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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수출에 발벗고 나서다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5.03.12일 09:39
해림시무해농업부산물유한회사 김정남사장

  (흑룡강신문=하얼빈)리흔 기자= 90년대부터 농산물 수출에 발을 들어놓은 해림시무해(茂海)농업부산물유한회사 김정남(50) 사장은 일 처리에 바람처럼 신속하고, 물 흐르듯 술술 풀리는 화술은 세련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느낌을 주는 스타일이다.

  90년대 초반은 조선족 동포사회에서 한국행 돈벌이 바람이 불어닥친 시기이다. 당시 김 사장도 심천 통상구를 통해 한국에 가려고 심천에 갔다가 우연한 기회에 수입이 꽤 짭짤한 약재 장사를 접촉하게 되었다. 김 사장은 중국에서도 큰 돈을 벌수 있는데 왜 타향에 가서 고생하겠느냐며 한국행을 접고 국내에서 약재 장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호황도 잠깐이라고 약재 장사도 어렵게 되었다.



김정남 사장이 생산 현장에서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

  93년 약재 장사에서 번 밑천으로 농산물 수출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최초에는 란주 등 지역에서 고사리 등 농산물을 구입해서 가공공장에 맡겨 반제품으로 가공한후 한국으로 수출했다. 당시 한국에 년간 100여톤씩 수출했다.

  김사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브랜드를 달고 수출하고 싶은 야심찬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96년에 천진에서 무해무역회사를 등록하고 자기만의 브랜드로 미래를 열어가려 했다.

  고사리는 질에 따라 1톤에 4만원에서 7만원까지 가격 파동이 컸다. 어떤 해에는 집세, 인건비 등을 빼면 별로 남는것이 없었다. 김 사장은 새로운 영역을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일본 한국 등 지역에서 무우말랭이 수요가 대폭 늘었다. 김 사장은 이 상업 기회를 틀어쥐고 운남, 청도 등 지역을 돌아다니며 무우를 회수하고 개인 공장에 맡겨 가공 건조 시킨 다음 한국으로 수출하는 중간 도매 장사를 했다. 이 와중에 김정남 사장은 상업 기회를 발견했다.

  당시 무우를 건조시킨 공장은 운남과 청도 등 지역이 많았고 이런 공장에서는 무우말랭이를 가공함에 있어서 아무리 빨라도 10월 말에 가서야 납품할 수 있었다. 일본, 한국 등 지역은 9월에 접어들자 마자 무우말랭이를 주문하기 시작한다. 김 사장은 9월~10월 사이의 무우말랭이 시장 공백기를 파악했다.

  수요가 많지만 공급이 적기에 가격이 높았다. 전후 불과 두달 차이 였지만 수요 공급의 원칙에 따라 가격차이가 크게 나타났다. 이는 천재일우의 기회라 놓칠 수가 없었고 또한 가능성이 보이면 확실한 준비작업과 함께 실천에 옮겨야 하는 성격이라 김 사장은 당장 이라도 공장을 세워 생산에 투입하기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공장 지점을 정하는 일이 골치거리로 됐다.

  당시 그는 동북의 무우도 달콤하고 별맛이니 고향에 돌아가 투자하고 공장을 세울 계획이였다.그러나 김 사장의 친구는 운남이나 청도에 공장을 세우면 일년 사계절 생산할수 있지만 동북으로 돌아가면 겨울이 길어 1년에 두어 달 밖에 생산하지 못하니 운남이나 청도에 공장을 세울것을 건의했다.

  김 사장은 두어 달만 일해도 남방에서 반년 일한 리윤과 맞먹으니 사시장철 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고향에 돌아가 공장을 설립 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해진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고향에 대한 자긍심 하나로 김 사장은 2001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회사를 설립하고 공장을 세웠다.

  정작 공장을 세우려니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최초에 70만원 예산으로 시작한 일이였는데 결국 400만여원이 필요했다고 한다. 거액의 자금 앞에서 그는 앞길이 막막한 느낌이 들었고 최초의 선택이 틀렸나 고민하기도 했었다. 김 사장은 자신이 제일 힘들때 바로 가족과 친구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었다고 한다.

  자금을 절약하기 위해 무우말랭이 건조기도 형님과 함께 손수 만들었고 친구들도 하나 둘씩 발벗고 나서 자금을 모아 주었다.

  김 사장은 공장 설립초기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오늘날의 자신도 없다고 한다. 당시 친구한테서 돈을 빌릴때는 리자가 없을 뿐더러 차용증 마저도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믿음이 컸기 때문이다.

  “가격은 협의 할수 있어도 품질은 의논 할 여지가 없다’는 김 사장의 경영 신념은 1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변함이 없다.

  김 사장은 “책임과 신뢰가 없으면 기업을 할수 없다면서 현재 합작하고 있는 바이어들은 모두 10년 이상의 단골이다”고 말했다.

  년간 수출액 200만 달러, 100여명 직원에 300여 헥타르 무우재배단지를 보유하기까지 혼자의 힘이 아니라 가족과 친구, 그리고 직원들의 덕분이라고 김 사장은 말한다.

  김 사장은 사업에 대한 열정이 불타 올랐는데 보는 사람까지 가슴 뜨거워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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