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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기념비(36)—전투영웅 강창록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1.11.17일 17:16
산좋고 물 맑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중국내 조선족이 가장 많이 집중되여있는 곳이다. 우리 민족이 두만강을 건너 이곳에 우물을 파고 황무지를 개간해 논을 풀기 시작한지도 어언 150여년의 력사를 거스를수 있다. 때문에 연변에는 우리 민족에 관련한 수많은 력사문화 유적지가 남아있다. 특히 반일투쟁과 해방전쟁에서 싸운 우리 민족 혁명렬사들의 기념비가 곳곳에 세워져있다. 그만큼 우리 민족 자제병들이 전선에서 많이 싸웠고 또 많은 희생을 냈던것이다.


《영원한 기념비》취재진은 도문시 량수진 북산언덕에 고요히 잠든 강창록렬사의 묘지를 찾아보았다. 아주 간소한 묘소였다. 단지 무덤앞에 세운 작은 비석에 새겨진 진붉은 오각별과 《전투영웅》이라는 네글자가 이 묘소의 주인이 평범치 않음을 설명해주고있을뿐이였다.

비석에는 또 강창록지묘, 1930년 5월 20일 출생, 1953년 7월 25일 사망이라는 글들이 새겨져있었다.

연변의 사학자 리송덕선생의 소개에 따르면 전투영웅 강창록은 동북민주련군 제1종대의 전사였다.


《강창록은 법고전투에서 몸에 일곱곳이나 부상 입고 페에 파편이 박혀있어 1949년 가을에 제대하였습니다. 제대한후 그는 선후하여 연길현 개산툰 세무소일군, 량수촌 공청단지부서기, 밀강호림소와 목재판의 검사일군으로 후방의 생산과 건설에 모든 힘을 이바지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페에 박힌 파편때문에 피를 많이 토하고 1953년 7월 23일에 2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투영웅 강창록의 묘소.

동북민주련군 제1종대 3사 8퇀의 전사 강창록 유상.


23세의 젊은 청춘을 바친 강창록렬사, 제대하여 후방에 돌아온후에도 기어코 그의 목숨을 앗아간 법고전투는 과연 어떤 전투였을가?


공주툰에 포위된 신5군을 섬멸한후 동북민주련군은 심양부근의 기타 거점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1종대 3사는 국민당 신6군 62사가 수비하는 법고를 공격했다. 부대는 법고이북 10킬로메터 떨어진 법고현 류가워푸(刘家窝堡)라고 불리우는 마을에서 치렬한 전투를 치렀다. 3사 8퇀 1영 2련은 세차나 폭파조를 보냈지만 적의 화구를 폭파하지 못했다.

이때 2련의 조선족반장인 강창록(姜昌录)이 자진하여 폭파조장을 맡았다. 그는 두전사를 거느리고 또치까에 접근했지만 두전사가 모두 쓰러졌다. 강창록도 총에 맞은듯이 쓰러졌다가 적이 경각성을 늦춘 틈을 타서 수류탄 묶음을 안고 벼락같이 달려가 또치까를 폭파하였다.

2련 전사들이 두번째 방어선에 막히자 이번에도 강창록이 나섰다. 그는 민첩하게 적 또치까에 다가가 전호앞에 있는 적 보초병을 습격하자 놈은 총을 버리고 또치까로 도주해 들어갔다. 강창록은 수류탄을 들고 추격해 들어가 《꼼짝 말앗!》하고 소리치자 십여명 적병이 모두 손을 들고 투항하였다.

전사들은 강창록이 열어놓은 길을 따라 용감히 전진하였다. 2련 전사들이 돌진한후 강창록은 포로를 압송해 언덕을 내려오다가 많은 적이 우회하여 공격해오는것을 발견했다. 그는 급히 기관총을 찾아들고 적에게 맹렬한 사격을 가했다. 그러자 적의 화력이 삽시에 그에게 집중되였다. 아군의 공격을 엄호하여 계속 적의 화력을 유인해 싸우던 강창록은 어깨와 팔, 다리가 련속 적탄에 맞았다. 그래도 그는 이를 악물고 계속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이때 수류탄 하나가 그의 곁에서 터졌다. 파편에 페를 상한 강창록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일곱곳이나 부상당한 강창록은 후방병원에 호송되여 치료를 받은후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법고에서 신 6군 62사를 전부 소멸한 1종대 3사는 두려움 없이 싸운 강창록에게 대공 3차를 기입해주었으며 전투영웅칭호를 수여했고 모택동메달을 수여했다. 하지만 페에 박힌 파편을 뽑아내지 못했기에 그는 부대에서 제대하고 연변에서 생활하다가 1953년에 23세 젊은 나이로 세상떴다.

