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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출장 중이었는데 강남서 담배꽁초 버렸다니…”

[기타] | 발행시간: 2015.02.16일 02:22
하지도 않은 잘못으로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면. 알리바이(현장부재 증명)가 없어 이의신청을 거부당하고 과태료를 내야만 한다면. 이런 일이 수차례 반복된다면.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회사원 김모(32)씨는 2010년 1월 담배꽁초 무단투기로 과태료 처분 통지를 받았다. 서울 강남구는 ‘폐기물관리법을 어겼으니 5만원을 내라’며 고지서를 보내왔다. 김씨는 그달 8일 오후 3시30분 서울 강남구 지하철 2호선 선릉역 인근에서 담배꽁초를 버린 것으로 돼 있었다. 당시 취업 준비생이던 김씨는 거의 집에서만 지냈다. 알리바이를 공인해줄 제삼자가 없었다.

어머니 안모(57)씨는 현장에서 작성하는 위반 확인서를 보여 달라고 했다. 담배꽁초를 버린 사람이 자필로 적었다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는 아들 것과 일치했다. 하지만 필적이 달랐다. 주민번호는 마지막 네 자리를 잘못 적었다가 줄을 긋고 고친 흔적이 있었다. 더욱이 주소와 휴대전화 번호는 틀렸다. 확인서에 적힌 주소는 ‘삼성동 16-3’이었다. 이 주소는 강남구청 앞 도로다. 전화번호는 어떤 중년 여성이 수년째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의를 제기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남구에서 두 번째 과태료 고지서가 날아온 건 8개월 뒤였다. 9월 11일 오전 10시10분 담배꽁초를 버린 것으로 돼 있었다. 장소는 또 선릉역 쪽이었다. 이때 김씨는 경기도 부천의 한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9월 11일이 토요일이긴 해도 선릉역 근처엔 간 적이 없었다.

위반자가 쓴 주민번호는 이번에도 한 차례 고쳐져 있었다. 글씨체는 첫 번째 위반 확인서와 같았다. 김씨 명의를 도용한 게 같은 사람이라는 얘기다. 두 번째 확인서에는 연락처가 없었다. 주소는 맞지만 단속직원이 주민번호를 조회해 적은 것이었다. 안씨는 구청과 다퉈보기 전에, 내지 않고 있던 첫 번째 고지서로 착각하고 과태료를 납부했다. 구청 직원은 “이미 낸 과태료는 돌려받을 수 없다”고 했다. 억울하고 약이 올랐지만 다 잊기로 했다.



담배꽁초 무단투기로 과태료 처분을 받은 김모씨의 출입국사실증명서(왼쪽 사진). 지난해 6월 30일 출국해 9월 28일 입국했다고 기록돼 있다. 반면 폐기물관리법 위반 확인서 앞면(가운데 사진)에는 그가 한국에 없던 지난해 8월 13일 서울 테헤란로에서 담배꽁초를 버렸다고 적혀 있다. 단속직원이 확인서 뒷면에 기록한 휴대전화 번호와 주소는 김씨의 것이 아니다. 김씨 가족 제공

그런데 지난해 8월 강남구에서 세 번째 과태료 고지서가 날아왔다. 그달 13일 오전 8시58분 서울 테헤란로 64길 18 스타벅스 앞에서 배수구에 담배꽁초를 버린 것으로 돼 있었다. 이번에도 선릉역 인근이었다. 위반 확인서에는 같은 필적으로 김씨 이름과 주민번호가 적혀 있었다. 휴대전화 번호는 다른 사람 것이었다. 주소는 ‘부천시 송내구 한천로’로 돼 있는데 부천에 송내구는 없다. 한천로는 서울에 있는 도로다. 한천로 이하 주소는 단속직원이 추가로 적은 것이었다.

확인서에는 ‘(위반자가) 키 157㎝에 왜소하고 안경을 썼다’고 적혀 있었다. 김씨는 키 164㎝, 몸무게 70㎏이다. 2010년 라식 수술을 한 뒤로 안경을 끼지 않는다. 무엇보다 담배꽁초를 버렸다는 날에 중국 톈진으로 출장 가 있었다. 세 차례 위반 확인서에 위반자가 작성한 인적사항과 서명은 모두 같은 필체였다. 김씨가 아닌 다른 사람, 김씨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아는 누군가가 담배꽁초를 버리다 적발되자 김씨 인적사항을 댄 것이다.

안씨가 아들의 출입국 사실 증명서를 들이밀자 강남구는 과태료 처분을 취소했다. 하지만 앞서 낸 과태료는 돌려받을 수 없었다. 행정소송을 해야 하는데 소송 제기 기간(6개월)이 지난 뒤였다. 안씨는 신연희 강남구청장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2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패소했다.

김씨처럼 신분을 도용당해 억울하게 과태료를 무는 사례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거의 전 국민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나라, 신분 도용 범죄가 만연한 한국사회의 단면을 이 사건은 단적으로 보여준다. 무고한 신분 도용 피해를 줄여야 하는 당국의 노력은 충분치 않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김씨의 경우 단속직원은 위반자가 적은 연락처가 맞는지 현장에서 확인하지 않았다. 이의를 제기했을 땐 단속직원 대질, 필적 감정처럼 비교적 단순한 검증 시도도 하지 않았다. 박창호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행정 당국이 법 위반자 말만 믿고 과태료 처분을 내린다는 건 너무도 안이한 자세”라며 “사회 변화에 맞춰 신원 확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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