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구 : 12일 오후 10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프린세스 누라 빈트 압둘라흐만 여대(PNU) 대운동장에서 열린 여성 유방암 예방 캠페인 ‘10KSA’에서 관계자들이 행사 관련 상패를 든 채 웃고 있다.

女인권 앞장 리마공주 기획… 禁男구역서 ‘그들만의 파티’

건국 84년 만에 여성들이 처음으로 참정권을 행사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지방선거가 열린 지난 12일, 리야드의 프린세스 누라 빈트 압둘라흐만 여대(PNU) 대운동장에서는 검은색 니깝(눈만 빼고 얼굴 전체를 가리는 베일)과 아바야(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전통의상)를 벗어 던진 사우디 여성들이 대형 프로젝트 ‘10KSA’를 자축하고 있었다. 10KSA는 사우디 여성 1만 명을 모아 핑크 리본 모양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유방암 예방 캠페인이다.

10KSA는 파이잘 전 사우디 국왕의 외손녀인 리마 빈트 반다르 알 아사우드(40) 공주가 기획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한 사우디 공주는 “(내 친척인) 리마 공주는 2년 전 젯다에서 처음 10KSA를 개최한 이후 두 번째 행사를 오늘 리마에서 열게 됐다”고 말했다.

리마 공주는 평소 “사우디 여성의 권리 향상을 위해 일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온 인물이다. 지난 2011년에는 압둘라 전 국왕이 쇼핑몰 등 일부 공공장소에서 여성 취업허용 방침을 밝히자 리마 공주는 자신이 운영하는 백화점 하비니콜스에 처음으로 여성들을 고용하기 시작한 바 있다.

사우디 여성들에게 리마 공주는 영웅이자 롤모델인 셈이다. 12일 행사에서도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한 여아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리마 공주와 인사를 나누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날 검은색 니깝과 아바야로 온몸을 둘러싼 사우디 여성들은 오후 3시부터 PNU에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부분 아버지와 남자 형제의 배웅을 받거나 우버의 프리라이드 서비스를 통해 교내에 들어온 뒤, 대형 버스로 옮겨 타고 운동장 앞에 도착했다. 금남(禁男)의 구역에 다다르자 남성 버스 운전기사들까지 모두 되돌아갔다. 운동장 안으로 들어선 사우디 여성들 대부분은 니깝과 아바야를 벗기 시작했다. 비슷한 색깔과 모양의 아바야를 벗어 던진 여성들은 흰색 후드티셔츠나 남색 카디건 등 각양각색의 차림새였다. 운동장에서는 아랍권이나 서구권의 대중음악이 대형 스피커를 통해 퍼지며 클럽 분위기가 연출됐다.

오후 7시 무렵 주최 측에서 제공한 핑크색 아바야를 머리에 두른 여성들은 운동장 잔디밭에서 대형 핑크 리본을 만들기 시작했다. 2시간쯤 흐른 뒤 운동장 한쪽에 마련된 대형 전광판 2대에 “(집계 결과) 우리가 해냈다”는 문구가 나오자, 참가여성들이 일제히 몸을 흔들며 흥겹게 소리를 질렀다. 오후 10시가 되자 모든 행사가 끝나고, 흥분을 가라앉힌 여성들이 운동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운동장을 벗어나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니깝과 아바야로 꽁꽁 싸맨 뒤 아버지나 남자 형제 차량을 기다렸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