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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속의 60년》-망각된 자치주성립일의 기억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2.05.09일 15:47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 60돐 특별기획-《기억속의 60년》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경축대회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서 열렸나?


연변조선족자치주(당시 연변조선민족자치구)가 1952년 9월 3일에 연길에서 성립되였다는 사실은 모두들 잘 알고있다. 그러나 보다 구체적으로 자치주창립경축대회가 9월 3일의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서 열렸는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고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것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 60돐을 맞아 본지가 기획한 《기억속의 60년》특별기획의 인물, 사건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기자는 자치주성립의 날인 1952년 9월 3일의 기록들이 력사자료들마다 대동소이하게 차이점들이 있는것을 발견하고 혼란을 느꼈다.


례하면 어떤 문사자료들에서는 자치주창립의 날 자치주경축행사 장소가 연길시의 서광장(현 연길복무청사부근)이라했고 어떤 자료들에서는 연길인민광장(당시 공원에 있던 운동장, 현 연길공원 화원자리)이라고 하는 등 통일된 장소가 아니였기때문이다.


자치주성립의 날, 경축대회가 열린 시간에서도 엇갈린 기록들이 나오고있다. 어떤 문사자료들에서는 1952년 9월 3일 8시30분에 자치주창립기념대회가 열렸다고 했고 어떤 자료들에서는 이날 오후 3시부터 경축행사가 열렸다고 기록하고있다.


필경 자치주성립의 날은 이젠 다시 되돌아보아도 아득한 60년전의 오랜 기억이다. 당시 력사의 견증인들은 이미 많이는 저세상 사람들이 되였고 설사 생존해계시는 사람들이라고해도 60년전의 아득한 기억속에서 경축행사가 인민광장에서 있었는지 서광장에서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는 대답들을 반복하여 실망스러웠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여 자치주창립의 경축행사에 대한 이같은 엇갈린 기록들이 나오게 되였을가? 정확한 답안을 알기 위해서는 50년대초 당시 연길시에 있던 광장들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치주가 창립되던 당시 연길시에는 큰 광장이 2개 있었는데 하나는 현재의 복무청사부근에 있던 연길시 서광장이였고 다른 하나는 일본침략자들이 연길에 둥지를 틀고있을때 건설했다는 공원안의 광장 즉 연길경기장이였다.

1949년도부터 연길에서 쭉 살아왔다는 문학평론가 장정일선생은 《연길공원으로 말하면》이라는 칼럼에서 수만명밖에 안 살고 단층집이 흔했던 옛날, 연길시내 한복판에 서광장이라는 꽤 큰 광장이 있었고 1953년 쓰딸린서거추모대회를 비롯해 배구대회랑, 시민이 운집한 가무단공연이랑 빈번했다고 기록하고있다. 그리고 지금은 용도변경이지만 연길공원안에 워낙은 아담했던 경기장이 있어 명절이면 수림속 특설무대에서 풍악이 울렸고 경기장에서는 주덕해주장의 연설을 비롯해 행사가 많았다고 적고있다.

즉 당시 연길에서 행사의 장소로 서광장과 공원안의 경기장 두곳 모두 많이 리용되였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행사의 장소로 쉽게 혼동하기 쉽다는 점과 이제는 두개의 광장 모두 세월속에 사라져 더더욱 기억속에서 망각되기 쉽다는 점, 그리고 짧지않은 60년간의 망각의 세월이 흐르면서 어떤 사실들은 왜곡되고 와전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난 5월 8일, 기자는 자치주창립일 당시 사진을 찍어 력사적인 순간들을 기록했던 저명한 촬영가 황범송선생을 만나 자치주창립경축일의 생생했던 기억들을 상세히 들어보았다.


자치주창립경축대회는 분명히 공원안의 경기장에서 거행됐다는것이 황선생의 확고부동한 말이였다. 연길서광장은 분명히 자치주창립 경축대회 장소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연변조선민족자치구 성립경축대회 전경, 주석대옆으로 작은 산이 보인다

다양한 행사들이 자주 열렸다는 연길시 서광장, 사진속 주택들이 현재 연길신화서점방향


황범송선생은 자신이 당시 찍었다는 경축대회 주석대를 향해 찍은 사진을 꺼내보이면서 더 한층 자신있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경축대회 사진속 주석대 오른쪽으로는 산언덕이 보이는데 바로 현재 연길공원의 정자산이라는것이다. 시중심에 있었다는 서광장에서 만약 자치주창립경축대회가 열렸다면 이같은 산이 사진에 찍힐리 만무하다. 이날 주석대 전경을 찍기위해 황범송선생은 경기장에 있던 꼴문대우에 올라갔고 그것도 모자라 위험을 무릅쓰고 꼴문대우에 선채로 어렵게 2장의 사진을 남겼다는데 바로 력사적가치가 있는 웃사진이다.


