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연 명예기자와 함께 떠나는 '중국기행' (제1편)
"CCTV.com 한국어방송 선정 중국통 블로거"
▲ 베이징(北京)에서 고속열차로 3시간 가량 달려 도착한 허난성(河南省) 정저우시(郑州市)역의 모습.
[CCTV.com 한국어방송]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에서 고속열차(高铁)로 3시간 가량 달려 도착한 허난성(河南省) 정저우시(郑州市), 이곳에서 버스로 2시간을 소요해 도착한 루이현(鹿邑县)에는 중국 도가 사상의 아버지 노자(老子, 기원전 571~기원전 471)선생의 생가가 보존돼 있다.
매년 무서운 속도로 정치·경제·사회 등 다방면에서 고속 성장을 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노자 선생의 혼이 잠들어 있는 이곳 루이현만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오래전 중국 고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터덜거리는 시골 버스와 번호판과 미터기 없이 오로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흥정만으로 운행하는 수많은 택시들 가운데 한 택시 기사와의 흥정을 마친 뒤, 루이현 속에서도 가장 ‘루이현스러운’ 노자 생가가 자리한 태청궁(太淸宮)으로 향한다.
5~6시간 쉼 없이 달려온 터라 온 몸이 지쳐있는 나는 "이 때다" 싶어 택시 창문을 한껏 열어제끼고 들어오는 봄 바람에 몸을 맡긴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 태양궁 광장에 마련된 노자 상.
20여분 달려 도착한 태청궁 근처에는 이곳이 노자의 생가라는 사실을 알려주려는 듯 높이 솟은 노자 상이 반긴다.
높이 18미터, 둘레 3미터 규모의 노자 상에 세겨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The Greatest Philosopher)'라는 글귀가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 노자상 앞에 마련된 광장에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는 노점상이 인상깊다.
지난 1988년 조성된 백옥의 노자상 앞으로 약 50미터 가량 길게 뻗은 광장에는 각종 분식 거리와 장난감을 판매하는 노점상들이 즐비하다. 물건을 판매하려는 상인들 사이를 헤치고 태청궁 입장권을 발권한 후에야 조용한 궁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 태청궁으로 들어가는 입구
60위안(약 1만2천원)이라는 입장료 덕분일까, 궁에 들어서자 비로소 조용한 평화가 엄습해온다. 아마도 60위안이라는 비교적 높은 금액의 입장료가 바깥 세상과 태청궁을 분리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 뒤, 노자 생가가 자리한 궁 안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태청궁은 루이현 중심에서도 동쪽으로 5㎞ 떨어진 타이칭촌(太清村)에 자리한 도가 사원이다.
▲ 태청궁 내부 모습.
지난 165년 한나라 초기에 지어져, 노자묘(老子廟)로 불리다, 당나라 현종 때 태청궁으로 변경돼 불려지기 시작했다. 총 48만㎡ 규모의 태청궁은 전전(前殿)과 후전(後殿)으로 구분돼, 오랜 세월을 거치며 훼손과 복원 및 증축을 반복, 오늘날의 형태를 유지해오고 있다.
전전의 주요 건축물은 태극전(太極殿)과 칠원전(七元殿)·오악전(五岳殿)·남투전(南鬥殿)·허무전(虚無殿)·청정각(淸靜閣) 등이 있으며, 후전에는 주요 건축물은 삼성모전(三聖母殿)·와와전(娃娃殿) 등이 있다.
▲ 구룡정(九龍井)의 모습
궁 중앙에는 노자가 태어났을 때 9마리의 용이 물을 내뿜어 목욕을 시킨 곳이라는 전설이 담긴 구룡정(九龍井)이 있고, 궁 옆에는 당나라 현종(玄宗)의 친필인 '도덕경주비(道德經注碑)'와 송나라 진종(眞宗)의 글을 담은 비석 등이 보존돼 있다.
▲ 당나라 현종(玄宗)의 친필인 '도덕경주비(道德經注碑)'와 송나라 진종(眞宗)의 글을 담은 비석
또한 궁 북쪽에는 승선대(升仙臺) 또는 배선대(拜仙臺)라고 부르는 벽돌로 만든 원형 구조물이 있는데, 이곳에서 노자가 신선이 되어 승천했다고 전해진다.
▲ 태청궁 내부에 보존된 노자 생가의 모습.
노자 생가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에 눈길 닿는 곳 모두 평지다. 그야말로 '중원'의 한 복판에 노자 생가가 자리하고 있으니, 이곳에서 나고 자란 노자 사상이 끝도 없이 깊고 심오한 이유를 이곳에 와서야 찾은 듯하다.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평야와 지평선 끝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자니, 노자 사상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도는 비어있어 사용하니 넘치지 않는 것 같다(道沖而用之, 或不盈也)'는 말이 떠오른다.
도는 퍼내도 퍼내도 끝이 없고 아무리 써도 넘치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이것이야 말로 날로 각박해지는 사회 속에 한 치의 여유도 갖기 어려운 현대인들에게 가장 큰 위로로 다가온다.
▲ 노자 생가가 보존된 태청궁 주변으로 지는 노을이 인상 깊다.
자칫 '돈'으로 표상되는 물질 만능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에 쓸수록 마르는 '돈'보다는 쓸수록 채워지는 '도'의 존재가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노자 선생이 뜻하는 세상이 아닐까.
광활한 중원의 중심에 있는 노자 선생의 생가를 뒤로하며 유구한 역사와 함께 해온 노자 사상의 깊이와 오묘함을 배우고 이번 여행의 첫 일정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