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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머리카락은 남겨두고 턱수염은 없애야 하는가

[기타] | 발행시간: 2014.07.03일 11:42
[오마이뉴스 전병호 기자]



▲ 수염 자르기 전과 후 수염을 기르니 털이 되었다(상 2014년 6월30일 오후 촬영, 하 7월1일 오전 촬영)

ⓒ 전병호

수염을 기르니 털이 되었다. 두 달 기른 수염을 밀어 버렸다. 지난겨울부터 수차례 시도 끝에 최근 두 달 동안 어렵게 얻어 낸 작품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멋진 예술가 풍모를 그리며 길렀지만, 아무리 봐도 간신 쪽에 가까워 보였다. 2주를 넘기지 못하고 면도기가 수염의 싹을 없앴다. 반복하다 보니 이쪽저쪽 가지치기를 하며 조금씩 균형을 잡아 가기 시작했고, 3주 정도 지나니 드디어 아래턱 주변을 중심으로 제법 봐줄 만한 수염족으로 변해갔다. 한 달이 넘어가자 이제 수염은 점점 털이 되었다. 그 아까운 털을 밀어 버렸다.

작년 말 20여 년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난 후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퇴직 후 그동안 미적거리던 책 쓰기에 전념하였다. 규격화된 평범한 직장인의 길을 걸어오는 후배들에게 전하는 퇴직 준비에 대한 책으로 힘든 과정이었지만, 쓰면서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나를 바라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글쓰기에 몰두하던 어느 날, 문득 바라본 거울 속에는 삐쭉빼쭉 제멋대로인 수염을 단 40대 중반의 생경한 사내가 서 있었다. 신기하고 낯선 경험이었다. 돌이켜보니 그 수염이란 놈은 사춘기 시절 뽀송뽀송 솜털로 나타난 후 수십 년 동안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채 사내와 동거 중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그 녀석을 정식으로 대면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방학은 온전히 막노동으로 학비를 충당해야 했던 대학 시절, 생활에 찌들어 일주일 정도 못 깎아 듬성듬성 어설프게 자란 녀석을 잠시 본 기억은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군대 시절에야 수염 기르기는 영창 갈 각오 아니라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복학생 시절에는 노땅 티 내고 싶지 않아 꼬박꼬박 되도 않는 턱 선에 신경 쓰며 매일 아침 일회용 면도기 신세를 지곤 했다. 그 뒤 직장생활이야 말해 무엇하랴.

이 나라 보통 직장인이라면 수염 달고 출근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가끔 멋진 수염을 기르는 직원도 있긴 했지만,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내게 그런 멋스러운 모습은 상상 밖의 일이었다. 나뿐 아니라 이 나라 평범한 직장인의 표준 용모는 다들 짐작하는 그 모습이다.

무모한 유털 도전!

낯선 거울 속 수염 달린 사내와의 대면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10일쯤 그런 상태로 다니다 보니 주변 반응들이 흥미롭다.

동네 미용실 원장님처럼 예술가의 풍모가 느껴진다며 부추기는 '솔솔바람넣기형', 수염이 많지 않아 안 어울리니 한마디로 빨리 깎아버리라는 '거두절미형', 백수 티내냐며 일방적으로 윽박지르는 '기선제압형'이 있는가 하면 아예 아내처럼 "에이 더러워 죽겠네. 밥 맛 떨어져! 당장 밀어 버려!"라며 '대놓고면박형'인 부류들이 있었다.

단조로웠던 일상이 수염으로 인해 좋은 반응이든 부정적 반응이든 나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보이는 것이 재미있었고 신선했다. 별것 아닌 수염이 밋밋한 일상에 흥미로운 화젯거리를 제공해준 셈이었다. 수염 하나 기른다고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닌데 그동안 왜 그랬는지 우습기도하고 수염 하나 맘대로 못했던 속박되었던 내 삶을 생각하니 마음이 헛헛했다.

그깟 수염이 뭐라고. 생물학적으로 보면 턱 주변에 쏟아나는 신체의 일부분일 뿐인데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가공하지 않은 내 모습을 죽기 전에 한 번쯤 온전하게 보여주는 것이 내 인생의 선물일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울리든 어울리지 않든 일단 길러보고 그것이 진짜 내 모습의 일부라는 것을 보고 확인하고 싶었다.

그 많던 조선의 수염은 어디로 갔을까?

수염을 달고 다니면서 주변 반응 때문에 나를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수염 기른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영화나 사극을 보면 모두 수염을 달고 나오는데 지금 길거리에 나가 수염 기른 이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 많던 조선의 수염은 어디로 갔을까?'

사라져 버린 그 수염들이 궁금해졌다. 사라져버린 그 비밀 속에는 격변기 조선왕조의 비극과 외세와 침략, 전쟁으로 점철된 우리의 근현대사가 들어 있다.

19세기 말 조선왕조의 끝자락, 나라는 비록 혼란에 빠져 있었어도 수염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격변하는 나라의 운명과 함께 조선의 수염도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무능한 국왕은 백성들을 지켜주지 못한다. 한 나라의 국모를 자객들이 무참히 죽이고 불태워버린 을미사변이 일어났던 그 해(조선 개국 504년-고종32년 1895년) 1월 1일을 기해 양력 채용과 더불어 전국에 단발령이 내려졌다.