황범송선생이 주장하는 자치주창립일 옛터의 연길공원내 장소는 이밖에도 분명히 증명할수있는 내용들이 더 있다.


황범송선생은 자치주창립의 날 3만명이나 되는 인파가 모였는데 1만명도 용납하기 어려웠던 작은 규모의 연길서광장에 이같은 인파가 근본 몰릴수 없다는 것이고 서광장에는 고정적인 주석대가 없어서 여러가지 행사때면 기관이나 학교들에서 사무상을 가져다 림시주석대를 만들어 사용하군 했지만 공원안의 경기장에는 목조구조물의 높은 주석대가 고정적으로 지어져있었다는 것이다.

황범송선생에 따르면 이날 자치주창립경축행사는 오후 3시에 연길시공원안의 경기장에서 있었으며 날씨가 너무 무더워 주덕해주장이 보고할때 웃옷단추를 벗고 보고했다고 한다. 당시 연변조선족인민군중들의 어버이같은 존재였던 주덕해동지의 거룩한 이미지를 사진에 남기고자 고심하던 황범송선생과 당시 연변일보사 사진기자였던 김진호선생은 보고중인 주덕해동지에게 단추를 채우라고 내놓고 귀띰할수도 없고해서 고심했다고 한다. 생각끝에 주석대아래에서 쪽지를 써서 주석대에 올려보내기로 했는데 황범송선생이 종이에다가 《단추를 채워주십시요》라고 쪽지를 쓰고 김진호선생이 주석대에 올려보냈는데 주덕해동지가 인차 알아보고 보고하는 한편 단추를 채워 력사적인 주덕해동지의 경축대회발언모습을 남길수 있었다고 한다.

연변조선민족자치구 성립경축대회에서 연설하는 주덕해


이날 경축대회가 끝난후 군중들이 공원경기장에서부터 공원다리를 건너 인민로까지 서광장에 이어 간도려관이 있었다는 북산소학교 부근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서서 서광장까지 와서 밤늦게까지 춤추고 노래하면서 자치주창립의 날을 경축하였다고 황범송선생은 오래된 기억의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1952년 9월4일부 연변일보의 《연변조선민족자치구인민정부 정식수립》이라는 제목으로 된 기사는 《연길시 각 민족 각 계 3만여명 군중 참집해 열렬히 경축》했다는 부제까지 달아 자치주창립일의 력사를 생생하게 기록하고있다.


기사에 따르면 연변조선민족자치구 제1차 각계인민대표대회는 9월 3일 오전 10시40분에 승리적으로 막을 닫고 동시에 연변조선민족자치구 인민정부의 정식수립을 선고하였다고 기재하고있다. 신문은 또 이날 속보를 통해 9.3항전 승리의 날인 동시에 연변조선민족자치구인민정부의 성립을 선포한 날인 9월 3일 오후 3시에 연길시 각계 인민 3만여명이 연길시인민광장에 모여 길림성 연변조선민족자치구인민정부 설립경축대회를 성대히 거행하였다고 적고있다. 또 대회는 오후 6시 10분에 우렁찬 구호로써 끝마치고 뒤이어 시위행진에 옮겼다고 적고 있는데 환희에 끓는 연길시내의 밤거리는 오색등불을 밝혀든 시위하는 군중의 떼로 뒤덮였고 북소리, 징소리, 노래소리속에서 《연변자치구인민정부의 성립을 경축하자》 《중화인민공화국 만세》 《중국공산당 만세》 《모주석 만세》의 구호소리는 깊은 밤까지 계속되였다고 기재했다.


현재 자치주창립경축대회가 열렸던 공원안의 연길인민광장이나 연길시 서광장이나 모두 력사의 세월속에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장정일선생은 《서광장 그리고 베로나 쥴리엣의 집》이라는 칼럼에서 《아무리 중요한 사물이라 해도 시간이 흐르면 망각의 강물에 함몰되기 쉽고 본의아니게 사실이 와전될수도 있다는 점을 환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비록 옛날 광장들은 지금 모두 사라져 없어도 우리 력사의 진실한 기록은 영원히 망각되고 왜곡되여서는 안되기때문이다.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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