 선발에는 어떤 마음으로 지원했나요?

"대한민국 과학기술사에 남는 이벤트에 한 번 지원한 것을 평생 기억하며 살고 싶었죠. 먼 훗날 TV에 우주인이 나오면 손자들에게 '나도 저 사람과 같이 지원했었다'고 말하는 장면도 상상해봤죠. 준비 없이 무식하게 저돌적으로 덤벼들었지 않나 반성도 해요. 그 사건으로 그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 됐으니까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이 됐어요."

2006년 정부가 '우주여행자' 모집공고를 했을 때, 3만6000여명이 지원했다. 그녀는 고산씨와 함께 최종 후보 2인으로 선발돼 모스크바 외곽의 우주인 훈련센터에서 기초 훈련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고산씨가 '우주 비행 참가자'로, 그녀는 만일을 대비한 '백업(back-up) 우주 비행 참가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2008년 고산씨의 보안 규정 위반으로 그녀가 '우주 비행 참가자'가 됐다.

―고산씨가 탈락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러시아 친구들은 제게 '축하한다'고 했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했어요. 저는 리더보다 참모 역할이 마음이 편했어요. 그동안 '백업'으로서 훈련을 해왔는데, 한 달을 남겨두고 역할이 바뀌었으니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불안했어요. 만에 하나 제대로 못 했을 때 여러 말을 듣게 될 것은 뻔했으니까요."

―내가 고산씨 자리를 빼앗았다는 느낌도 있었나요?

"그 생각을 안 할 수 없었어요. 심지어 제 친구가 '너는 본의 아니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독한 년처럼 됐다'고 했어요. 열심히 하는 남자 자리를 빼앗은 것으로 비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둘의 관계는?

"고산씨는 러시아 훈련 과정에서 유일하게 의지한 선배였어요. 하지만 그 뒤로는, 엄청난 '절친'이라고는 못 하겠어요. 언젠가는 허심탄회하게 '그때 오빠는 낙담했지만 저도 나름대로 힘든 점이 있었다'며 털어놓을 시간이 올 거라고 믿어요."

―그 뒤 항공우주연구원에서 같이 근무도 했지요?

"마주쳤지만 서먹한 감정은 어쩔 수 없었어요."

―당시 매스컴은 '한국 최초 우주인의 탄생'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다가, 나중에는 '200억원짜리 우주쇼' '러시아에 돈 주고 상업적으로 올라가는 것이지 우주인은 아니다'고들 했지요.

"그게 서운하고 안타까웠어요. 제 기사의 댓글에는 '여행 좀 다녀온 걸로 뻐기느냐, 네가 왜 우주인이냐'는 악플이 달렸죠. 저는 지원할 때 상업적으로 비행할 것이라는 말은 못 들었어요. 당시 지원자들도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하는 것이라고 해서 지원했어요. 러시아에서 훈련받을 때도 '우리 소유즈(러시아 유인우주선)를 타고서 전 세계 20개국의 첫 우주인들이 배출됐다'고 말했어요. 미국·러시아·중국을 제외하고 그 어느 나라든 첫 우주인 탄생은 우리와 같은 과정을 거쳤어요."

―하지만 우주인 사업은 이소연씨 한 명으로 단발에 그치고 말았죠.

"제가 가져간 18가지 실험이 후속으로 계속될 줄 알았어요. 어떤 미생물이 우주 공간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실험은 한 번에 나오는 게 아니라, 조건을 바꿔 계속 돼야 하거든요. 현실적으로 예산 문제에 대해 이해를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장기 플랜이 있을 줄 알았어요."

―가장 인상적인 실험은요?

"우주정거장에서 무중력 체험을 보여주는 교육 실험이었어요. 그 실험을 지켜본 학생들이 꿈을 키워 나중에 우주과학자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당시 우주정거장에서 9박 10일을 묵었지요. 지구를 내려다본 경험은 본인에게 어떻게 남아 있나요?

"저 넓은 지구 안에 나 하나 있고 없고가 큰 문제가 아니겠구나. 하필 나는 왜 대한민국 땅에서, 우리 부모에게서 태어나 이 자리에 왔을까 의문이 들었어요. 제가 만약 중국 오지나 아프리카에 태어났다면 우주인은커녕 초등학교도 못 다녔고, 내가 살았다는 기록도 없이 사라졌을 텐데. 여기에 있는 것은 내가 노력해서 이뤄낸 것이라기보다 1978년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닌가. 1940년에 태어났어도 못 왔을 것이고. 그전까지 저 자신에 대해 프라이드가 있었어요. 하지만 내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미물(微物)임을 깨달았던 거죠."

―그런 인식은 지상에 내려왔을 때도 유지됐나요?

"우주에서 얻은 깨달음을 영원히 갖고 싶었지만, 막상 내려와 사람에 치이고 인터넷에 악플이 달리면 저도 심란해져요. '다 좋은 것만 가질 수 없다. 너는 명예를 얻었고 또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긴 만큼 너를 싫어하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생기는 것'이라는 충고를 들었지만, 어떤 때는 감당이 잘 안 됐어요. 평범한 인간이라는 걸 확인하는 거죠."

