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 배중현.김진경]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최민식)의 아들 이회(권율)는 아버지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이순신은 원균의 모략과 무능한 군주 선조의 독단 때문에 삼도 수군통제사에서 밀려난 후 모진 고문까지 당한다. 하지만 원균이 왜군에 대패(칠천량해전)한 후 삼도 수군통제사로 복귀하고, 13척의 배를 이끌고 명량(울돌목:전라남도 진도와 육지 사이의 해협)으로 떠난다.
이회는 마지막까지 아버지에게 '왜 이 전쟁을 나가셔야하는지' 묻는다. 꼭 관객이 역사 속 이순신에게 묻고 싶은 질문을 대신하는 것 같다. 국가는 필요할 때만 이순신을 찾았고, 이순신은 그런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명량'에서 이회 역을 맡은 권율은 많은 대사를 하지 않는다. 61분의 해상전투 신이 벌어지는 대장선에도 타지 못한다. 분량이 크다고 말할 순 없다. 그렇지만 담담하고 묵직한 모습으로 제몫을 다한다. 아버지와 독대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을 숨죽이게 만든다. 권율은 "이순신 장군의 아들을 했다는 꼬리표가 붙어도 좋다"며 "그만큼 명예롭고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영화가 이렇게 잘 될 것으로 보였나.
"잘 되는 줄 알면 그것만 하지 않겠나.(웃음)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촬영을 하면서 정말 가슴 벅찬 순감이 많았다.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현장에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보다는 한 편의 대서사시에 몸을 내 던지는 것 같았다. 뜨거운 현장이었다."
-처음 역할을 맡고 뭔가 막막했을 거 같다.
"역사적으로 자세하게 서술된 것도 없고,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인물이었다. 이회라는 인물을 맡았을 때는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했다. 내 캐릭터를 통해서 장군님의 내면과 아버지의 모습, 인간 이순신의 모습 등이 다양하게 관객들에게 전해질 것으로 생각했다. 이회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온전히 이순신 장군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에 집중했다. 만약에 다른 욕심을 부렸다면 이회가 관객의 공감을 사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려움이 느껴진다.
"지금까지 해왔던 어떤 캐릭터보다 힘들었다. 화가 나면 화를 내고, 뛰어나가고 싶은 감정이 들면 그걸 하면 되는데 이회는 그렇지 않다. 아버지에 대한 경외심이 있으니까 감정이 상충하고 너무 복합적이었다. 힘들었던 연기였다. 머금고 버텨내야 하는 작업이었던 거 같다. 때로는 답답하기도 했지만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대선배 최민식과의 호흡은 어땠나.
"아버지 같으셨다. 현장에서 아들처럼 챙겨주셨다. 처음에 캐스팅 됐을 때 주변에서는 '너무 아버지와 아들이 안 닮은 거 아니냐'고 그러셨다.(웃음) 하지만 8개월 정도 촬영을 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닮아 있더라. 친하면 닮는다는 말이 있지 않나. 아마 아버지와 내가 마음으로 소통을 하고 있어서 그랬던 거 같다."
-아들은 정작 명량대첩에 참가하지 못한다. 아쉽지 않았나.
"배우로서의 욕심은 같이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영화적인 욕심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이회는 민초들을 이끌고 전쟁을 바라보면서 관객보다 반 발짝 빠르게 놀라고, 반 발짝 빠르게 기뻐한다. 관객들이 조마조마하면서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을 하고 볼 수 있었던 것은 이회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역할을 했다는 것에 너무 감사하고, 기쁘게 생각한다."
-고민을 많이 한 거 같은데, 연기는 만족하는가.
"그렇지 않다. 온전히 장군님의 마음을 받기도 부족했다. 8개월 동안 그 부분에 중점을 뒀고, 이 점에 대해선 수고했다. 고생했다 이 정도의 말만 해줄 수 있을 거 같다. 자아성찰을 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연기를 기술적으로만 했다면 아마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후회는 없다. 좋은 경험을 했다."
-이회 역을 다시 하라면 하겠나.
"다시 하고 싶다. 그만큼 중심이 잡힌 캐릭터였다. 화려한 액션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감정 표현을 폭발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뚝배기처럼 꾹 눌러서 절제하면서 밀고나가는 게 멋졌다.(웃음)"
-실제 아버지가 승산이 없는 전쟁에 나간다면 이회처럼 할 수 있겠나.
"복합적인 감정이 들겠지만 이회와 똑같았을 거 같다. 당연히 아들로서 눈물을 쏟으면서 아버지의 다리라도 붙잡고 말려야 하지만 백성들이 아버지 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면 보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이번 작품에 대비해 참고한 게 있다면.
"아버지(이순신)의 마음이 궁금해서 난중일기를 읽었다. 일기 형식이어서 그런지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는 수필처럼 잘 읽혔다. 하지만 촬영에 들어가고 아버지의 마음에 집중하고 그러니까 더 이상 읽기가 어렵더라. 매일 전쟁터에 가는 기분이었다. 감정이입이 심하게 되다보니까 몸이 힘들고 감독님이 힘든 게 아니라 정서적으로 힘들더라. 정말 내 아버지의 일기장 같았고, 아버지가 담담하게 쓴 글로 받아들였다."
-원래 국사를 좋아하나.
"과탐보다 사탐을 더 선호한다. 과탐 중에서는 지구과학을 좋아했다.(웃음)"
-이회의 이미지가 오래 갈 거 같다.
"이순신 장군의 아들을 했다는 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녀도 괜찮다. 명예롭고 감격스럽다."
-영화를 본 1000만이 넘는 관객에게 한 마디 한다면.
"이렇게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명량'은 아직 완성된 게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함께 만들어주시는 것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배중현 기자 bjh1025@joongang.co.kr
사진=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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