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앱 | | 모바일버전
뉴스 > 문화/생활 > 문학/도서
  • 작게
  • 원본
  • 크게

.수필. 기우제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4.09.02일 15:58
(연길 )김인덕

  (흑룡강신문=하얼빈) 1941년 7월 중순, 두만강상류에 자리잡은 나의 고향 덕화진 룡연촌은 마을이 생겨나서부터 초유의 가뭄이 들었다. 근 열흘간 폭양이 사정없이 퍼부어 혀를 빼물고 자라야 할 곡식들이 목마름에 초들초들 시들어 가고있었으니 마을사람들의 속도 새까맣게 타들어가고있었다. 하늘을 믿고 짓는 농사인지라 마을사람들은 하늘만 쳐다보면서 이제나 저제나 비를 내리기만을 두손 모아 기도할뿐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근대의 룡연촌의 력사는 청조의 봉금령이 해제된 150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의 26대 임금 고종황제를 호위하던 김수문장이 룡연에 이주하여 토지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두만강연안에는 꽤나 큰 늪이 있었는데 바로 이 늪에서 룡이 승천했다 해서 룡연이란 지명도 붙여진것이다.

  룡연촌의 초기 이주민들가운데는 조선북부 6진의 경성군과 명천군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마을에는 지주가 따로 없이 다들 똑같이 밭을 나눠 경작하면서 두레농사를 지었다. 강수량이 풍부하고 땅이 비옥한데다 사람마다 근면하여 가근방에 부유하기로 소문나고 마을은 화목하기 이를데 없었다.

  각설하고 가뭄이 지속되면서 곡식들이 모두 고사하게 생겼으니 이제 더 방도를 대지 않으면 일년농사를 망칠 판국이였다. 하여 년장자인 현두연을 위수로 한 마을의 어른들이 모여서 대책을 론의하였는데 두만강을 따라 북쪽으로 5리가량 상거한 "쾌상바위"에 가서 기우제를 지내는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기일이 되는 날, 마을에서는 백여근이 훨씬 넘는 돼지 2마리를 잡았다. 기우제에 참여하는 주민이 많으면 많을수록 공동 기원의 효력이 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속설에서 마을의 남녀로소가 모두 동원되였다. 현두연을 비롯한 마을 장정들이 농악을 울리며 진두에 서고 천여명되는 마을사람들이 호호탕탕하게 렬을 지어 쾌상바위로 향했다. 두만강 건너 조선 지초리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쪽배를 타고 건너와 성세를 이루었다.

  "쾌상바위"에 도착한 현두연로인은 다른 세 장정과 함께 돼지피를 받아가지고 "쾌상바위"에 발라놓았다. 그동안 바위아래에서 마을사람들은 북을 치고 쟁반을 두드리면서 응원하고 일부는 제사상을 차리느라고 법석거렸다. 이윽고 현두연네 일행이 "쾌상바위"에서 내려오자 강신례,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산신례를 질서있게 치르고 삶은 돼지고기와 차려온 음식을 먹는 한편 성수나는 농악놀이를 벌렸다.

  기우제가 령험했는지 얼마후 과연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신바람에 들린 마을사람들은 옷이 후줄근히 젖는줄도 모르도 농악놀이에 흠뻑 취했다. 물론 그해에 대풍이 든것은 더 말할것도 없다.

  그후 마을사람들은 련속 몇해간 계속하여 기우제를 지냈으나 새 중국이 창립되여서부터 기우제가 자취를 감추었다가 1980년대초, 호도거리농사를 시작하면서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하지만 온마을이 동원되여 련속 몇년간 기우제를 지냈으나 별 효험을 보지 못하자 기우제는 영영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지금은 마을에 거동이 불편한 몇십명의 로인들만 남게 되어 기우제를 더는 운운할수조차 없게 되었다.

  1980년대초부터 시장경제의 흐름을 타고 조선족은 100여년간 지켜왔던 삶의 터전을 버리고 중국내 대도시로, 한국, 일본, 러시아로 대거 이주하였다. 조선족은 왜 쉽게 보따리를 싸고 본민족의 정체성을 헌신짝처럼 버릴가. 중국조선족공동체의 해체와 붕괴를 두고 많은 지성인들이 뇌즙을 짜서 그 원인과 해법을 내놓고있지만 현실과는 괴리가 있어 조선족이주의 급물살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나는 젊은 시절에 중국의 고궁을 둘러보고 그 방대한 규모와 호화스러움에 넋을 빼앗기고나서 조선반도의 궁궐은 보잘것 없으리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나는 십년전부터 한국 서울의 창덕궁, 경복궁, 조선의 개성, 평양 등 지방의 궁전, 력사유적지를 둘러보고 우리 민족의 찬란한 문화력사에 눈을 번쩍 뜨게 되였다. 그리고 함경북도의 산간지대를 두루 돌아보고나서는 타민족의 추종을 불허하는 부평초처럼 떠도는 중국조선족의 이민근성의 원인을 문화인류학, 력사지리학의 시각에서 사고하게 되었다.

