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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전 연변에 남긴 주은래총리의 발자취를 더듬어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2.03.27일 11:02
《기억속의 60년》-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주년 특별기획(4)


-50년전 주은래총리 연변방문 수행촬영기자 황범송선생으로부터 듣는 주총리의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50년전인 1962년 6월 22일, 당시 국무원 총리였던 주은래총리가 문뜩 연변을 찾아오셨다. 마음속으로만 우러르던 경애하는 주은래총리가 변강의 작은 도시인 연길시에 나타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연변인민들은 격동과 흥분의 도가니에 잠겼다.

주은래총리는 당시 연변에서 1박2일의 짧은 기간을 머무르셨지만 가는 곳마다에서 허다한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남겼으며 50년이 흐른 지금에도 우리들에게 경애하는 주총리의 넓디넓은 흉금과 군중들을 무한히 아끼고 사랑하며 관심하는 대공무사한 정신을 깊이 사색하게 하고있다.


3월 26일, 기자는 당시 주은래총리의 행선지를 수행하면서 소중한 력사의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겼던 오랜 촬영가인 황범송(82세)선생을 만나 주은래총리가 연변에 오셨던 나날들에 대한 발자취와 아직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의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황범송선생의 이야기는 1962년 6월 22일로 돌아간다. 당시 연변일보사의 촬영기자로 있던 황범송선생은 아침 9시쯤 돼서 당시 주당위 서기처 서기였던 전인영동지가 급히 달려와 중앙의 주요지도일군이 연변에 오게 되는데 연변일보 촬영조에서 사진을 잘 찍어서 지도일군에게 선물로 드리겠으니 각별히 신경 써서 임무를 완수할것을 요구하는 지시를 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중앙의 지도일군이 누구라는것은 철저한 비밀에 붙여졌기에 누구도 주은래총리가 연변에 방문올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연변일보사 촬영조에서는 인차 지시에 따라 연변일보사의 강찬혁, 김홍국, 황범송 등 기자들과 당시 연길시에서 사진을 찍을수 있는 남진우, 최학림, 채기억 등 대외사진가들까지 동원해서 3개조의 촬영팀을 뭇고 각자 위치로 달려갔다. 당시 강찬혁과 김홍국은 기차역에 가서 대기해있고 황범송과 남진우, 최학림 등은 연변빈관에서 대기하고있었으며 채기억은 연변의학원에서 대기하고있었다.


그런데 기차역에 갔던 촬영조가 아무리 기다려도 기차는 안 오고 특별한 동정이 없는지라 역의 사업일군 하고 물었더니 10시 30분에서 11시 30분쯤 찦차와 하이야가 역에 들어왔다 간 일이 있다고 해서 다시 분공을 짜서 연변빈관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연변빈관에도 별다른 동정이 없었다.

한편 이때 주총리를 실은 하이야는 당시 연변에서 가장 큰 공장이였던 연변농기계공장(현 연동교 남쪽)으로 향하고있었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당시 도문에서부터 주은래총리와 함께 있었던 주덕해주장은 연길기차역에 도착한 후 먼저 주은래총리를 연변빈관에 모셔 쉬게 할 타산이였다 그러나 주총리가 차안에서 시계를 보더니 아직 쉴 시간이 아니고 사업시간이라고 말씀해서 연변농기계공장을 사전예약도 없이 방문했다는것이다.


연변농기계공장에서 주은래총리는 제일 첫걸음으로 기계화직장인 제3직장에 들어갔는데 마침 용광로 내벽을 수리하고있던 청년기술원 리중철을 만났게 되였다고 한다. 그때 리중철은 일하던 맵시라 손에 기름때가 가득 묻은것이 게면쩍어서 총리의 손을 잡아볼 엄두도 못내고 머뭇거리고있었는데 주총리께서 먼저 서슴없이 두손을 내밀어 로동자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었다고 한다. 주총리가 공장에 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점심때였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삽시간에 차간과 식당 그리고 숙소로부터 몰려왔다고 한다. 주은래총리는 연변농기계공장의 로동자들속에 둘러싸여 직장마다 돌아보면서 기름묻은 수백쌍의 손들을 하나하나 잡아주었으며 공장의 생산상황은 물론 종업들의 복리대우며 가정생활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캐여물으셨다고 한다.


연변농기계공장에서 나온 후 주은래총리는 연변빈관(현 연변농촌상업은행)으로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주은래총리가 타신 승용차가 연길빈관에 도착하기도 전에 경애하는 주은래총리가 연길에 오셨다는 소문이 날개라도 돋친듯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연변빈관주위는 주은래총리를 뵈러 온 시민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고 한다.

