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김재연 의원이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무기명 투표에서 기표를 마친뒤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 기로에 선 통진당
NL-PD계열 다시 뭉쳐 작년 총선서 13석 확보
부정경선 문제로 또 와해
통합진보당이 제도권 정치에 진입한 지 9년 만에 '이석기 사태'를 계기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통진당은 사회적 약자 대변과 한국 사회 진보 담론 확대를 내세우며 정치권에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종북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해 사실상 파국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진당은 태생부터 분열의 씨앗이었다. 이석기 의원이 핵심인 경기동부연합의 종북 세력은 해묵은 정파대립과 거듭된 분당의 원인이 됐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통설이 정확히 맞아떨어진 셈이다.
통진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은 2000년 1월 민노총 위원장 출신이었던 권영길 대표 등 평등파(PD) 주도로 창당했다. 하지만 뒤늦게 경기동부연합을 비롯한 자주파(NL) 지역연합체가 대거 민노당에 합류, 당을 장악해나가면서 민노당은 두 개 정파연합의 '불안한 동거'를 지속해왔다. 평등파와 자주파는 대북관을 두고 사사건건 대립해왔지만, 2004년 17대 총선에서 10석을 확보하며 진보정당 최초로 원내 두 자리 수 입성이라는 쾌거를 이루며 진보진영 저변 확대의 기대를 한껏 높였다.
하지만 2006년 10월 민노당 내 NL계열 간부들이 북한 공작원들과 내통한 '일심회 사건'을 계기로 민노당의 종북 성향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고 대중정당으로서의 민노당 입지는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경기동부연합 등 당권파는 북한 핵실험 당시 당이 유감 성명을 발표하려 하자 무산시켰고 공식행사에서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등 종북 성향을 노골적으로 고수해왔다.
이에 심상정 의원 등 PD 계열 인사들은 일심회 관련자들의 징계와 NL계의 시대착오적 대북관 시정을 요구하다 거부당한 뒤 대거 탈당했고 민노당은 당권파 수중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19대 총선을 앞둔 2011년 12월 진보대통합의 명분을 내세워 당권파가 장악한 민노당은 PD계열의 진보신당은 물론 유시민 전 대표의 국민참여당과 재통합했고 진보 진영은 통합진보당으로 다시 뭉쳤다. 진보 대통합으로 탄생한 통진당은 민주당과 야권연대까지 이뤄냈고 지난해 19대 총선에서 13명(지역구 7석 + 비례대표 6석)을 당선시켜 원내 제3정당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명예회복도 잠시, 경기동부연합이 조직적으로 개입된 비례대표 부정경선 문제가 불거지면서 당권파 특유의 패권주의와 종북 논란이 재점화됐다. 당시 당권파는 부정경선 사태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비당권파의 반발을 저지하기 위해 폭력사태까지 일으키며 진보정당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끝내 비당권파는 종북주의 세력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지난해 9월 정의당을 창당하며 종북세력과 철저하게 선 긋기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경기동부연합 등 당권파의 종북성향을 뿌리 뽑지 못하고 진보의 울타리에 묶어둔 것이 진보정당 역사의 시계를 10년 전으로 후퇴시켰다고 지적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