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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마상》수상자 심승철의 중문번역 비결 알아보다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6.04.12일 22:16
-심승철: 중문번역 비결은 당시와 송사 통달하는것



번역을 잘하려면 많이 읽어라는 심승철선생은 평소 서재에 있는 시간이 많다.

많이 듣고 많이 읽어라

2012년 전국 소수민족 최고문학상인 “준마상”(번역상) 수상자 심승철선생(沈胜哲, 1955년생)은 전문적으로 문학이나 번역을 배운 적이 없다. 길림성 교하에서 태여나 1살때 부모님을 따라 장춘으로 와 생활해온 그는 한족문화를 더 많이 접촉했고 주위에도 한족친구들이 더 많다.

그러나 조선족소학교를 다닌 경력은 우리 민족 언어와 문화에 대한 무궁한 정감을 심어준 좋은 계몽교육이였다고 한다.

한족고중을 졸업한후 길림성 모 무역회사에 입사한 그는 조선에 1년간, 한국에 7년간 주재원으로 파견된 경력이있다.



문학의 길에서 안해의 도움이 컸다는 심승철. 안해는 언제나 그의 제1독자가 되였다.

《한국에 처음 갔을때 신문도 꺽꺽거리며 겨우 읽어 내려갔고 내용도 대충 알 정도였습니다. 우리 말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지요. 그러나 처음으로 우리 언어가 이처럼 아름답다는걸 알게 되였습니다.》

심승철선생의 본업은 회사의 계약서 같은 서류번역과 무역통역이였다. 정규적인 조선어교육이라고는 소학교시절에 받은것이 전부였다. 그는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우리 언어의 매력에 푹 빠져 시간만 나면 책방을 찾아가 도서와 간행물을 닥치는대로 읽으면서 문학적, 언어적 소양을 쌓아갔다. 가장 간단한 통, 번역이라도 그 내용을 정확하게 리해하고 상대방의 언어로 어떻게 조직할것인가 고심하였다.

《중국어를 잘하려면 당시(唐诗), 송사(宋词)를 잘 아는것이 핵심이다》고 말하는 그는 어려서부터 엄격한 부모님의 《감독》하에 매일 신문을 읽고 중국 고전문학 작품을 읽고 당시, 송사를 외웠다고 한다. 그것이 후날 중국어를 익숙하게 다룰수 있는 토대로 되였다.

그는 번역이라면 문자의 전환이 아니고 뜻의 전달로서 글자번역에만 치우치지 말고 전반 문장에 함유된 뜻을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선어기초가 약한 그였지만 많이 듣고 많이 말하고 많이 읽은 보람으로 구두번역에 익숙해졌으며 후에는 작품번역을 훌륭하게 완성할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인생좌우명이지요.》

운명같이 시작된 소설번역

심승철선생이 문학작품 번역을 시작하게 된것은 아주 우연한 일이였다.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회사업무로 사귄 한 한국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안해는 소설가였다. 어느날 그 친구는 안해가 쓴 장편소설 한편을 들고와 중국에서 출판할 계획이라면서 심승철선생에게 번역을 위탁했다. 〈회사 계약서나 따분한 서류번역만 해오던 내가 할수 있을까?〉 처음에는 많이 주저하다가 시험삼아 해보기로 했다.

언어에 특별한 감각을 갖고있는 그는 우리 작품에서 반영된 언어와 문화에 내포한 미세한 느낌과 정감을 잘 포착하는 재능을 갖고있었다. 《10만자가 넘는 소설을 번역한다는것은 장난이 아니였습니다. 꼬박 1년동안 땀동이를 흘렸어요.》



번역에 전념하다가 피곤하면 서재에서 명상에 잠기곤 하는 심승철.

그러나 심승철선생은 첫시작부터 장편소설을 번역한것이 어쩌면 잘된 일이라고 한다. 어려움도 적지 않았지만 번역에 대한 여러 가지 체득이 깊었고 번역기교도 많이 터득하게 된것이다. 그런데 그 한국친구가 경제난으로 책출판이 무산되였고 번역비도 지불하지 못하게 된 상황에 처했다. 번역고를 그대로 두는것이 아깝게 여겨져 인터넷에 련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모 인터넷회사 책임자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그 번역소설이 참 좋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한국소설을 번역해달라》는 내용이였다. 시험삼아 시작한 소설번역이지만 네티즌들의 반응도 매우 좋았다. 여기서 신심을 얻은 그는 한국소설 번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정규적인 번역은 당시 길림신문사와 장백산잡지사 전임사장인 남영전선생이 번역해보라고 넘겨준 작품들이 대부분이였다. 한국 언론인이 중국 대륙을 편답하고 내놓은 장편기행문 《들끓는 중국(沸腾的中国)》 등 책들은 그의 번역을 거쳐 모두 중국에서 출판되였다.



업여시간을 리용해 군자란을 닦아주고있는 심승철.

