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고독사(孤獨死)란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된것이 불과 2-3년전의 일이다. 일본에서 독거로인들의 고독사가 사회의 문제로 대두되고있다는 기사였는데 그때 퍼그나 충격을 받았었다. 일본에서는 로인이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사가 한해에 1만5천여명으로 집에서 숨을 거둔후 며칠, 지어는 수개월만에 시체가 부패된채 발견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고독사 방지 서비스” 상품까지 등장, 서비스시스템이 홀몸로인이 사는 집의 전기사용량, 온도변화 등을 분석해 지정된 외부인에게 이상유무를 이메일로 알려준다고 한다.
우리의 삶과는 거리가 있어보이던 일본의 이러한 상황이 슬밋슬밋 우리한테도 현실로 다가오고있다는 사실을 일전 피부로 느끼고 또한번 충격에 휩싸였다. 중학동창들의 모임에 갔다가 졸업후 거의 처음 보는 “생소”한 모습의 동창을 만났는데 안색이 어두운것이 파티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술기운이 무르녹고 장내가 소란스러워지자 옆의 친구가 저 친구 이번에 모친상을 당해 외국에서 왔는데 홀로 외롭게 지내던 모친의 림종을 보지 못해 때늦은 회한에 모대기고있다고 귀띔해주었다.
그래도 그 동창의 모친은 어쩌구려 병원까지 호송되여 타인이라도 지켜보는가운데 운명을 하였다니 자식으로서 어느 정도 위안이라도 되겠으나 최근 조선족이 많이 집거한 성내 동부산구 모 현에서도 독거로인이 집에서 홀로 쓸쓸히 생을 마감한후 때늦게 시체로 발견되는 사례가 발생한다니 타인으로서도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다. 한면 결과적으로 이런 비극적인 상황이 문명의 발달과 정비례를 이루는듯 하여 씁쓸함을 금할길 없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정세태가 삭막해진다는 “론리”는 어디까지나 착각일뿐 성립될수 없으며 이러한 착각은 반드시 시정되여야 한다.
현재 국내의 IT 기술로도 “고독사 방지 서비스”같은 상품 도입이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독거로인들에게는 그래도 사람의 목소리, 발길이 더 필요로 하지 않을가? 전화 한통이라도 더 드리고 자신의 취미생활을 적당히 줄이면서 주말에 한번이라도 더 찾아가 말동무를 해드림이 독거로인들에게는 더 바랄것 없는 최상의 서비스가 아닌가 한다. 이른 아침 짧게 오가는 통화가 전부라 할지라도 독거로인에게는 하루종일 들떠있을수 있는 “흥분제”로 작용하기때문이다.
고독사, 더는 우리에게도 생소하지 않지만 그대로 만연하도록 방치할수는 없다. 이를 예방할수 있는 “방역사”는 다름아닌 식구들이고 자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