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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탄탄대로에서] 제8집 대전환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9.11.25일 14:22
기록편 《우리는 탄탄대로에서》 제8집 대전환



1976년은 중국의 룡띠해이며 또한 중국사람들의 기억에 깊이 남을 한해였다. 이해 10월 6일 당중앙은 과단한 조치로 ‘4인방’을 일거에 분쇄하고 10년 동란을 결속하여 온 국민이 환호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통쾌하게 하였다.

〈축배가〉 작사 한위는 천진가무극원의 예술일군이다. 그와 동료들이 경축행사에 참가하고 돌아오니 식당의 밥상은 이미 준비되여있었는데 상마다 흰술이 한병씩 놓여있었다.

평소 술을 한방울도 입에 대지 않는 한위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동료들과 함께 잔을 들었다. 술이 몇잔 속에 들어가자 그는 즉흥시를 몇구절 읊었는데 옆에 있던 동료들은 연신 좋다고 하면서 가사로 만들라고 건의했다. 그리하여 한위는 그날 저녁으로 초고를 작성하였다. 한위의 오랜 단짝이며 작곡가인 시광남 역시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속에 장기간 쌓였던 격정이 화산처럼 분출하면서 만들어낸 곡 역시 사람들을 취하게 했다.

이 노래에 담은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다. 노래는 그 시절 사람들 마음속의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내고 곧바로 시작하게 될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기대를 그대로 반영했다.

1977년 7월, 10기 3차 전원회의가 소집되고 73세에 나는 등소평이 사업을 회복하였다. 1977년 7월 30일, 등소평이 북경로동자체육장에서 있은 축구경기장 관람석에 나타났다. 일본 교또통신사 기자는 “수만명 관중들이 경기 관람을 마다하고 일제히 일어나서 그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사업을 회복한 지 얼마 안되는 등소평은 주동적으로 과학기술과 교육 사업을 맡을 것을 요구하고 과학기술교육을 돌파구로 착오적인 로선과 정책을 바로잡는 것을 추진하려고 하였다.”고 당시 정황을 묘사했다.



1977년, 11년 동안이나 중단되였던 대학교 학생모집 제도가 드디여 회복되였다.

1977년 8월 4일, 등소평이 소집한 과학교육사업자좌담회에서 적잖은 학자들은 중앙에서 대학교 입학시험제도를 회복할 것을 강렬히 요구하였다. 중국사회과학원 서류관에 보관한 당시 회의기록은 회의 참가자들의 절박한 심정과 틀린 것을 시정할 데 대한 결심을 진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당시 한 학자가 제출한 학생모집 16자 방침에서 “자원적으로 신청하고 단위에서 동의하며 통일심험을 치고 성적에 따라 록취”할 것을 요구하자 등소평은 “단위에서 동의”한다는 내용을 아예 없애버리자고 하였다. 이렇게 11년 동안이나 중단되였던 대학교 모집제도는 드디여 회복되게 되였다. 그해 54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시험에 신청하였으며 27만명 응시생들이 합격되여 자신들의 운명을 개변하였다.



1978년 3월, 27만명에 달하는 대학 신입생들이 따뜻한 봄날을 맞으며 꿈에도 그리던 대학 교정에 모여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때로부터 대학 교정에서는 또다시 랑랑한 글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대학입시 회복은 젊은 세대들의 학구열과 과학을 숭상하는 열의를 크게 불러일으켰다.



1978년 3월, 전국과학대회가 북경에서 소집되였다. 5,500여명의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그들중에는 여러해 동안 만나지 못했던 벗들과 교우들 그리고 스승과 제자들도 있었다. 련계가 끊기고 10년도 넘게 지나서 다시 상봉한 이들은 감개가 무량했다.



“네가지 현대화의 관건은 과학기술 현대화다. 현대과학기술의 발전은 과학과 생산의 관계가 갈수록 밀접해지도록 하고 있다. 생산력으로서의 과학기술은 갈수록 거대한 작용을 과시하고 있는바 사회주의사회에서 로동계급이 양성한 뇌력로동자는 이미 무산계급의 일부분으로 되였다. 체력로동에 종사하든 뇌력로동에 종사하든 모두 사회주의사회의 로동자들이다.”



작가 마식도는 그 당시 정경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과학기술은 생산력입니다.” 열렬한 박수;

“과학사업자는 로동자입니다.” 더욱 열렬한 박수;

“당신들은 무산계급의 일부분입니다.” 극도로 열렬한 박수;

“저는 달갑게 당신들의 후근부방이 되려고 합니다.” 극도로 열렬하고 오랜 박수.