일본의 강요로 국왕인 고종이 먼저 서양식으로 머리를 깎였으며, 관리들은 거리로 나가 성문 등에서 강제로 백성들의 머리를 깎게 하였다. 신체발부(身體髮膚)를 지키는 것이 효(孝)의 시작으로 받들던 조선의 유교적 전통은 하루 아침에 거리에 버려져 수난을 면치 못하였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수치스럽고 화가 나는 일이다. 이에 당대 유림의 거두 최익현을 비롯한 많은 선비들은 "내 목을 자를지언정 내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오두가단 차발불가단(吾頭可斷 此髮不可斷)"을 외치며 단발령에 강력하게 저항하였다. 하지만 힘없는 나라는 백성들의 수염은 끝내 지켜주지 못했다.

누구나 가졌던 수염은 단발령으로 잘린 상투와 함께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해방을 맞이 했지만, 곧바로 터진 전쟁으로 폐허의 거리에는 '기브미 초콜릿'과 함께 신식이라는 미국문물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 덕(?)에 우리 것은 무조건 구식이 되었고, 구식을 버리고 들어선 신식은 무조건 좋은 것으로 규정되었다.

물밀 듯이 들어온 무비판적인 신식문물은 단발령 이후 설 자리를 잃어가던 흔들리던 조선 수염에는 치명타가 되었다. 군부독재시절 '새벽종'이 울릴 때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면도 하고, 양치하고 씩씩하게 학교 가기를 배웠고, 그 시절 수염을 기른 이는 필시 퇴폐적이고 저항의 상징이었으리라.

긴 머리는 퇴폐였고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고운 아침이슬'은 봐서는 안 되는 금기의 시대였다. 그곳에 수염이 자리할 곳은 없었다. 할아버지 사진 속 그 많던 이 땅 수염들은 그렇게 사라져 갔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아침마다 보는 수염이 사라진 날카로운 턱 선 속에는 그리 자랑스럽지 않았던 우리의 근현대사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잃어버린 조선 수염을 찾아서

류현진 선수가 뛰고 있는 LA다저스에는 수염을 달고 있는 브라이언 윌슨이라는 선수가 있다. 한 면도기 회사가 수염 깎는 대가로 11억여 원을 제시했다가 거절당했던 일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때 브라이언 윌슨은 자신의 연봉보다 많은 금액 제시를 뿌리치며 한 말은 "수염은 나의 이름과 같다. 나는 이 수염을 무덤까지 가지고 갈 것이다"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신체발부수지부모'를 알며 진정한 자존심을 아는 친구다. 우리나라에도 요즘 일부 연예인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이미지 확장을 위해 의도적으로 수염을 기르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어찌 보면 신체 일부를 기르고 마는 행위가 타인들에게 크게 이슈화되는 것은 이상한 현상이다. 머리를 짧게 하든 길게 하든 그 사람의 개성으로 봐주듯 수염 또한 그리 봐주면 될 일이다.

친구 중에 수염을 기르는 친구가 있다. 외국을 드나드는 그 친구가 해준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 수염에 대한 굴절된 시각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 친구는 외국인 친구들 만나면 습관적으로 자기 수염에 대한 인상을 물어보곤 했다 한다.

"내 수염 어때? 이거 깎으면 어떨까?"

이에 대한 대부분 외국 친구들 반응은 "수염을 깎든 안 깎든 네가 변하는 것 없잖아. 한 번 더 길러봐"라는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머리 깎는 것과 큰 차이를 두지 않았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반응이다. 수염을 기르든 안 기르든, 머리를 기르든 안 기르든 뭐가 차이가 있겠는가. 우리들의 인식 속에는 그 동안 수염 기른 이를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수염을 기르는 것은 뭔가 다른 사고방식의 소유자로 받아들이는 굴절된 시각이 존재한다.

이제부터라도 수염은 수염일 뿐 기르고 안 기르는 것은 개인의 자유로 바라보자. 왜 우리는 면접 시 반드시 수염을 자르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수염조차 퇴폐, 반항으로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편향된 사고의 틀을 깼으면 좋겠다. 이제 우리도 지난 백여 년 동안 잃어 버렸던 조선 수염의 부활을 선언하자.

방황하는 중년 삶에 대한 저항의 상징 두 달 된 턱수염을 밀기로 했다. 없애기 위해 밀은 것이 아니라 기르기 위해 밀었다. 그동안 수염을 기르며 느꼈던 색다른 경험을 기억하고 다시 한 번 그 경험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밀고 다시 길러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얼떨결에 처음으로 두 달이나 길러봤지만, 앞으로는 두 달이든 세 달이든 그 과정을 기억하며 길러보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뭐 거창하게 인생의 전환점이니 굳은 결심이니 이런 건 없다. 그저 두 달 동안 기른 털이 된 수염을 밀어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다 싶다. 또한 내 수염 속에 들어 있는 이 사회의 길들여진 관행에 저항을 해보련다. 왜 머리카락은 남겨두고 턱수염은 없애야 하는지 아침마다 생각해보자.

관행으로 묶어두었던 수염을 탈출시켜 보자. 이 글을 읽는 이들도 '브라이언 윌슨'만큼 값진 수염은 아닐지라도 한 번 도전 해 보시길 바란다. 내일부터 거리에서는 수염 달린 남자가 넘쳐 나길 기대한다. 한 번 꼭 해보시라. 생각보다 재미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마다 자유의 턱수염이 달려 있는 열린 우리 사회를 보고 싶다.

과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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