당시 연변빈관에서 촬영임무를 맡고 대기중이던 황범송선생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 연변빈관과 주초대소 사이에 있던 철란간도 모두 무너져버렸다고 회억했다.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온것을 보고 주은래총리는 차에서 내려 군중들과 허물없이 악수를 청하였다고 한다. 갈수록 늘어나는 사람들때문에 주총리의 안전이 념려되여 주당위 지도일군들이 주총리께서 빈관에 들어가실것을 수차 권고하여서야 주은래총리는 빈관안으로 들어가셨고 연변빈관에 들어가신 후에도 2층에 있는 베란다에 오르시여 사람들에게 연신 손을 흔들면서 답례하시였다고 한다. 차에서 내릴 때 주은래총리는 당시 연변주당위 서기처 서기였던 전인영으로부터 짧은 순간이였지만 《안녕하십니까》와 《다시 만납시다》를 조선어로 배우시고 조선족군중들을 향해 조선말로 인사해 깊은 인상을 남기시였다.

당시 주은래총리가 머무르셨던 연변빈관건물, 국기가 세워진 곳이 바로 주총리가 군중들에게 손저으며 답례하시던 2층 베란다이다.


당시 연변빈관에서 복무원으로 사업하였던 주금옥할머니(73세)는 50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때 감동적이였던 장면을 회억하면 격동의 마음을 금할길 없다고 하면서 경애하는 주은래총리를 가까이에서 만나보는 사람들마다 격동되여 감격의 눈물을 흘리였다고 말했다.


특히 총리께서는 당시 색갈이 이미 퇴색한 회색목천옷에 낡은 속적삼을 입으셨는데 옷깃에도 기운 자리가 뚜렷이 알렸으며 신으신 구두도 낡은 구두였다고 한다. 연변빈관에서 침대우의 비단이부자리를 보신 후 주은래총리는 복무원들에게 가져가게 하시고 자신이 갖고온 10여년간 덮던 이부자리를 바꿔놓았다고 한다. 차도 가지고 오신것을 풀어 마시고 밤참으로 방에 놓아둔 사과며 사탕, 과자 등은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고 한다. 후에 빈관의 사업일군들은 주은래총리가 묵어간 침실의 고뿌에서 주총리께서 밤참으로 마신 수수쌀 미숫가루 흔적을 발견했는데 이 역시 주총리께서 갖고오신것이였다고 한다.


빈관에 들어오신 후 주은래총리는 화식칸에 들어가 돌아보았는데 방정맞게도 파리 몇마리가 날아다니는지라 화식칸의 장씨성 스푸가 파리때문에 안절부절하는것을 보고 이 큰 면적의 집안에 파리 몇마리쯤 날아다니는것은 정상적이라고 도리여 장스푸를 위안해주었다고 한다. 화식칸에 들어가서도 당시 연변에서 유일한 쏘련제랭동궤를 열어보면서 장스푸에게 오늘 손님이 올줄 알았는가고 물었다고 한다. 장스푸가 주은래총리가 올줄을 몰랐고 큰 손님이 온다는 사실만을 알고있었는데 주덕해주장님이 손님접대준비를 잘하라고 해서 시장에 나가 돼지고기 2근 반을 사왔는데 더 준비해야겠다고 하니 주은래총리는 그것이면 넉넉하다고 더 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는것이다.

후문에 따르면 이날 식사때가 되여 주덕해주장이 남아서 주은래총리를 배석하려 하자 주은래총리께서는 극구 사양하면서 《당신은 당신의 밥을 가서 자시고 나는 내 밥을 먹겠습니다》라고 말해서 주덕해주장도 집에 가서 식사를 하고 다시 왔다고 한다.


주은래총리가 연변에 오셨던 시기는 전국 상하가 모두 대식품을 먹던 시절이라 주요하게는 군중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 실제적으로 료해하기 위한데도 중요한 시찰목적이 있었다고 한다.

연변대학에서 주은래총리는 대학식당관리원을 만나 대학생들이 생활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곤난이 무엇이며 무슨 밥을 먹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식당관리원이 아무런 곤난도 없고 대학생들이 이밥을 먹는다고 거짓으로 회보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심한 주총리께서는 식당을 자세히 돌아보면서 쌀은 왜 보이지 않냐고 의문을 제기했고 이에 총리한테 어려운 모습을 보여드리기 거북해 거짓말을 했다고 식당관리원이 이실직고했다고 한다.