등소평이 대회에서 지식분자에 대한 공정한 평가의 발언은 광범한 지식분자들의 공명을 자아냈다. 이번 대회는 새 중국이 창립된 이래 처음으로 소집된 전국과학대회였다. 그해 86세에 나는 중국과학원 곽말약 원장은 병환에 있으면서도 대회에 참가하였다. 그는 서면발언에서 시적 감흥으로 이렇게 축사를 썼다. “이는 혁명의 봄날입니다. 이는 인민의 봄날입니다. 이는 과학의 봄날입니다. 우리 모두 두 팔을 활짝 벌려 이 봄날을 열렬히 포옹하세.”

봄날은 왔어도 아직도 한기가 있었다. 력사의 수뢰바퀴는 왕왕 관성의 작용하에 계속 과거의 궤적을 향해 움직이기도 한다. ‘두가지 무릇’은 사람들의 사상을 엄중히 속박하고 있었다. ‘두가지 무릇’의 착오에 맞서 등소평은 당시 지도직무를 아직 회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당중앙에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반드시 세세대대로 정확하고 완전한 모택동사상으로 우리의 전 당, 전 군과 전국 인민들의 사업을 령도하여야 한다.”고 정중하게 지적하였다. 그는 또 ‘두가지 무릇’은 그릇된 것으로 맑스주의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1978년 5월 10일, 중앙당학교의 내부 간행물 《리론동태》에 호요방이 심사하여 결정한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이다〉는 문장이 실렸다. 5월 11일 《광명일보》는 특약론평원의 명의로 이 글을 발표하였으며 신화사는 전국에 전재하였다. 뒤를 이어 《인민일보》와 《해방군보》가 전문을 전재하였다. 이 문장은 5,000여자에 달하는데 예봉을 직접 ‘두가지 무릇’에 돌려 간부와 군중들 가운데서 강렬한 반향을 일으켰으며 전국적으로 한차례 진리기준의 대토론을 몰아왔다.

이 원칙적인 시비문제 앞에서 등소평은 다시 한번 기치 선명하게 “지금 한가지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바로 실천이 진리를 검증하는 기준마저도 문제로 되였는데 정말로 리해할 수 없습니다!”라고 지적했다. 등소평은 행동을 취하여 이번 대토론을 적극 지지하고 인도하였다.

1978년 6월 2일, 그는 전 군 정치사업회의에서 실사구시적으로 모든 것은 실제로부터 출발하고 리론과 실천을 결부하는 것은 맑스주의, 모택동사상의 근본 관점이라고 제출하였으며 착오적인 로선과 정책을 바로잡고 정신적 속박을 타파할 것을 호소해 사람들의 사상을 크게 해방시켰다.

 



20세기 70년대 세계 과학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였으며 각 나라의 발전에 기회를 창조하였다. 1978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자기의 2주년 생일을 맞이하였고 독일은 연활자인쇄시대로부터 컴퓨터로 조판하기 시작하였으며 세계 첫 이동전화도 개통되였다. 발전한 나라의 텔레비죤 보급률은 70%를 넘어섰으며 유럽공동체에서는 유론존화페를 선언하고 나섰고 경제 글로벌화의 추세가 갈수록 뚜렷했다. ‘아시아 작은 네마리 룡’은 신속하게 궐기하였으며 싱가포르의 인당 국민생산총액은 3,000딸라를 넘겼다.



1980년대 초반까지 흑백텔레비죤은 아직도 중국의 일반 가정에 보급되지 못했다.

그러나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은 국민생산총액이 세계의 1.8% 밖에 되지 않았으며 무역수출액도 세계의 0.75% 밖에 되지 않았다. 역시 이해에 국가에서는 정부대표단을 륙속 외국에 파견하여 방문과 고찰을 진행하였다. 국무원 부총리 곡목은 중국정부대표단을 거느리고 한달 남짓한 동안에 선후로 프랑스, 스위스, 독일 등 5개 나라를 방문하였으며 많은 공장과 광산, 부두를 참관하였다. 이 대표단은 후에 ‘중국이 세계를 향해 개방한 선견대’라고 불리웠다.

눈길을 세계에로 돌린 중국사람들은 놀라움과 충격을 받았다. 당시 서유럽국가의 너비가 30메터 이상에 달하고 설계 시속이 80, 100키로메터 이상에 달하는 고속도로가 중국에는 1키로메터도 없었던 것이다.