그러던 어느날 장백산잡지사 리여천사장으로부터 류연산의 《불멸의 영렬--최채》의 번역을 위탁받았다. 그날 리여천사장의 사무실에서 류연산작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보았는데 이 작품으로 2012년 중국 소수민족문학 최고상인 준마상을 수상했으니 고 류연산작가에게 감사할뿐이라고 했다.

오늘날까지 제일 마음에 드는 번역고는 한국작가 유현민이 쓴《어머니와 함께 한 900일 려행》이라고 한다. 이 책 내용은 흑룡강성 막하에 사는 70세 아들이 90세 로모의 소원을 풀어주려고 어머니를 삼륜차에 태우고 전국 여러 곳을 구경시켜준 감동적인 이야기를 소설화한것이다.

2008년 7월, 한국에서 베스트셀러로 된 이 책을 보고 중국어로 번역할 생각을 가졌다. 그는 처음에 안해한테 읽어주었다. 책내용에 너무 감동되여 자주 목구멍이 꺽 막혀 읽어 내려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만약 번역한 소설을 중국 독자들이 읽고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으면 어쩌나?〉하는 우려심이 앞섰다고 한다. 후에 그가 번역한 이 소설은 대만 중신출판사에서 출판되였으며 대만 중학생들의 필독서 60권중 하나로 선정되는 우수한 번역문고로 되였다.



번역가 심승철의 든든한 뒤심이 되여주는 그의 《골수팬》 안해.

우리의 시조를 세상에 알리는데 일조

시조는 우리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바 문학사를 배운 사람이면 시조를 적지 않게 접했을것이다. 시조는 고려 중기부터 조선시대까지 성행했는바 많은 우수한 작품들이 유산으로 남아있다. 최근 년간 한국에서는 시조의 세계화를 위해 영어, 일어, 중국어로 번역하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치고있다.

시조번역은 언어와 문화에 대한 깊은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고된 작업이다.

《저는 리순신장군의 시조 2수에 반해 시작한 시조 번역을 이젠 멈출수 없게 되였습니다.》고 하는 심승철선생은 수년전부터 시조번역에 강한 흥미를 갖고 고심하고있다. 그는 이미 50여수를 번역해 중국의 대표적인 시문학지인 《시가월간》에 발표하였다.



번역가 심승철의 든든한 뒤심이 되여주는 그의 《골수팬》 안해.

그가 시조번역을 시작한것도 우연이였다. 한번은 북경대학 교수가 편찬한 조선문학사를 읽게 되였는데 그중 시조를 번역한 대목에 이르러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의 시조는 정형시로서 3장, 6구, 45자(1, 2글자가 많을수도 적을수도 있음)로 《3.4조》, 《4.4조》인것이 특징인데 그 교수의 번역시조는 우리 시조의 특징을 살리지 못하고 중국의 당시와 비슷하게 번역했기때문이다.

전문가에 따르면 우리 민족 전통시가와 시조는 토가 많고 시구의 뜻이 유연하게 표현된것이 특징이다. 게다가 조선어와 한어는 언어계통이 달라 조선어 정형시, 특히 시조를 한어로 번역하기가 쉽지 않다는것이다.

조선문학과 중국문학의 풍부한 지식을 갖고있는 심승철선생은 시조번역에서 많은 번역가들이 해내지 못하는 난제를 풀고있다. 그의 시조번역을 보면 한어 글자수를 조선어 글자수에 맞추었으며 동시에 원 문장의 뜻을 정확히 전달하고있는바 번역가로서 지식의 깊이를 헤아려볼수 있다.



본인이 번역한 리순신장군의 시를 읊조리는 번역가 심승철.

아래는 심승철선생이 번역한 리순신장군의 시 2수를 번역한것이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올라

(闲山岛明月正当头,要塞边独坐戍楼。)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차에

(大刀紧佩腰间,为国深虑思绪悠悠。)

어디서 일성호가는 애간장을 하는가

(知何处一声胡笳曲,激起胸中断肠愁。)

--리순신(심승철 번역)



순수한 문학소년 같은 61세의 안해바라기 심승철이 지난 세월 같이 해준 안해를 지긋이 바라보고있다.

십년 가온 칼이 갑리에 우노매라

(十年磨刀霍霍,锦鞘中宝刀泪落。)

관산을 바라보며 때때로 만져보니

(望关山心急如焚,时时将鞘身抚摩。)

장부의 위국공훈을 어느때에 드리올고

(大丈夫何时为吾君,舍身建功尽忠报国。)

--리순신(심승철 번역)



우리 민족의 우수한 시조를 세계에 알리는 일에 더 많은 조선족 청년학자들이 동조할것을 바라는 심승철.

심승철선생은 현재 장춘대학 관광학원의 한국어학과 교수로 강의외에 시조의 중국어 번역을 연구방향으로 정하였다. 시조 한수를 잘 번역하는데는 많은 공을 들여야 하지만 우리 민족의 우수한 시조를 세계에 알리는 일은 심원한 의의가 있는 작업인바 더 많은 조선족 청년학자들이 이 사업에 함께 동조할 바램을 전했다.▣

/글 서정옥(《중국민족》), 사진 유경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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