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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고향아닌 고향 더불어 소학교와 느티나무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4.09.02일 15:58
(상지) 리근

  나는 내가 태여나지도 않고 그닥 오래 살지도 않은 얼갑(二甲)이란 편벽한 산골마을을 고향으로 생각한다. 한것은 내가 코흘리개때 우리 집이 이곳에 이사와 나는 소학교를 여기에서 마무리며 잊을수 없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묻었기때문이다.

  40여세대가 오붓이 모여 사는 이 산골마을에는 조선족이 12세대뿐이였다. 하지만 조선족소학교가 있었는데 학생이 고작 16명이고 교원은 남경우선생님 한분이였다. 교사는 비록 두간짜리 초가집이지만 황토로 벽을 말쑥하게 바르고 지붕을 벼짚으로 깔끔히 덮은데다 특별히 느티나무 한그루가 소소리 자라 더없이 아담했다. 학교는 동구밖에 자리잡고 있는데 남선생님은 학생들을 데리고 학교 운동장 주위에 사과, 배, 오얏, 살구 등 과일나무를 정히 심고 정원에 화단도 만들었다. 하여 봄이 되면 학교는 꽃밭속에 묻히군 했다. 선생님은 또 문교과와 교섭해 소형발풍금, 아동용축구공, 교학용주산 등을 마련하고 철봉은 자체로 만들었다. 선생님은 우리를 두개 학년으로 갈라 한 교실에서 어문, 산수, 음악, 도화 등을 가르쳤다. 학교가 잘 운영되자 이 산골마을은 학생들의 랑랑한 글읽는 소리, 구성진 노래소리, 깔깔거리는 웃음리가 고요를 깨뜨렸다.

  해마다 6.1절이 되면 선생님은 학생들을 조직해 운동대회를 열곤 했는데 학부모들과 한족들도 오구작작 모여들었다. 하여 학생들의 각종 열띤 경기는 물론 부녀들의 동이 이고 달리기, 남정들의 새끼꼬기, 로인들의 담배불 붙이기 등도 있었다. 학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경기에서 공책이나 연필 등 상품을 타면 기뻐서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선생님은 봄과 가을이면 학생들을 데리고 소풍을 가군 했다. 한해 봄에는 뾰죽산의 돌벼랑 틈사이에서 부엉이새끼를 한마리 잡았는데 선생님은 우리를 보고 학교에 가져다 기르자고 했다. 우리가 산에서 돌아오자 선생님은 느티나무 밑에 판자로 부엉이우리를 만들었다. 우리는 하학만 하면 참새, 개구리, 쥐 등을 부지런히 잡아다 부엉이에게 먹였다. 이러자 어른들도 들에서 일하며 미꾸라지, 붕어딱지 등속을 잡아 애들 손에 쥐여주군 했다. 한번은 우리 아버지가 뱀 한마리를 잡아와 "부엉인 이런 독사도 무서워하지 않고 먹는다"고 하셨다. 내가 뱀을 가져다 부엉이에게 주었더니 이놈은 뱀대가리부터 통채로 삼켰는데 이튿날 아침에 보니 새하얀 뼈다귀만 소복히 토해놓았다. 정말 희한한 일이였다. 선생님는 우리를 보고 "부엉인 주로 쥐를 잡아먹기에 익조이므로 잘 보호해야 합니다"라고 하셨다. 이때 우리는 익조가 무엇인가를 알았다.

  부엉이가 크자 선생님은 이놈에게 비행련습을 시켰다. 부엉이가 제법 잘 날자 선생님은 우리 앞에서 "자, 산으로 가거라!"며 부엉이를 허공에 힘껏 뿌렸다. 그런데 이놈은 멀리로 날아가지 않고 창공을 몇바퀴 배회하고는 느티나무우에 앉아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이러자 선생님은 부엉이를 향해 멀리로 날아가라고 손짓했다. 그런데 이놈은 이걸 자기 보고 오라는가 생각했는지 우리 곁으로 살포시 날아내렸다. 그 후에도 이런 일을 여러번 거듭하다 선생님은 우리를 데리고 동산에 올라가 이놈을 하늘 높이 던지고는 분주히 산을 내려왔다.