  연변조선족 이민 1세대들의 주요한 본고장인 조선의 함경북도는 지정학적으로 조선반도의 정치, 문화 중심과는 거리가 멀고 경제적으로도 소외된 고장이다. 이민 1세대중에는 의병장, 독립운동가, 교육자도 더러 있었지만 거의 대다수가 삶의 터전을 잃고 집을 찾아 헤매는 미아(迷兒)―무국적자들로 토지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치발역복, 귀화입적(薙髮易服,歸化入籍)의 치욕을 감내해야 했다. 한마디로 이민 1세대들은 "조선문화"적인 요소가 결핍한 생계형과경족속들이였다. 그들은 대부분 문맹이고 조선의 변두리지역에서 살아왔던터라 본민족의 문화전통에 대한 료해가 깊지 못했고 자부심은 운운할 나위조차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년세월이 지나 중국조선족의 문화소질은 대폭 상승하였지만 아직도 생계형에 머물고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고장의 경제수준이 발달한 내지의 경제수준이나 발달한 국가의 경제수준을 초과하지 못하는한 생계형족속들의 이민물결은 결코 멈추지 않을것이며 개인의 영달이나 신분상승은 이룰지언정 전체 민족의 "문화신분상승"을 이루기는 어려울것이다.

  세계상의 대부분 약소민족은 생성, 중흥, 소멸의 단계를 거치는데 유태민족만은 기나긴 고난의 력사행정을 거치면서도 오히려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있다. 전세계적으로 유태인이 차지하는 인구는 0.2%에 불과하지만 노벨상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최강대국인 미국에서 언론과 금용을 장악하고있는 비밀은 무엇일가. 바로 성경과 탈무드이다. 성경이 유대인들의 정신적인 지주라면 탈무드는 유대인들의 지적기반이다. 유대인들이 탈무드를 보존한것이 아니라 탈무드가 유대인을 존속시켜다고 하겠다.

  뿌리가 없으면 뿌리를 지킨다는것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적지 않은 학자들이 중국조선족의 디아스포라에 대해 대서특필하고있지만 중국조선족에게는 아직 디아스포라가 형성되지 못했다. 디아스포라의 가장 주요한 선결조건은 바로 확고한 민족정체성이다. 두가지 문화가 충돌하고 공존하려면 대등한 "사회신분"과 "문화신분"을 갖춰야 하는데 중국조선족은 전체적인 "문화신분상승"을 이루지 못한 미숙아에 지나지 않으며 거퍼 1세대가 지나지 않아 조선족신분은 온데간데 없이 파묻히게 된다. 하여 나는 "조선족아리랑"이란 시를 쓴적이 있다. "산이 많아 아리랑 골이 깊어 아리랑/ 물이 많아 아리랑 곬이 깊어 아리랑/ 잘 익은 김치에 깊이 스민 아리랑/ 된장국 한 숟가락에도 펄펄 끓는 아리랑// 저기/ 산언덕 할아버지 무덤가에 풀꽃이 피고/ 목동의 애꿎은 피리소리 령 넘어갈제/ 노고지리 구름우에 높이 솟아 애꿎이 울면/ 봄물이 오른 처녀의 댕기에 눈물자욱 아리랑// 나그네의 어깨에 걸친 무거운 등짐에 눌려/ 학교 가는 아이의 무거운 책보에 눌려/ 아낙네의 손에 들린 무거운 장바구니에 눌려/ 연길역 떠나가는 기차의 아리랑곡조 애처롭다// 너에게도 있고 나에게도 있지만/ 유독 우리에게만 없는 아리랑/ 비좁은 보따리속에 바리바리 싸들고 가더니/퇴화되여 번식기능을 잃은 조선족아리랑"

  인디안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한다. 원인은 그들이 비가 올 때까지 계속하여 기우제를 지내기때문이라고 한다.

  중국조선족은 인디안인들처럼 무서운 집념과 신앙으로 생계와 생존의 테두리를 박차고 민족정체성을 확고히 수립할 때 디아스포라형민족으로 거듭나고 질적인 "문화신분비약"을 이뤄 유태인처럼 강렬한 뉴대감으로 강력한 네트워크를 형성할것이며 세계 그 어디에 흩어져있더라도 강한 생명력을 지닌 문화민족으로 길이길이 그 맥을 이어갈것이다.

뉴스조회 이용자 (연령)비율 표시 값 회원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 주시면 통계에 도움이 됩니다.

남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여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네티즌 의견

첫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 관련 태그 기사

관심 많은 뉴스

관심 필요 뉴스

모이자114

추천 많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1/3
주세르비아 중국 대사: 습근평 주석 방문, 중국-세르비야 관계의 새로운 시대 열 것

주세르비아 중국 대사: 습근평 주석 방문, 중국-세르비야 관계의 새로운 시대 열 것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풍경(4월 29일 찍은 드론사진) /신화넷 1일에 찍은 중국전력건설그룹이 건설을 맡은 세르비아 국가축구경기장 프로젝트 공사 현장. /신화넷 리명 주세르비아 중국 대사는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서도 중국-세르비아의 두터운 우정은 굳건히 유지

습근평,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회담

습근평,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회담

현지시간으로 5월 6일 오후 습근평 국가주석이 빠리 엘리제궁에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습근평 주석은 중국과 프랑스 수교 60주년에 즈음하여 프랑스에 대한 제3차 국빈방문을 진행하게 되여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두 나라 관계의 소중한 60년 로정

룡정시법원, 휴대전화 불법개조사건 판결

룡정시법원, 휴대전화 불법개조사건 판결

사건 회고 최근, 룡정시인민법원은 피고인 원모1, 원모2, 원모3이 도청 및 사진용 특수 장비를 불법적으로 생산하고 판매한 범죄를 공개적으로 심문 처리하였다. 피고인 원모1은 원모2, 원모3과 함께 2023년 10월 말부터 2023년 12월까지 광동성 혜주시에서 영리를 목적

모이자 소개|모이자 모바일|운영원칙|개인정보 보호정책|모이자 연혁|광고안내|제휴안내|제휴사 소개
기사송고: news@moyiza.kr
Copyright © Moyiza.kr 2000~2024 All Rights Reserved.
모이자 모바일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