법고전투가 있었던 법고현인민정부.

법고현 류가워푸 전적지.

전적지 농가의 마당.


동북민주련군 각 종대중 10종대에 조선족장병이 가장 많았다. 그만큼 연변에는 10종대의 로전사들이 많이 살아계신다.

연길시 연변종업원료양원에서 만년을 보내는 윤룡철로인은 황화산전투에서 두눈을 잃은 영웅이였다. 로인은 지금도 10종대 전우들을 그리워하고있고 특히 희생된 전우들을 잊지 못하고있다. 그리고 희생된 전우들이 연길렬사릉원에 모셔지지 못하는것을 못내 안타까워하고있다. 왜냐하면 희생된 전우들 대부분이 고향이 아닌 먼 낯선 고장에서 희생되였고 또 그곳에 안장되였기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찾을수도 없었던것이다.

수많은 조선족렬사들은 이처럼 고향인민의 품에 돌아오지 못했던것이다. 윤룡철로인은 답사팀에게 전우 김을형(金乙亨) 렬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김을형입니다. 덕혜전투에서 참군해서 얼마 안되여 희생되였습니다. 우리 전우들이 렬사릉원에 하나도 없습니다. 그 사람 맏형 김두형도 우리 부대에 있었는데 그는 그 전투에서 희생되지 않았습니다.》


김을형렬사와 그의 형 김두형(金斗亨)은 모두 10종대에서 싸웠다. 김을형이 전투에서 희생된것을 안 김두형은 아우의 시신을 찾아 덕혜역전부근에 땅을 파고 묻었다. 후에 찾아올 작정으로 종이에 글을 써서 병에 넣어 함께 묻었다. 그리고 역전 어느 부근이라는것을 지도로 그려서 잘 간직하고있었다.

《건국후에 형이 덕혜에 찾아가서 쪽지를 가지고 묘를 파헤치니 병사리가 나왔습니다. 아직두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래가지고 덕혜정부를 찾아가니 〈안된다, 덕혜전투에서 희생되였으니 못 가져간다. 우리 렬사이니 우리가 영원히 모셔야 한다.〉고 거부했습니다. 그러니까 초청장을 가지고 가서 〈엄마 생전이다. 엄마 생전에 희생된 사람은 반드시 시체를 엄마가 봐야지 그렇지 않으면 안된다. 조선사람의 습관이다. 우리 엄마 시체라두 보겠다고 한다. 소수민족의 습관이 이렇다.〉고 하니 그래서야 내다가 연길철남의 모아산동쪽기슭 렬사비로 옮길수 있었습니다.》


덕혜정부의 수락을 받고 김두형은 동생의 골회를 연변에 가져다가 모아산기슭에 묻고 비석을 세워놓았다가 후에 교섭을 거쳐 드디여 연길시렬사릉원에 모셔가게 되였다고 한다.

연길시 연변종업원료양원에서 만년을 보내는 로전사 윤룡철(왼쪽)로인.


김을형형제의 이야기를 하는 윤룡철로인은 감격에 겨워 이렇게 말했다.《나는 이렇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고 40년동안 이렇게 고생하는데 지금은 리직대우를 받고 호금도의 배려하에 혜택을 많이 보고있습니다. 지금 나두 1년에 무휼금 1만 5000원을 탑니다. 호리금하구 리직금 합치면 괜찮습니다. 우리 희생된 동무들 생각하면야. 나는 살아서 지방에 와서 나라의 간부도 해봤고 처자를 만나 사위도 삼았고. 나는 농사짓던 사람인데 늘그막에 별장(연변종업원료양원)에서 만년을 보내는 사람입니다. 희생된 동무들에 비하면 무한히 행복한 사람입니다…》


/김성룡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중앙인민방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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