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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길을 찾은 농장주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5.03.18일 09:12

성화조선족향 성광촌 리창근 지부서기

  (흑룡강신문=하얼빈)박용수, 김기선 특약기자= 화천현 성화조선족향 성광촌의 리창근(50세) 지부서기는 한국에 두번 다녀왔고, 일거리를 찾아 상해로 떠났다가 돈이 떨어져 길거리를 헤매기도 했었다. 대도시 진출과 해외 나들이에서 갖은 고생을 하다 귀농 창업의 꿈을 꾸게 되였으며 끝내는 자신의 길을 찾은 농장주이다. 그는 촌민들을 이끌어 공동치부도 실현했다.

  촌사무실에 걸린 페넌트

  주거인구가 50명도 안되는 성광촌의 마을회관에 들어서니 페넌트(锦旗)가 주렁주렁 걸려있었다.

  ‘빈곤퇴치의 모범’, ‘백성을 친인처럼 생각하는 간부’, ‘인민의 공복’…

  아래 증정자 이름을 보고 우리는 놀랐다. 모두 본촌의 촌민들이였다. 영예증서보다 더 의미 깊은 촌민들의 두터운 신뢰였고 찬사였다.

  리창근지부서기는 몇년전부터 ‘창근벼농업합작사’를 설립하고 촌의 몇몇 외토리들을 끌어들여 고락을 같이하며 그 득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촌민들의 급한 일에 지부서기 촌장이 모는 차는 촌의 공용차나 다름없었다. 촌로년협회에서 마련한 하루 한끼 무상급식도 독거로인들에게 제집같은 편리를 주고 있었다. 지난 겨울 촌에서 간부를 새로 선거할 때 그는 100% 촌민들의 지지를 얻었다.

  귀농, 후회없는 선택

  성화향에서 리창근이란 이름은 전부터 인기가 높은것이 아니다. 1981년도 성화초중을 다닐 때 그는 키가 작고 힘이 약한데다 ‘6장 포자’라는 작고 초라한 동네에서 살았다고 가끔 큰 동네 아이들한테 왕따를 당하기도 했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그는 촌에서 제집농사에 몰두한다거나 다른 촌의 같은 또래들처럼 창업이나 출국은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그는 성품이 착했고 령리했으며 사리에 밝고 자기생각과 포부가 따로 있는 젊은이였다. 1999년 그는 젊은 나이에 입당했고 처음으로 촌을 벗어나 바같 세상을 구경하기도 했다. 2008년 그가 성광촌의 지부서기로 당선되었 때 사람들은 그를 한국에 갔다가 안되니 촌에 돌아와 대수 농사나 지으며 득이나 넘보는 말석간부 쯤으로 알고 있었다. 그는 그때 귀향 창업의 꿈을 품고 있었다.

  그후부터 6년이 지난 오늘 그는 56헥타르 논을 다루는 농장주의 큰 꿈을 이루어냈다. 그의 농장은 투자금이 100만원, 년간소득 50만원, 재산이 150만원 됐다. 쌀농장에 대형창고 3채, ‘성광표’ 쌀매장 2곳, 운반용 자동차 3대, 자가용 2대, 농전용트럭트, 지게차 논두렁조성기, 이양기, 직파기, 제초기, 비료 농약살포기 등 농기구가 없는것이 없었다. 농기계 보조금만 30만여원을 받았다. 그의 재산은 호도거리전 이 촌의 총재산의 배를 훨씬 초월했다. 그에게 창업 6년이란 시간은 길지 않지만 걸음마다 폭발적인 도약이였고 삶의 화려한 변신이였다.

  “나는 한국 두번이나 나가 돌아보았지만 고향떠나 막벌이 삶에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2001년 봄, 그는 상해 소주에 일자리 찾아 따났다가 돈이 떨어져 거리바닥을 돌며 고생을 했었다. 잠자리도 없었고 밥사먹을 돈도 없었다. 너무 배가 고파서 아끼고 아끼다 남은 마지막 돈 20원으로 작은 만두 다섯개를 사먹고 그집에서 먹고 자며 잡부일을 했다.

  “내 평생에 돈이 없어서 하루반 꼬박 굶었던 그때가 제일 가련했고 천했습니다.”

  그는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말을 더 잇지 못했다. 그때로부터 귀농창업에 비장한 결심을 다짐했다. 그는 “한국 가서 일하는 만큼 고향땅에서 땀흘리면 얼마든지 성공의 희열을 맛볼수 있다”고 확신했다.



  생산과 류통을 동시에 틀어쥐다

  리창근 지부서기의 쌀농장 꿈은 처음부터 순조롭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1999년 그는 논 면적만 늘구면 수입이 그만큼 오를 거라고 생각하고 촌에서 14헥타르 논을 부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해 농사는 침수피해를 입고 5만원의 손실을 보았다. 이듬해부터 농사는 괜찮게 되였지만 남는것이 별로 없었다. 토지도급비, 인건비, 농약, 비료 등 생산원가가 많이 오르면서 실패도 잇달았다.

  그는 창업 노하우에 머리를 쓰기 시작했다. 농산물 부가가치를 높일수 있는 브랜드 육성과 설비, 기술, 정보 그리고 시장 현지화가 모두 그가 추구하며 펼쳐낸 푸른 설계도였다.

  그는 우의농장에 가서 40헥타르 논을 임대 맡았다. 마을의 16헥타르 토지는 6여가구와 함께 ‘창근벼합작사’를 설립해 다루고 있다. 우의농장 토지는 임대비만 해도 성화토지보다 헥타르당 4천원 저렴하데다 토질이 좋고 기타 비용도 적당하여 꿔먹고 알먹는 격이다.

  또한 쌀생산 원가를 낮추기 위해 대면적에 점종(点播)직파를 했다. 농약을 적게 살포하고 기계제초를 했다. 수확고는 헥타르당 6500킬로그램에 달했다.

  “내 농사는 내가 짓고 내 쌀은 내가 가공해서 팔아야 내것 입니다”

  그는 생산을 중시했을 뿐만아니라 가공과 류통과정에서 생기는 리익도 모두 챙긴다는 전략이다. 자신이 생산한 벼를 임가공한 후 자신이 설계한 포장박스에 담아 자신이 경영하는 매장에서 판매했다. 가목사시에서 쌀매장 2곳을 경영하는데 한달에 4만5천킬로그램을 판매, 1년에 50만킬로그램씩 팔았다.

  대농장주의 꿈은 더 커가고 있다

  창근쌀농장은 생산, 가공, 판매가 선순환으로 이어지면서 그의 독자적인 창업행보는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쌀매장에서 한해에 5만근 막걸리가 판매되자 그는 입쌀가루로 만든 식품이 떠올랐다. 그는 전촌의 논을 몽땅 경영하고 목축장도 꾸려 땅을 살리고 … 그가 생각하는것은 록색식품 종합생산단지이다.

  성회향에서 리창근이란 이름은 숲속에 묻혀 보이지 않던 나무가 자꾸자꾸 자라서 이젠 큰 그늘을 이루는 듯하다. 사람들은 그를 보통 농사군으로만 알고 있었다. 회의때마다 늘 빠지지 않으면 지각을 해서 꾸중도 들었던 말석간부였다. 그러나 오늘은 열정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실력파, 경영인이 되였다. 이른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쌀농장에서 맴돌아치며 술맛을 모르고 놀음을 모르는 단순한 인생을 살아야했다. 후에 향 당위서기가 그를 리해 해준것이 너무 고마운 일이 되였다.

  오늘도 리창근 지부서기는 대농장주의 꿈을 꾸며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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