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엔 여성 탈의실이 없어서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생리 중일 때는 코란에 손을 댈 수 없다. 외출할 때는 아바야(전통 의상)로 온몸을 가려야 한다. 여성 절반 가량이 대학을 졸업하지만 여성의 13%만 직업을 가졌다. 여성은 혼자 은행 계좌 개설도 안 된다. 여성의 운전이 금지된 전 세계 유일한 나라다. 이런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첫 여성 참여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영국 가디언은 12일(현지시간) 실시되는 사우디 지방선거의 선거운동이 지난달 29일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이번 선거는 1932년 사우디 건국 이후 첫 여성 참정권이 보장되는 선거다.
전제 군주제인 사우디는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가 없다. 지방선거가 유일한 정치 참여의 길이다. 사우디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전 국왕은 2011년 ‘아랍의 봄’을 목격한 후 “2015년 선거부터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번이 그 첫 선거다. 그사이 압둘라 전 국왕은 2013년 처음으로 여성을 국왕 정책자문기구인 슈라위원회에 진출시켰고 전체 150명 위원 중 20%를 여성에게 할당하도록 법을 고쳤다. 하툰 알파시 킹 사우드 대학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는 여성이 완전한 시민으로 가는 첫 걸음”이라며 “여성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수많은 금기들을 부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우디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여성 운전 허용’ 운동이 대표적이다. 2013년 10월 여성시민운동가 60여 명이 직접 운전을 했고, 이중 20여 명이 구속됐다. 전세계에서 이들을 지지하는 캠페인(#women2drive)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부가 지원하는 해외유학 프로그램을 마친 여성들이 귀국하고 있는 것도 변화의 동력이다. 텔레그래프는 “지난 10년간 사우디 정부는 75만 명을 해외로 유학 보냈고 이중 다수는 여성”이라고 지적했다. 사우디 역사상 첫 여성 후보로 입후보한 하이파 알하바비(37)도 영국 유학파다.
역사적 선거가 눈 앞이지만 갈 길은 멀다. 사우디 당국에 따르면 18세 이상 여성 유권자 600만 명 중 13만 647명만 유권자로 등록했다. 약 2%에 불과한 수치다. 남성은 약 10배인 135만여 명이 등록했다. 후보로 지방선거에 나선 여성후보자도 865명으로 전체 입후보자 6140명의 14.1%에 그쳤다. 사우디 정부는 이번 선거에서 참여연령을 21세에서 18세로 낮췄는데 이는 남성유권자 숫자를 늘리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여성 후보의 선거운동도 제한적이다. 여성 후보자는 남성 유권자를 상대로 유세를 할 수 없고, 남성 대변인을 통해서만 간접 소통할 수 있다. 방송 연설도 불가능하다. 여성후보들은 단지 소셜네트워크(SNS) 등 온라인 수단을 통해서 자신들을 알릴 수밖에 없다. SNS에는 보수 세력이 ‘#여성의원선출의위험’이라는 해시태그로 여성 후보를 비난하는 글을 올리며 여성 정치참여를 막고 있다.
투표도 문제다. 정부는 424곳을 여성 전용 투표소로 정했지만 여성운전이 금지된 상황에서 후견인 없이는 여성이 투표소로 이동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당선되더라도 지방의회 의원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지방의회는 예산을 다룰 권한이 없고, 쓰레기 처리나 정원 규모 제한 같은 단순한 업무만 처리한다. 알하바비는 NBC 인터뷰에서 “중요한 첫걸음을 내디뎠지만 여성들을 위해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엄격한 샤리아(이슬람 율법)을 지켜온 사우디는 그동안 최악의 여성 인권 국가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올해 세계경제포럼(WEF) 세계 성차별 보고서에서는 145개국 중 양성평등순위 134위였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