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A병원서 무슨 일이
주사기 하나로 여러 곳 사용
비결핵성 항산균에 감염
같은 처치 환자 190명 더 있어
50대 후반의 주부 김모씨는 몸 곳곳에 고름이 잡혀 6개월째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강남성심병원에 입원 중이다. 입원 한 달여 전 관절염 치료를 위해 영등포 A의원에서 일명 '뼈주사'(관절주사)를 맞은 게 화근(禍根)이었다. 김씨의 주치의인 이재갑(감염내과) 교수는 “환자의 주사 맞은 모든 부위가 곪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기관인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은 지난해 10월 영등포 A의원에서 관절주사를 맞은 뒤 관절염·피부 농양(膿瘍, 화농성 염증) 등이 나타난 피해자(환자) 수가 6개월 새 54명으로 늘어났다고 23일 밝혔다.
지난달 28일에도 환자 2명이 추가됐다. 피해자 수가 발생 초기에 신고된 숫자(25명)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한 '현재 진행형' 사건인 셈이다. 현재 피해자 수(54명)만으로도 국내 약화(藥禍) 사고론 역대 둘째로 큰 규모다.
문제는 앞으로도 환자가 더 늘어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질병관리본부 등이 참여한 정부 합동조사단이 A의원의 컴퓨터 진료 기록을 분석한 결과 이곳에서 '뼈주사'를 맞은 사람은 모두 240여 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부작용을 경험한 환자 52명을 합동조사단이 조사한 결과 27명에서 원인균인 비(非)결핵성 항산균이 검출됐다.
강남성심병원 이 교수는 “감염 후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는 원인균(비결핵성 항산균)의 특성상 앞으로도 환자가 더 늘어날 것”이며 “이 중 상당수는 인공관절 수술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사건이 외부에 처음 알려진 지난해 10월 A의원에서 '뼈주사'를 놓았던 남성 간호조무사는 자살했다. A의원엔 영업정지 조치가 내려졌고 지금도 문을 닫은 상태다.
합동조사단의 정선형 의약품안전관리원 약물역학팀장은 “주사약이나 의료기기의 제조·유통 과정에서 이번 사건의 원인균이 혼입됐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A의원의 비위생적인 환경 탓에 감염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A의원에선 주사약을 다른 약과 섞은 뒤 여러 환자에게 나눠 놓는가 하면 주사기 하나로 환자의 여러 부위에 주사한 것으로 합동조사단 조사에서 확인됐다. 국내에서 주사기 외에 비위생적인 침을 맞거나 찜질을 하다가 비결핵성 항산균에 감염된 사례도 있다.
순천향대병원 김태형(감염내과) 교수는 “주사 놓기 전에 손 씻기 등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하고 1회용 주사기를 쓰거나 주사기 소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며 “특히 여러 주사약을 섞어 사용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말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비(非)결핵성 항산균(抗酸菌)=대기 중에 많이 분포하는 세균으로 불결한 주사나 침을 통해 인체 내로 들어올 수 있다. 만성 관절염과 고름 등 피부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결핵균보다는 독성이 약하고 사람과 사람 간 전파는 이뤄지지 않는다. 각종 항생제에 대한 내성(耐性)이 강해 장기 치료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박태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