1978년 10월 22일, 등소평이 일본을 방문했다. 이는 1972년 중국과 일본이 외교관계를 회복한 후 처음으로 중국지도자가 일본을 방문한 것으로 된다

이 시기 등소평도 외국을 빈번히 방문하였다. 두달 동안에 그는 일본, 타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아시아 6개 나라를 방문해 주변 국가들의 경제 발전을 친히 감수하였다.

1978년 11월 10일, 200여명의 고위급 지도자들이 북경에 모여 중앙사업회의에 참석하였다. 이번 회의의 원래 의제는 농업과 국민경제계획 배치에 대한 문제를 토론하는 것이였다. 회의 참가자들은 먼저 2~3일 시간을 들여 1979년부터 전당의 사업 중점을 사회주의현대화건설에 돌리는 문제를 토론하였다.

11월 12일, 동북분조토론에서 진운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안정단결을 발전시키는 것은 당의 사업중점이 순리롭게 전이되도록 보장하는 관건이다. 어떻게 안정단결을 실현할 것인가? 조건은 ‘문화대혁명’과 그 전의 ‘좌’적 착오로 조성된 일부 중대한 력사적으로 내려온 문제 그리고 일부 주요 령도들의 공과시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 발언은 즉각 강렬한 반향을 일으켰는바 발언 전문이 약보에 실렸다. 각 소조에서는 이에 호응하여 ‘문화대혁명’ 착오를 철저하게 시정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 력사적인 관건적 시각에 많은 새로운 정황과 새로운 문제들이 제기되여 당의 지도자가 기회를 다잡아 답변하고 방향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였다. 등소평은 높이 서서 멀리 내다보면서 진운의 의견을 충분히 긍정하고 지지하였다.



대회는 실제상 사상로선, 조직로선에서 정치로선에 이르기까지 착오적인 것을 바로잡는 회의로 변해버렸다. 등소평은 대회 페막식에서 〈사상을 해방하고 실사구시하며 단결하여 일치하게 앞을 내다보자〉라는 제목으로 중요한 발언을 하였다.

이 발언은 사상해방의 눈보라를 일으켰으며 그 시기 중국사람들의 정신적인 짙은 안개를 가셔버리고 미래 중국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였으며 실제상 그 뒤에 열린 11기 3차 전원회의의 주제보고로 되였다.



5일 후 1978년 12월 18일, 위대한 력사적 의의가 있는 중국공산당 11기 3차 전원회의가 승리적으로 소집되였다. 이번 회의는 당과 국가가 직면한 어디로 갈 것인지 하는 력사적인 관건적 시각에 소집된 한차례 중요한 회의였다.

회의는 당과 국가의 사업 중점을 사회주의현대화건설에로 돌릴 것과 개혁개방을 실행할 데 관한 전략적 결책을 제출하였다. 나라의 운명과 관계된 이러한 전략적 결책은 중국력사 과정의 객관적 요구를 체현하였고 전 당, 전 군, 전국 여러 민족 인민들의 절박한 념원을 반영하였다.



11기 3차 전원회의는 당의 력사에서 하나의 리정비다. 위대한 사회주의 개혁개방은 이 대회에서 서막을 열었고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새로운 길도 이 대회를 시작으로 개척되였으며 중국은 이로부터 사회주의사업 발전의 새로운 시기에 들어섰다.

11기 3차 전원회의가 소집된 후 당에서는 계통적으로 중대한 력사적 시비를 깨끗이 청산하고 착오적인 것들을 전면적으로 바로잡기 시작하였다. 회의가 결속된 이튿날 중공중앙은 북경에서 팽덕회, 도주의 추도대회를 거행하고 이들의 명예를 회복하였다.

1980년 2월, 11기 5차 전원회의에서는 류소기의 명예를 회복하였다. 억울한 안건을 바로잡고 력사적으로 내려온 문제를 해결해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의 상처를 치유하였으며 사람들의 적극성을 불러일으키고 사회주의현대화건설에 안정단결의 정치적 국면을 조성하였다.



만약 1949년에 중국인민들이 일떠섰다고 한다면 1978년은 중화민족이 부유한 길로 향해 나아가는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해에 수많은 중국사람들의 운명이 중국의 변화로 하여 개변되였다. 이해로부터 중국은 중국특색사회주의 새로운 행로를 걷기 시작하였다.

/ CCTV방송, 편역: 길림신문 리철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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