―우주에 닿은 순간의 첫 느낌을 알고 싶군요. 광대한 우주에 한 점으로 떠 있다는 두려움이나 전율을 느꼈나요?

"지구 반경이 6400㎞인데, 저는 고작 400㎞를 올라갔잖아요. 지구 껍질 바깥을 못 벗어났어요. 우주 한가운데에 있다는 느낌보다 지구에 묶여 있다고 보는 게 옳죠. 그전에 사진으로 봤을 때는 그냥 푸른 지구였는데, 우주정거장에서 보면 지구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어요."

―지구가 움직이는 걸 봤다는 겁니까?

"지구의 70%가 바다이니까 대부분 시간을 태평양 상공에서 보내요. 그 위에 구름이 뜨고 움직이는데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려요. 반대편 창을 보면 광대한 우주죠. 까만 공간에 별들이 떠 있어요. 낮에는 태양빛이 너무 강해서 볼 수가 없어요."

―우주정거장에서의 열흘은 빨리 지나갔나요? 느리게 지나갔나요?

"빨리 지나갔어요."

―시간의 속도가 다른가요?

"우주정거장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90분이 걸려요. 하루에 16번 해가 뜨고 져요. 평상시에는 셔터로 창문을 닫아놓아 '어 금세 해가 떴네, 해가 졌네' 하는 걸 못 느껴요. 열어놓으면 너무 눈부시고 어둠이 너무 진해 작업에 방해가 되니까요. 우주정거장의 내부 시계는 24시간을 하루로 맞춰놓았기 때문에 시간은 똑같아요. 다만 우리가 여행을 가면 시간이 빨리 가듯이 그런 느낌인 거죠. 저는 18가지 실험을 열흘에 다 마쳐야 했기 때문에 밥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도 거의 없었어요."

―여행에는 먹는 즐거움이 으뜸인데. 뭘 먹었나요?

"냉동 건조된 즉석 밥, 즉석 된장국 같은 것이죠. 뜨거운 물을 붓거나 히터에 데워 먹어요."

―잠은 어떻게 잡니까?

"침낭을 벽에 걸어놓고 서서 잤어요. 위로 서 있거나 옆으로 누워 있거나 느낌이 똑같아요. 무중력 상태는 몸이 떠다니니까, 처음에는 토하고 어지러웠어요. 이를 적응하고 나면 편해요."

―잠은 잘 왔습니까?

"20~30분마다 깼다가 다시 자고. 사흘쯤 지나니 너무 피곤해서 절로 잠들었어요. 하루 평균 서너 시간쯤 잤어요."

―우주에 있다가 지상에 내려왔을 때 느낌은 어떠했나요?

"지상에 내려오니 저를 당기는 지구 중력이 너무 무거웠어요. 온 세상이 저를 짓누르는 느낌…."

―신체적인 변화는 없었고?

"우주에서는 모든 피가 가슴과 머리에 몰리거든요. 심장에 과부하가 걸려요. 소변을 자주 보고 땀을 많이 흘려요. 지상에 내려오니 갑자기 피가 아래로 내려가 머리에는 피가 부족하게 돼요. 빈혈을 느끼는 거죠. 피가 아래로 안 내려가게 허벅지를 코르셋으로 묶고 누워 지냈어요.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 1~2주일이 걸렸어요."

―그 뒤로 항공우주연구원 소속이 됐지요. 대중적인 명성을 얻고 강연을 다니다 보면 연구원의 정체성이 흔들릴 텐데요.

"예. 헷갈렸어요."

―이미 큰 것을 했기 때문에 연구는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우주 비행을 하고 난 뒤로 무슨 일이든 의미 없고 사소한 것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비행할 때 러시아·미국인 우주인들의 자세가 그랬어요. 우주인들이 묵는 호텔방을 담당하는 청소부 한 명이 에어컨 온도 조절만 잘못해도 우주 비행이 날아가 버려요. 사소한 행위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해요."

―장차 이소연씨는 결혼해서 애 낳는 평범한 가정의 일원으로 살 수가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결혼하지 말라'고 해요. 당신은 할 일이 많은데 언제 집안일하고 아이를 키우겠느냐고 해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아요. 저보다 더 똑똑한 아이를 낳으면 그것도 보상이니까요. 될 수만 있다면 제 엄마 아빠처럼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싶어요."

―미국에 온 지 1년이 돼가는데 무엇을 할지가 정리됐습니까?

"여전히 생각 중이에요. 다시 되돌아갈지 아니면 미국에서 일자리를 찾을지도 정리가 안 됐어요."

―하지만 어떻게 살 것인지는 정리됐겠지요?

"제가 우주정거장에서 실험하는 장면을 본 꼬마 중에 '나도 우주인 되고 싶다. 로켓을 만들고 싶다'고 했어요. 제가 노숙자나 알코올중독자가 되거나, 바르지 못한 행위를 하게 되면 '뭐야 나는 저 사람 때문에 우주인이 됐는데'하며 창피해할 게 아니에요. 저로 인해 과학자가 되기를 마음먹었던 아이들이 저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가정주부로 살든 봉사활동을 하든 직장생활을 하든 말이에요."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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