1962년 6월 23일, 연변의학원을 시찰하시는 주은래총리(자료사진)


룡정에 있는 농학원을 가면서 주은래총리는 모아산을 보고 당시에만 해도 모아산이 웃부분은 민둥산인것을 보고 국내외 록화선진경험을 소개하면서 조림록화를 잘할것을 부탁했고 주덕해주장으로부터 연변에서 록화뿐만아니라 농업수리, 조선족의 습관과 생활 등 구체적인 20여가지 회보를 청취하고 연변건설의 구체적인 사업들에 지시와 제시를 했다고 한다.


룡정에 갔다가 오는 걸음에는 연길시 신풍촌의 전국로력모범인 최죽송을 만나보면서 조선족의 례의범절을 존중하면서 꽃방석에도 앉으셨고 손수 조선족가마뚜껑도 열어보시고 등영초동지는 손수 부엌의 풍구도 돌려보면서 조선족의 생산과 생활을 손수 체험하시고 까끈하게 료해하셨다고 한다.


6월 23일 저녁, 주은래총리를 잘 료해하고있었던 주덕해주장은 총리를 위해서 전문공연을 한다면 주총리께서 특수화를 부린다면서 응하지 않을것을 고려해 사전에 당정기관간부들에게 초대권을 나누어주고 연변가무단에 공연을 지시한 후 주총리를 공연구경에 초대했다.

아니나다를가, 공연구경에서도 주총리께서는 특수화를 부려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공연표를 자기 돈을 내고 샀으며 공연전에 극장에 들어서면 총리를 알아본 관중들때문에 극장질서가 파괴될것을 우려해 공연이 고조에 이를 때 극장에 들어가기로 결정하였다.

결국 그날 주총리는 극장안을 들어가지 않으시고 공연이 한창 시작된 후 살며시 무대동쪽의 간막이에 들어가셔서 소학생들이 앉는 작은 나무걸상에 앉으신채 공연을 마지막까지 관람하시였다고 한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공연에 참가한 배우들과 일일이 악수하면서 생활형편을 상세히 료해하였으며 기념사진도 남기시였다고 한다.

그날 저녁 공연이 끝난 후 주은래총리께서는 연변을 떠나시였다. 떠날 때도 주덕해주장을 제외한 그 누구도 배웅하지 못하게 하면서 연변의 인민군중들에게 부담과 어려움을 남기려 하지 않았다.


황범송선생은 《주은래총리가 연변에 머문 시간은 6월 22일부터 23일까지 1박2일의 짧은 시간이였지만 이 짧은 시간속에서도 주은래총리는 연변의 가는 곳마다에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담겨졌고 가는 곳마다 잊혀지지 않는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남겨놓았다》고 말했다.

황범송선생은 주은래총리가 연길에서뿐만아니라 도문에서도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남기셨다고 하면서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주총리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려주었다.


당시 도문진의 진장이였던 김하권진장이 황범송선생에게 들려주었다고 하는데 원래 주은래총리께서는 연길에 오시기 전에 도문에 먼저 들르시였다고 한다.


1962년 6월 22일 아침 9시좌우, 흑룡강 시찰차 대경유전과 할빈, 목단강을 통해 도문으로 온 주총리께서는 역에 마중나온 주덕해주장과 함께 차를 타게 되였는데 도문시가지도 둘러볼겸 기어이 조수석에 앉겠다고 해서 주덕해주장이등영초동지와 함께 뒤좌석에 앉은채 도문시가지로 들어서게 되였다고 한다. 그런데 차가 쏘련홍군기념비부근의 로타리까지 왔는데 인분을 퍼담은 수레 여러대가 앞을 막고 지나가게 되였다는것이였다. 주덕해주장이 차에서 내려서 인분수레를 멈춰세우려 하자 주은래총리께서는 말리시면서 시간도 급하지 않은데 인분수레를 먼저 지나보내라고 해서 여러 대의 인분수레가 모두 길을 지나갈 때까지 총리가 타신 하이야가 기다려주셨다고 한다.


주총리가 남겨놓은 감격적인 사연과 이야기들이 어찌 이뿐이랴. 마음속에 항상 인민군중들을 품고 사신 주은래총리는 전국의 방방곡곡, 발길이 닿는 곳마다에서 사람의 심금을 울려주는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무수히 남겨놓았던것이다.

황범송선생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주총리를 수행하면서 사진찍던 때를 생각하면 주은래총리의 위인됨과 인격적매력에 감탄하게 되며 주총리가 과거는 물론 현재도 미래에도 영원히 만백성의 애대를 받는 인민의 훌륭한 총리이고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경애하는 총리이지 않을수가 없다》고 감개무량해서 말했다.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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