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미국내 러시아 시설 2곳도 폐쇄… 트럼프는 "넘어가자" 미적지근
러시아도 반발 속 확전은 자제 "트럼프 정부서 관계 정상화될 것"
미국 정부가 29일(현지 시각)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해킹' 의혹에 대해 외교관 추방과 경제 제재 등 고강도 보복 조치를 단행했다. 러시아는 즉각 "상응하는 보복을 하겠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이제 더 좋은 일로 넘어가자(move on)"고 밝혀 갈등이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미 백악관과 재무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러시아 외교관 35명 추방, 미국 내 러시아 시설 2곳 폐쇄, 해킹 관련 기관 5곳 등에 대한 경제 제재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제재안을 공식 발표했다. 앞서 중앙정보국(CIA) 등 미 정보기관들은 러시아가 트럼프 당선을 돕기 위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 측의 이메일을 해킹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싸움 - 29일(현지 시각) 미국은 러시아의‘미국 대선 개입 해킹’의혹에 대해 외교관 추방과 시설 폐쇄, 해킹 관련 기관·개인에 대한 경제 제재 등 초강경 외교 제재를 단행했다. 사진은 지난 9월 중국 항저우 G20 정상회의 도중 만난 버락 오바마(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 /EPA 연합뉴스
미 국무부는 이날 워싱턴DC의 주미(駐美) 러시아 대사관과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에 근무하는 러시아 외교관 35명과 가족에게 "72시간 안에 미국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또 뉴욕과 메릴랜드주(州)에 있는 러시아 정부 소유의 복합 시설 2곳을 폐쇄했다. 이 시설은 30일 오후부터 러시아인의 출입이 금지된다.
이 밖에도 러시아군 총정보국(GRU), 러시아연방보안국(FSB) 등 러시아 정보기관 2곳과 해킹을 지원한 것으로 확인된 특별기술국(STG), 데이터프로세싱디자이너교수연합(PADDPS), 조르시큐리티(Zorsecurity) 등 5개 기관이 제재 리스트에 올랐다. 이고르 발렌티노비치 GRU 국장 등 개인 6명도 제재 대상이 됐다.
미국은 지난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 후 대(對)러시아 제재를 계속해 오고 있다.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과 군수 기업 등을 제재 대상으로 올렸고,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 등 수십명도 경제 제재 리스트에 올려놓고 있다. 그러나 이번 '해킹 관련' 보복 조치는 러시아의 외교관과 정부기관을 직접 겨냥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해킹은 러시아 고위층이 지시한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겨냥했다. 그는 또 "동맹국들도 러시아의 민주주의 개입 행위에 대해 반대해야 한다"고도 했다.
러시아는 즉각 반발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미국의 이번 제재는 전혀 근거 없는 불법"이라며 "(러시아는) 상호 원칙에 근거해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는 이날 모스크바 인근 세레브랴니보르에 있는 미 대사관 별장에 대해 폐쇄 명령을 내렸다.
트럼프 당선인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논란이 커질수록 자신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들은 화제를 돌릴 때 쓰는 '넘어가자(move on)'란 단어를 트럼프가 쓴 것에 주목했다. 사실상 해킹 사건과는 거리를 두겠다는 뜻이다. 백악관 수석고문 내정자인 켈리앤 콘웨이는 "오바마 대통령의 오늘 러시아 제재는 트럼프 당선인을 꼼짝 못 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이번 제재 조치가 내년 1월 출범하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 측도 확전을 자제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도 "(트럼프 행정부와) 공동 대응해 양국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고, 콘스탄틴 코사세프 러시아 상원 외교위원회 의장도 "트럼프 당선인이 내놓을 반응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워싱턴=조의준 특파원 joyjune@chosun.com] [런던=장일현 특파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