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공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담록의 성격을 놓고 국정원과 김만복 전 국정원장 간 진실게임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회담록의 일부가 파기됐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가기록원 보관 회담록과 국정원 보관 회담록 사이에 일부 차이가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는 결국 노무현정부 막판 국정원이 여러 가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회담록을 임의로 처리했을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어서 ‘노무현 국정원’의 석연치 않은 행태에 대한 의혹도 높아지고 있다.
국정원은 기본적으로 국정원 보관본이 진본이고, 국가기록원 보관 회담록은 잠정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국가기록원이 보관 중인 회담록은 녹음 파일을 러프하게(대략적으로) 푼 것이고 완성본은 2008년 1월 완성돼 국정원에서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5일 “2007년 10월에서 2008년 1월 사이 청와대에 회담록을 한 부 보고했는데 이는 대강 녹음 파일을 푼 것을 보고한 것이고 국정원이 이후 2008년 1월 회담록을 완성해 원본을 갖고 있다”며 “이는 김 전 원장의 지시”라고 밝혔다. 국정원 측은 청와대 보고용 회담록, 중간본 등은 모두 파기했다고 덧붙였다.
반면 김 전 원장은 2007년 10월 청와대에 보고한 것이 완성본이고 국정원이 공개한 원본에 대해서는 지시한 적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김 전 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7년 10월 중 회담록을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기억한다”며 “청와대에 보고하는 회담록인 만큼 당연히 완성본이었다”고 반박했다. 김 전 원장은 또 2008년 1월 국정원 보관용 회담록이 완성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기억에 없다. 애초 청와대와 국정원 보관용으로 1부씩 2부를 만들고 나머지는 폐기하라고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국정원 측 주장이 사실일 경우 김 전 원장이 노무현정부 막판 남북정상회담 성과에 쐐기를 박기 위해 회담록 유통·배포에 집착했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 김 전 원장의 주장이 사실일 경우 2008년 1월 국정원 내 누군가가 김 전 원장 모르게 회담록을 작성한 것으로, 김 전 원장의 주장처럼 회담록의 ‘왜곡’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원천적으로 이 같은 논란이 빚어진 것은 김 전 원장 시절 회담록이 청와대 보고용·잠정본·완성본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국정원 측이나 김 전 원장이 모두 일부 회담록의 파기를 거론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회담록이 몇 개 버전이나 존재했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는 결국 노무현정부가 이상하리만큼 당시 회담록 작성·배포에 집착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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