  얼갑이란 이 산골마을은 살기 좋은 곳이였다. 조선족들은 제각기들 벼농사를 지어 사시장철 이밥을 배불리 먹었는데 집집마가 드문히 막걸리를 담그고 설이 되면 몇집이 합쳐 송아지를 까눕혔다. 그리고 봄에 보막이를 할 때면 남녀로소가 다 출동했는데 소달구지에는 생돼지, 쟁기, 솥, 밥상, 그릇 등속을 싣고 로인들을 태웠다. 보에 도착하면 나무를 베여다 보를 막는 사람, 돼지를 잡는 사람, 음식을 장만하는 사람... 모두들 분주히 돌아갔다. 그러다 점심때가 거의 되면 삶은 돼지대가리가 통채로 오른 제사상을 차리고 년세가 가장 많은 박로인이 나서 "거룩하신 하느님이시여, 올해도 풍년을 하사하옵서소"라고 한다. 제사를 마치면 사람들은 풀밭우에 가마니를 펴고 빙 둘러앉아 서로 술을 권하기도 하고 음식을 나누기도 하며 떠들썩 한다. 술이 거나해지면 어른들은 양재기를 두드리며 타령을 구성지게 뽑기도 하고 일어서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이때면 우리 조무래기들은 높디높은 나무에 기여올라가 까치둥지를 들추기도 하고 머루덩쿨을 잘라 거기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노르무레한 물을 병으로 받기도 했다.

  재미나는 일은 이것뿐이 아니다. 겨울에 강에 나가 스케이트를 타다 얼음이 꺼졌는데 마침 샘터라 물이 차지 않아 고기들이 욱실거리던 일, 산에 올라가 아래로 설매를 지치다가 곤두박혀 눈사람이 된 일, 도랑에 고기발을 놓고 지키다가 밤이 되면 둔덕의 초막에서 새우잠을 자던 일, 들에 나가 옹노를 놔 꿩이나 산토끼를 종종 잡던 일... 모두가 잊을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학교 옆의 느티나무는 잎이 무성해 넓다랗게 그늘을 드리웠다. 로인들은 그 밑에 모여앉아 한담도 하고 장기도 두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냈다. 들에서 돌아오는 일군들도 여기에서 다리쉼을 했다.

  로인들의 말에 의하면 1942년 항일시기에 조선족 항일투사 한분이 놈들에게 붙잡혀 이 느티나무에 결박당해 혹형을 당했단다. 그때 느티나무도 줄기에 상처을 입었는데 그 상처에서 '눈물'이 오래동안 줄줄 흘러내렸단다.

  1997년 내가 마연향정부에서 사업할 때 일이다. 한번은 차를 타고 흥도하자로 가던 중도에서 차머리를 돌려 얼갑(지금은 약진촌)으로 향하였다. 멀리서부터 우뚝 솟은 느티나무가 한눈에 안겨왔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마을에 들어서보니 게딱지같던 초가들은 거지반 없어지고 그자리엔 벽돌집들이 보란듯이 서있었다. 그런데 섭섭한건 조선족이 한집도 없는데다 학교자리에 벽돌공장이 들어선것이다. 하지만 느티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 서운함을 다소나마 덜수 있었다. 내가 갈 길은 안가고 이곳에서 시간을 끌자 운전수가 왜선가고 물었다. 나는 이곳은 내가 어릴 때 잔뼈를 굵힌 고향이라고 떳떳이 말했다.

  아, 고향 아닌 나의 고향, 꿈속에서도 찾아오는 학교와 느티나무, 이곳은 과거 나의 요람이였으며 이 느티나무는 마을의 상징이고 력사이며 고향을 지키는 초병이였다. 나는 이곳을 떠나면서 마음속으로 느티나무가 영원히 푸르싱싱하기를 삼가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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