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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특등 전투영웅 리병인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1.03.22일 17:15

특등 전투영웅 리병인(1995년)

조선족 특등 전투영웅 리병인은 1922년 5월 24일에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에서 태여났다. 2004년 4월 26일 도문시에서 82세의 고령으로 세상을 하직하였다.

리병인은 해방전쟁시기 이름난 특등 전투영웅이다. 하지만 그 자신이 지방에 돌아온후 자신의 사적에 대해 별로 언급하지 않았기에 세상 사람들은 그에 대하여 별반 아는것이 없고 조선족사회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리병인의 아버지 일가는 원래 조선 함경남도 리원군 리원리에서 살다가 20세기 초기에 두만강을 건너 중국 길림성 화룡현 서성향 장항촌에 자리를 잡고 농사를 지었다. 그때 장항촌 촌민 대다수가 조선에서 건너온 리씨성을 가진 사람들이였기에 그곳 이름을 리원촌이라 불렀다 한다. 리병인은 바로 이 리원촌에서 태여 났다.

14세 되는해에 그는 부모를 따라 지금의 화룡시 투도진 룡원촌에 이사 하여왔다. 그가 14세 되는 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16세 되는 해에 어머니도 세상을 하직하였다. 고아로 된 그는 한동안 형님의 집에서 살았다.


1945년 10월 6일 리병인은 룡원촌에서 동북민주련군에 참군하여 6퇀3영9련에서 선후로 전사, 패장, 대리련장직을 담임하였다. 그는 선후로 부대를 따라 화전자 쟈피거우(桦甸夹皮沟)전투 삼도만 토비숙청 전투, 사평 2차전역 등 여러차례의 전투에 참가하였다.


어느 한차례의 전투에서 리병인은 첨도패(尖刀排) 패장을 담임하고 부대의 제일 앞에서서 적들을 진공하였는데 수십명의 적들을 소멸하여 전반 전투의 승리를 위하여 관건적인 앞길을 헤쳤다. 하지만 그는 그번 전투에서 적들의 폭탄파편에 왼쪽 팔을 잃었고 눈도 부상을 당하였다. 당시 《길동보》신문은 리병인의 사진과 더불어 그의 영웅사적을 소개하였으며 부대의 간보도 그의 사적을 올렸다.


1947년 5월 1일, 길림성 돈화현에서 《동북민주련군제1차영웅모범표창대회》가 열렸는데 그번 대회에서 리병인은 동북민주련군 총사령부 총정치부로부터 《특등전투영웅》 영예를 수여받았다. 그번 대회에 친히 참석한 당시 길림성 성장이며 동북민주련군 부총사령인 주보중장군이 직접 리병인에게 영웅훈장과 영예증서를 발급하였으며 붉은 꽃도 달아 주었다.

1947년 5월 1일, 돈화에서 거행한 《동북민주련군 제1차영웅모범표창대회》시 소속부대에서 파견한 호송인원들과 함께 남긴 기념사진. 왼쪽으로부터 두번째 사람이 리병인임.


그후 리병인은 비록 한쪽팔을 잃었고 눈도 상하였지만 부대를 떠나지 않고 계속 부대를 따라 전투에 참가 하였다.


1948년 10월 12일 리병인은 부상된 상처때문에 부대에서 지방에 전업하였으며 그해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지방에 돌아온후 그는 민정부문으로부터 일등잔페전업군인으로 인정받았으며 여러번 《우수공산당원》영예칭호를 수여 받았다. 리병인은 지방에 전업하여 온후 주요하게 림업계통에서 사업하다가 1983년 1월 5일에 리직휴양(离休)하였다.


리병인은 부대에서 지방에 돌아온후 항상 전우들을 잊지 않았는데 특히 함께 전투하다 희생된 렬사들을 더욱 잊지 못하였다.


그는 항상 《전쟁마당에서 희생된 렬사들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행운이고 행복한가》라고 말한다. 전쟁의 나날은 리병인으로 하여금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수없는 기억을 남기게 하였다.

1981년 60세 생일에 남긴 사진


부대가 사평전역에 참가한후 연통산에 돌아와 휴정(休整)할때다. 남태봉이라고 하는 어린 통신원이 임무를 집행하다가 불행이 적들의 폭탄에 맞아 부대 병원에서 치료받는 과정에 또 파상풍에 걸려 죽었다. 리병인이 소식을 듣고 다급히 병원에 찾아 갔을때는 이미 새벽 2시가 되였는데 어린 통신원은 이미 숨을 거두었다. 어린 통신원은 화룡현 복동향에서 참군하였는데 고아이며 희생될때 20살도 되지 않았다. 그때 리병인도 상한 몸이였지만 전우들과 함께 희생된 어린전사를 반석(磐石)의 한 철도다리옆에 묻었다.

해방후 리병인은 여러모로 렬사의 친척을 찾았는데 끝내 렬사의 녀동생을 찾아 렬사가 희생된 경과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정부에 적극적으로 이 사실을 반영하였는데 그의 노력으로 렬사가 희생된 30여년후인 1978년도에 화룡현정부는 렬사의 녀동생에게 《혁명렬사》증서를 발급하였다.


1950년초 리병인은 한 부대에서 희생된 렬사 박창준의 두 남동생이 어렵게 살고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알아보니 하나는 소학교에서 잡일을 하고 다른 하나는 거리에서 밥을 빌어 먹는 거지가 된것이다. 리병인은 즉시로 거지가 된 렬사의 동생을 자기집으로 데려와 함께 생활했다.

리병인은 결혼한 후에도 그 렬사의 동생을 자기 집에서 함께 있게 하였다. 또 렬사의 동생에게 직업을 찾아주었다. 그후 렬사의 동생은 조선에 가서 인민군에 가입하여 조선전쟁에서 공로를 세워 인민군 군관이 되였는데 한번은 경위원 두명과 함께 리병인을 찾아온 일도 있다.

1987년 렬사의 동생들과 함께. 앞줄 왼쪽으로부터 렬사의 큰 동생, 리병인, 렬사의 작은 동생.


이런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리병인은 자신의 사적을 별로 말한적이 없다. 다행히도 1981년도에 룡정 료양원에서 료양하던중 《연변일보》사의 한 부주필이 리병인의 사적을 알고 본인의 저술에 따라 몇만자에 달하는 회억록 《내가 걸어온 길》을 집필하여 주었다. 이 회억록이 리병인을 알아보는 유일한 재료로 되었다.

1987년 조선에서 온 렬사의 동생과 함께


/리영춘 글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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